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과서 진짜 가능해?
비가 무섭게 쏟아지던 오후.
아침부터 쉬지 않고 내린 비 덕분에 학교 옆 조그만 개울은 몸집이 엄청나게 커졌고 우르릉 쾅쾅 번쩍이는 천둥 번개까지 쳤지만 우리 교실은 고요했다.
아이들의 마우스 딸깍이는 소리와 자판 두드리는 소리 정도가 전부였다. 이유는 공개수업 때문이었다.
5월에 이미 학부모 공개수업은 한차례 지나갔는데 7월 그것도 방학 거의 다 되어서 동료교사 공개수업이라니 좀 생뚱맞았지만 이미 예고된 것이었기 때문에 날짜는 바득바득 찾아왔다.
처음에 공개수업 한다고 할 땐 맨날 하는 수업 누가 좀 보러 오면 뭐 어떻냐 싶어 가벼운 마음이었다.
맑은 하늘에도 순식간에 먹구름이 차면 어느새 장대비가 쏟아지듯이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었다.
내 수업을 누가 본다고 해서?
교수법에 자신이 없어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할까 봐?
아니다!
수업 때 활용하기로 한 아이북 때문이다.
경남교육청에서 2022년부터 전 초중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배포한 스마트단말기 아이북!
이 혁신의 아이콘 때문에 나의 수업은 나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생긴 것은 보다시피 참 멀쩡하게 생겼다.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디자인에 그래도 갖출 것은 다 있어서, 터치펜, 터치스크린, 키보드도 있고 저 상태에서 뒤로 360도 꺾을 수도 있다. 이런 디지털 스마트 교육을 선도하는 기기를 경남 교육청에서는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하고 수업 및 학습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대부분의 경우 AS도 무상으로 이뤄진다.
아이북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올해부터였다.
작년 4학년을 가르칠 때는 가끔 교실에서 자료를 만들거나 원격수업 연습(경남 아이톡톡)을 할 때만 활용했다. 이토록 좋은 기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내 무관심도 한몫했겠지만 글쎄… 얘를 직접 다뤄본 사람은 쉽사리 그렇게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일단 너무 무겁고 휴대하기(어린이들이) 쉽진 않다.
아이들 가방도 무거운데 종이로 된 케이스에 담긴 아이북을 수업 시간에 가져오라고 하면 무겁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 그 종이 케이스째 들고 오기 좀처럼 쉽진 않다. 관심이 있는 부모님들은 노트북 가방에라도 담아서 주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라도 오면 종이가방째 아이북을 가져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여차저차 가져와서 수업에 사용한다 치면 일단 와이파이 연결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부팅 과정을 참고 또 참고 참아야만 끝낼 수 있다.
아이북 옆에 작은 동그라미 전원 버튼이 있는데 이 투박한 아이가 생긴 것과 다르게 너무 여려서 한번 살짝 건드려도 꺼져버린다. 본체에 터치 기능이 있기 때문에 마우스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교육청에서 마우스는 지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마우스 없이 터치만으로 조작하다 보면 참을성 없는 아이들은 터치! 또 터치! 뭐가 되려다가도 계속 창을 열고 터치를 해대는 통에 진행이 느리다. 참다못한 아이들이 개별로 마우스를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게 겨우겨우 인터넷까지 연결을 했을 때 기본 프로그램인 한글이나 MS오피스 등을 바로 사용할 수 없다. 학생들이 미리 사용하기 쉽게 되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내장으로 학기 초에 사용할 수 있는 일련번호나 그런 것들이 있지만 미리 준비해서 깔아 두는 아이들은 없다. 나도 여간 쉽지 않다.
경남 교육청에서는 아이톡톡이라는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는데 네이버 웨일 스페이스로 가입을 하면 원격수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아이들 대부분 이 아이디(이메일)를 갖고 있지민 완벽하게 아이디, 비밀번호를 아는 아이는 일부다. 대부분 잊어버린다. 좀 관심 있는 아이들은 포스트잇에라도 써놓지만 대부분 비밀번호 모르는데요! 를 연발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담임교사는 비밀번호 재설정을 해주고 또 앞의 로그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약과다.
제일 짜증 나는 것운 수업에 쓰려고 열면 뜨는 윈도우 준비 중 파란 화면! 정말 무섭고 두려운 파란색이다.
"선생님 윈도우 준비 중이라고 뜨는데요?"
다른 버전은
"선생님 윈도우 업데이트 중이라고 뜨는데요?"
아이들이 미리미리 사용 전에 열어보고 자주 부팅을 시키면 이러지 않을 거라고? 아니다.
사용하고 있는 중에도 윈도우 준비 중이 뜬다.
불편한 점 중 최고는 단연! 충전이다.
도대체 어디서 충전을 해야 한단 말인가?
집에서 사용하기 전 충전을 해와도 수업 1-2시간 사용하다 보면, 아니 그냥 가만히만 놔두어도 방전이 되어버리는 이 아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우리 반 아이들이 3학년 때 받았으므로 지난 2년 동안 배터리 수명도 많이 떨어졌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집에서 풀충전을 했다고 하는데 학교에 오면 20-30퍼센트로 떨어져 있고, 수업 중에 꺼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해 우리 학년에는 디지털 AI교육을 한다고 하여 기존에 없던 충전 시스템을 마련했는데 말이 좋아 시스템이지 그냥 교실에 멀티탬 6구짜리 1개를 더 둔 것이다. 이것도 매일 충전 자리가 없어서 최근에 하나 더 샀다.
이런 상황인데 이 애물단지로 수업을 해야 한다니.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얘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특색과제로 아이북을 활용한 수업을 꼭 해야 한다니 일단 제일 무난한 캔바를 활용하여 간단한 동영상 만들기 수업을 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비가 거세게 오고, 학교 공개의 날이라서 우리 학년만 공개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3,4,5 3개 학년 20개 이상의 반이 동시에 수업을 하는 상황에, 많은 학급에서 아이북을 활용한 수업을 한다니 와이파이까지 불안정했다.
그렇기에 맨날 하는 수업인데도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불안은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그동안 익혔던 기능들을 사용해 가며 나름대로 영상을 만들어보며 즐겁게 수업을 마쳤다. 내 역량을 벗어난 아이북 님을 모셔야 하는 수업에서 선방은 했지만 이런 식의 수업은 두 번 이상 하면 정신 건강에 해롭다.
그런데 내년부터 AI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로 학습을 하면서 단계적로 종이 교과서를 대체하여 미래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 같은데...
그 디지털 기기가 경남의 아이북 같은 아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진짜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이 디지털 기기에서 얻어질 수 있을까?
앞에 나열했던 그런 시시콜콜한 문제(충전, 무거움, 매번 업데이트, 마우스 및 기타 장비 보급 안됨)부터 디지털 기기를 통한 학습이 진정한 학습이 될까 하는 문제까지 각종 어려움을 치러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하다.
분명 교실에서 직접 이런 기기로 수업을 해본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