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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06. 2024

혼자 있는 주말

아이들이 아이 아빠와 할머니댁에 놀러 갔다.  할머니댁에 오랜만에 가는 아이들은 아빠가 가자는 말에 군말 없이 뒤를 따랐다.

아침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며 많이 바빴다. 아이들이 간 후에 혼자 있을 때 조금이라도 편하려고 주말 청소를 일찍 해치웠고, 건조대에 잔뜩 걸려 있는 빨래를 모두 개서 정리했다. 오랜만에 냉장고 정리도 했다. 안 먹는 반찬과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것들 모두 탈탈 털어버렸다. 남편은 오전 근무를 하고 온다고 했기에 아이들 아침을 해주고 바삐 움직였다.


매일매일 해도 쌓이는 빨래는 세탁기가 돌리고 건조기가 말려줘도 내가 할 일은 꼭 있다.

야심 차게 시작한 간식 혁명이었지만 어느새 선반 가득 아이들 먹을거리가 자리해서 다시 정리했다.

크리스마스도 해피 뉴이얼도 다 지났는데도 여전히 거실에 번쩍이는 트리도 치웠다.

부엌 벽에 잔뜩 붙어 있던 아이들 그림도, 구구단 연습한다고 적어둔 곱셈표도 오랜만에 떼었더니 종이가 있던 자리는 빛바랜 종이색이 그대로다.


정리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아이 둘, 어른 둘 사는 집에 무슨 물건들이 이렇게 가득한지 의아하다.

치워도 치운 흔적 없이 어느새 물건들이 쌓이는 것을 보면 우리 집이 마술 상자 같다.


야무지게 청소하니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이미 아이들 가방은 다 싸두었다. 각각 겉옷 한벌씩, 내복 한벌씩, 목도리 하고 장갑은 혹시나 몰라 돌돌 말아 가방 구석에 넣어두었다. 아이들 젓가락 숟가락은 까먹기 전에 아침부터 챙겨두었다. 양치도구 각각 넣어두니 1박 2일 가방이 새삼 단출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많이 컸구나 싶었다.


이때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만 남편 혼자 아이들 둘을 데리고 1박 2일 가는 것은 처음이다. 할머니집에 갈 때 아들은 꼭 아빠를 따라나섰지만 딸은 나와 같이 있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빠가 어떻게 꼬셨는지 딸이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별 말이 없다. 셋이 빠진 집이 조용하다. 혼자 돌아가는 물걸레 청소기만 저 방에서 윙윙 소리 내며 운동 중이다.


나 혼자 있으면 하려던 것이 많았다.

학교 업무도 하고(성적 처리) 책도 잔뜩 읽어야지.

영어 공부 일주일치 복습도 하고 몇 주간 못 쓴 브런 글도 써야지.

이번주 한 번도 수영을 안 갔으니까 수영도 하고 영화도 봐야지!

진짜 방학 시작이다! 벼르고 있었는데!!!


그런데 아이들이 나간 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를 들어가니 숏츠 몇 개 보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책 다 본 것을 블로그에 정리하려고 하는데 너무 조용하니 신경 쓰여서 이번에 컴퓨터로 유튜브 검색을 하다 다시 숏츠로 들어가는 찰나!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다 접어두고 수영 가방을 챙겼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바로 차에 올라 운전해서 수영장에 갔다. 소한이라 춥다더니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참 따뜻하다. 아이들도 즐겁게 창밖을 보고 있겠지.. 아니야! 다시 집중해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주말인데 어쩐 일로 수영장이 한산하다. 물도 그리 차갑지 않아서 오랜만에 자유형부터 시작했다. 힘을 최대한 빼고 천천히 천천히 물을 잡아서 밀고  발도 첨벙첨벙 차면서 몇 바퀴를 돌았다. 평형도 조금 하고 한 팔 접영도 조금 했다. 같은 라인에 아주머니 한 분 빼고 안 계셔서 천천히 했다. 옆 레인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평형을 할 때 머리를 안 담그고 편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했는데 코에 물이 들어가 매콤하다. 머리 안 넣고 자유형, 평형하는 분들 멋지다!! 감상하다 다시 몇 바퀴 돌고 40분이 훌쩍 지나서 나왔다.

후딱 씻고 집으로 와도 세시가 안 되었다.


거실엔 햇살이 조금 비켜간 후였다.

책을 볼까 하다가 오랜만에 티브이를 켰다. 응답하라 1988 시리즈를 연속 방송하고 있었다. 다시 봐도 재미있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과자 몇 봉지 까먹고 사과도 한 알 깎아 먹었더니 배도 빵빵하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응~ 딸! 도착했어?

-응! 엄마 뭐 해?

-음.... 그냥 있어.**이는 뭐 해?

-방에서 책 보고 있어.

-아빠랑 동생은?

-아까 아빠가 휴게소에서 뽑기 해줘서 그거 가지고 놀아!

-알았어! 오랜만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맛있는 거 많이 먹어!


아까 아쉬움이 잔뜩 묻어 나가던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밝은 목소리의 딸이라 안심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댁에서 잘 먹고 놀 아이들 모습이 떠올라 다행임과 동시에 다시 나의 할 일 목록을 떠올려 자리에 앉았다.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이 그저 나 혼자뿐인 이 집에는 자유와 외로움이 공존한다. 평소라면 아이들을 챙기고 하루를 마무리할 이 시간에 글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최근에 알게 된 좋은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부르다가 피아노로 잠깐 쳐보기도 했다.


아이들과 있을 땐 시간이 명확하다. 아침-점심-저녁 일과가 규칙적이다. 규칙적인 시간들이 나에게 닿기 전에 흩어져 버려 나만의 시간이 간절해진다. 아이들과 있을 때 온전히 그 시간을 누리지 않고 못한 일과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분주하다. 내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을 나누다 보면 하루가 짧다.


나 혼자 있을 땐 그렇지 않다. 이 시간이 온통 내 것이다. 먹는 시간, 노는 시간, 자는 시간 모두 내 의지로 조절 가능하다. 모두 나로 가득 찰 것 같은 이 시간과 이 방 안이 어딘지 쓸쓸하다. 아이들이 놀고 웃고 싸우는 소리가 세탁기,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로 채워졌다. 곁에서 끊임없이 말을 거는 아이들이 없는 시간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같이 있을 땐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을 땐 보고 싶은 이 마음이 우습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시간이 다가옴을 아는데 왜 같이 있을 땐 그 시간을 함부로 하게 되는 것일까?


딸은 올해 10살이 되었다. 이때까지 엄마 없이 자 본 적 없는 아이다. 밤에 춥진 않을까 동생이랑 사이좋게 잘 놀고 잘 자고 있을까? 괜한 걱정을 한다. 내일이면 만날 아이인데 몇 날 며칠 못 볼 것 같이 헤어진 시간이 길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을까? 내가 없을 때 그립고 보고싶었을까? 그냥 티브이 보고 웃고 맛난 것 먹으면서 쉬면 되는데 괜히 옛날 생각이 난다. 처음 엄마와 헤어져서 살게 된 고등학생 때 하숙집에 짐을 옮겨 주고 집으로 돌아가던 엄마가 그렇게 울었다던데 겨우 하루에도 이렇게 조마조마하면서 아이들이 커서 내 곁을 떠나면 얼마나 울게 될까?


혼자 있는 집에서 온전히 내 시간을 갖게 되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했던 같이 있던 시간을 그리워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깨끗한 정리된 거실이 너무 덩그러니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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