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집에 있기 힘들어 밖으로 나왔다.
딱히 갈 곳이 있었던 것은 아니므로 자연스레 도서관으로 왔다.
"어디가?"
남편이 물었지만 대답하기 싫어 그냥 나왔다.
왜 화가 났냐고 물어보면 딱 부러지는 대답은 없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집안일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애매모호한 대답뿐이라 속 시원하지 않다.
속 시끄러울 땐 그냥 벗어나기! 그리고 정리하기
천천히 어제를 복기해 보자.
평소 같은 금요일이었다.
조금 일찍 퇴근을 했고, 둘째를 데리고 나왔다.
집엔 첫째가 친구와 같이 놀고 있었다.
"너 나 친구랑 놀 때 방해하지마! 옆에 오지말라구!"
아이는 동생이 친구랑 노는 시간을 방해할까봐 미리 경고를 했다.
과자랑 아이스크림을 내주고 집안 정리를 하다가 첫째가 자기 친구랑만 있고 싶어 하는 눈치길래 가기 싫다는 아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 아이스크림 몇 개를 고르는데 평소에 먹고 싶었던 불량식품이 있어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먹으며 집으로 왔다. 내 입맛엔 너무 자극적이라 몇 개 먹다 말았는데 벌써 다 먹은 둘째가 더 달라고 하자 일부러 첫째에게 줬다. 입이 짧은 아이라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친구랑 게임을 하면서 나눠먹겠다는 것이다.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벌칙처럼 먹겠다는 것인데 좀 불안하다 싶었지만 안방으로 건너와 빨래를 갰다.
"뻑!" 뿅망치 특유의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첫째가 안방으로 쪼르르 들어온다.
"엄마! **이 게임하다가 내 머리 뿅망치로 때렸어."
예상했던 말이었다.
"너랑 안놀아! 너가 일부러 때렸잖아!"
거실로 나와보니 둘째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첫째가 순한 얼굴과는 다르게 동생을 향해 매섭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자기 방으로 도망간 둘째를 찾아서 이야기를 하려 하니 이 아이는 또 나름대로 성깔을 부린다.
"나는 힘조절이 안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때린 거야. 그리고 아까부터 누나가 계속 뭐라고 했단 말이야.
엄마는 내 마음도 잘 모르면서 왜 나를 지배하려고 들어! "
지배하려고 든다고?
내가?
너를?
언제?
도대체 왜 때문에?
얼굴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어할 말도 못 했는데 첫째는 친구를 배웅해 준다면서 나갔다.
아이말인즉 누나가 계속 친구랑만 놀고 자신을 끼워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때린 건데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누나 편만 든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널 어떻게 지배하려고 했는데?"
"엄마는 내가 하는 행동들을 다 마음대로 하려고 하잖아. 내 마음은 어디 있는데?"
아이의 대꾸에 할 말은 많았지만 일견 맞는 말도 있었기 때문에 잠시 멍하니 있으니 아이는 말을 계속 잇는다.
"엄마는 엄마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그게 내 마음을 지배하는 거야!"
여덟 살짜리 입에서 나오면 안 될 말들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어서 이런 경험이 놀랍지는 않지만 아이의 말은 날선 칼이 되어 날아오는 듯했다.
내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누군가의 행동을 제단 하고, 미리 짐작하여 억제하려 들었다고?
그 누군가가 제일 사랑하는 아이였고, 그 아이가 그걸 알아챘다며 거부한다.
잘 가르치려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되고,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진짜 몰랐던 걸까?
물론 아이가 누나랑 게임을 할 때 세게 때리는 행위를 야단친 것은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이면에 내가 이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나는 진짜 이 아이를 지배하려고 했던 것일까?
헷갈리는 것 너머에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행복한 금요일 오후에 누구들 큰소리로 야단치고 싶었을까.
그러한 행동을 한 너의 잘못은 어디로 가고, 엄마의 행동에 딴지를 거느냐고 큰 소리를 빽 질렀다.
그제야 집으로 돌아온 딸에게도 퉁명스럽게 빨리 씻고 먹던 그릇 치우라는 말을 던졌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난데없이 훅 들어온 엄마의 말에 아이는 기분 좋았던 친구와의 시간도 즐기지 못하고 풀 죽은 얼굴로 씻으러 들어갔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가르치면서 꼭 말하는 원칙
1. 자기 할 일 스스로 하기
2. 생각, 감정은 명확하게 표현하기(울고 떼쓰기 금지)
3.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이것은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하는 당연한 원칙이고 규범이고 도덕이고 우리 집의 법이다.
아직 어린아이들이지만 이 세 가지는 꼭 지키도록 이야기했는데 거부하는 아들을 거부할 수 없는 게 속상했다.
속이 쓰려도 나는 저녁을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고, 그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니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는 얼마 후 평소처럼 다시 다가오고, 만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마음이 묘하다.
겨우 아이의 한 마디에 흔들리는 엄마라니.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이미 포기
그냥 엄마도 내 깜냥으론 어림없는 과업인가
속상한 마음에 누워있다 잠이 들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어 잠이 깨고도 누워 있었다. 저녁밥하기도 귀찮았다.
남편은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방문을 슬며시 닫고 아이들과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고, 잘 시간까지 잘 논다. 괜스레 서운해서, 나 없이도 잘 지내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도서관에 왔다.
아이가 어릴 땐 몸이 힘들지만 클수록 마음이 힘들다는 앞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말이 갈수록 내 말이 된다.
뭐 그런 걸로 힘드냐고
이 더위에 땡볕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살이 심한 것 같다는 자기 검열 따위 모르겠고
아이랑 있는게
힘들면 떨어져있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