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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07. 2024

세잎이든, 네 잎이든

경주에 간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여행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이면 항상 외갓집, 할아버지댁 가느라 정작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는 가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아이들과 여행을 가고 싶었다. 경주는 우리에게 특별한 여행지다. 아이들과 이미 두 번 여행을 갔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으며, 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요란하지 않고 고요해서 좋다. 아무튼 여행을 간다고 선언을 몇 주 전부터 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가기 싫었다. 월요일부터 이어진 비가 화요일에도 이어져 드문드문 빗방울을 뿌렸고, 학교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경주까지 여행을 머뭇하게 했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단 출발했다.


거제에서 경주는 2시간 조금 넘는 거리지만, 부산에서 경주까지 고속도로와 국도가 매우 잘 이어져있어 빠르게 갈 수 있다. 휴게소에 잠깐 들러 핫바 하나 사 먹고, 경주에 도착한 시각은 6시였다. 6시에 숙소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니 빗길 운전을 하느라 경직되었던 몸이 빠르게 나른해졌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여행을 하는 것보다 여행지 숙소에서 편하게 누워 있는 게 제일 좋은 것은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오전부터 출근에, 장거리 운전으로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여행 첫날을 그냥 날릴 수가 없어서 숙소 밑에 있는 게임 센터에 가서 땀을 빼고, 월정교에 갔다.

4월의 마지막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이슬비처럼 비가 내렸는데 바람과 비가 섞여 분무기를 뿌리는 것 같았지만 월정교 야경은 좋았다. 다른 여행객들도 우리처럼 비를 맞으면서도 각기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각자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비를 맞고, 바람이 차가워도 옆에 있는 사람들과 그 시간을 나누고, 같은 것을 보고 들을 때 생기는 감정까지 모두 여행 인가 싶다. 아무튼 두 번째 날이 더 기대되는 경주의 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엔 산책을 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서 산책을 포기하고 서둘러 짐을 쌌다. 오늘 하루를 바삐 보낼 결심을 하고 도착한 곳은 경주 엑스포 공원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이 10시 정도였는데 많은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왔는지 같은 색깔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두 줄로 줄 서서 입장하고 있었다. 경주 엑스포 공원은 예전에 가본 적 있어서 별 기대 없었는데 경주 타워를 비롯해서 볼 것들이 너무 많았다. 미디어 아트 공간이 요즘 관광지마다 많지만 경주에는 신라 역사 문화 관련 미디어 아트라서 좋았다. 레너드(네이버 오디오클립-라인프렌즈)에서 들었던 에밀레종 미디어 아트가 나오니 우리 아들이 제일 신났다. 에밀레종 타종 소리도 들려서 더욱 실감 났다.


뭐니 뭐니 해도 엑스포 공원의 백미는 경주 타워였다. 82미터의 타워를 엘리베이터를 타면 10초 만에 꼭대기층에 도착하는데 나 같은 쫄보는 바깥 볼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라 무서웠다. 아들은 더 심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 타겠다고 버티는 아이를 어떻게 꼬셔서 탔는데 이 녀석 때문에 타워를 두어 번 더 탔다. 경주 타워에서 본 경치는 당연히 좋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솔거미술관 너머까지 보이는 풍경이었다. 당연히 다음 목적지는 솔거미술관이었다.


솔거미술관은 잊을 수 없는 여행지 중 한 곳이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첫째와 처음 온 곳이기도 했지만 첫째가 나에게서 안 떨어지려고 해서 그 아이를 안고 산꼭대기에 있는 미술관까지 걸어 올라갔기 때문이다. 바람을 뚫고 솔거미술관에 올랐을 때 여전히 그곳에 있는 미술관도 반가웠고 수묵화 전시도 좋았다. 유명한 포토존에서 딸이 찍어준 사진도 좋았다. 하지만 모두 다 보고 왔을 때 비로소 시작되었다. 클로버 찾기가.


토끼 풀은 자세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옆으로 기는줄기라서 한 줄기의 토끼풀이 있다면 금세 그 구역 전체가 토끼풀 밭이 되기 일쑤다. 그만큼 번식력이 강하다. 그래서 토끼풀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토끼도 번식력이 강하다고 하니까. 하나의 네잎클로버를 보자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엄마 나도 찾아줘!"


"네가 찾아봐. 네잎클로버는 한 번 발견되면 그 옆에 무조건 더 있다니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 안에 초록이 가득했다. 솔거미술관 위로 가득했던 구름도 걷히고, 아이들의 눈과 손이 다 초록으로 물든 것처럼 네잎클로버 찾기가 한창일 무렵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네잎클로버 뜻이 뭐야?"


"응? 행운일걸."


"그럼 세잎클로버는?"


"음.. 행복이라고 하던데."


"그럼 여기 온통 행복으로 가득하네."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왔고 아이들과 시간을 쪼개가며 여행지를 둘러보았다. 바쁘다며 쉬고 싶어 하는 아이들 옆에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면서 맛집을 검색하고,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기 바빴다.

내 옆에 있는 아이들과 같이 있는 이 순간들이 항상 너무 넘치고 버거워서, 세잎클로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진짜 귀한 것은 가끔 드문드문 있는 네잎클로버가 아니라 항상 옆에 있는 건강하고, 착한 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네잎클로버를 20-30여개를 찾았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계속 나오니까 더 찾고 싶어 솔거미술관 앞뜰을 벗어나지 못했다. 계속 앉아있다가는 하루가 금세 지나가버릴 것 같아 정리를 했다. 핸드폰 케이스 뒤에, 여행지 책자 뒤에 찾은 네잎클로버를 곱게 넣어두고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경주에 그동안 많이 왔으면서도 아이들이 어려 엄두를 못 냈던 그 언덕과 숲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다니는 지금..


세잎이든, 네잎이든

내가 진짜 찾는 네잎클로버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는 너무 평범한 사실에 하루가 더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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