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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01. 2024

우리 반 피터(2)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도 선생님도 금요일이 일주일 중 가장 마음이 편하다. 다가올 주말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겠고, 수업도 마음먹기에 따라 편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많다. 아무튼 주말은 좋고 금요일 수업은 편하다.

금요일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나보다 먼저 온 아이들이 몇몇 모여 과제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웅성웅성거렸다.

수학 익힘 몇 장을 풀도록 한 후 메신저로 온 쪽지를 확인하니 아이들 대부분이 등교하여 인사했다.

아침 인사는 꼭 하고 이때만큼은 모든 아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아이, 옆 짝꿍과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지 소곤거리는 아이, 뒤돌아있는 아이 모습도 다 다르지만 피터는 바른 자세로 앉아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5학년" 내가 먼저 외치면 아이들이 "2반" 이어서  말한다.

모두 교실 앞으로 눈을 모으는 그때를 피터는 기다렸다가 외친다

"충성!"

오른손을 눈썹 옆에 비스듬히 댔다가 충성을 외친 후 바로 뗀다.

어떤 때는 인사 후 나루토춤을 춘다. 그렇게 짧고 인상적인 인사를 마치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우쿨하게 자리로 돌아간다.


일상이 되어버린 이런 인사에 우리 반 모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짧게 웃고 지나간다.

돌아가는 피터를 불러 책상으로 오라는 손짓을 한다.

방금 그 쾌활한 모습은 어딜 가고 교사의 손짓에 아이는 한숨을 크게 쉬고 터덜터덜 걸어온다. 채 대여섯 걸음도 안 되는 그 거리를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어깨를 수그린 채 걸어온다.


-피터야 오늘은 무슨 책 읽을까?

유명한 만화영화 캐릭터들이 그려진 그림책을 여러 권 늘어놓아 고르라고 하지만 영 관심 없는 얼굴이다.


-주토피아? 인사이드아웃? 뭐가 좋아?

아이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콕 책을 고른다. 책을 앞 뒤로 살펴보고 아이에게 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젓는다. 다른 아이들은 조용히, 또는 눈치를 보며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하면서 아침활동을 하고 피터와 나도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림책을 넘기며 손가락으로 한 단어씩 짚으며 천천히 읽으면 피터는 책을 덮으려고 한다.


-피터야! 주디는 어떤 동물이야?

-토끼?

-그러면 닉은?

-여우!

-맞아! 피터는 어떤 동물 좋아해?

-호라이!(호랑이)

-그래? 여기 까만 호랑이도 나와! 호랑이 아닌가? 아무튼 물소랑 양도 있어!


피터는 3-4살 아이가 말할 수 있는 동물과 사물을 말할 수 있다. 발음하기 쉬운 낱말이기도 하고 익숙한 단어라서 발음이 잘 안들리더라도 아이가 가리키거나 두어 번 반복해서 말하면 알아들을 수 있다. 육아 경험이 있는터라 어린아이들의 발음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조금 복잡한 말이나 내가 알지 못하는 게임, 캐릭터 등일 때면 아이는 여러 번 말하지만 상대방이 못 알아들을 때 답답해한다.


-아 답답해!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거나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의 차이가 커서 아이도, 듣는 사람도 서로 답답한 경우다.

이럴 때 듣는 사람이 부모나 가족, 선생님처럼 아이의 상황을 고려하고, 인내심을 갖고 있는 경우 의사소통은 어느 정도 될 수 있지만 또래 친구일 경우 그런 인내심을 요구하긴 힘들다.

학교에서 피터와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대체로 이렇다.


-피터야 나 누구야?

-시*!

-맞아! 그럼 나는?

-세*?


친한 친구들 이름은 정확하게 말한다. 아이들은 그러면 너도 나도 자기 이름을 말해보라고 한다. 같은 이름을 계속 반복하면 그게 웃기는지 깔깔거리고 웃다가 틀리게 말하면 자기 이름을 말해준다. 천천히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일러주지만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들 이름만 말한다. 아이를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처음에는 위태로워 보였다. 괜한 선입견으로 작은 아이를 둘러싼 모습이 괴롭히거나 놀리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피터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편한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집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요즘 어떤 게임을 하는지? 어젠 뭘 했는지? 문구점에서 뭘 샀는지?

정말 사소하지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나눌 수 있는 대화보다는 그림책을 보면서 캐릭터 이름을 묻는 정도의 단답식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피터는 한 주제로 길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금방 대화 주제를 바꾼다.


예를 들면 그림책의 토끼 이야기로 시작하면

-토끼 좋아해?

-선생님? (손가락으로 옷을 가리키면서 따봉!)

-고마워! 피터도 오늘 멋지다!

-(갑자기 아픈 표정을 짓고 목을 가리킴)

-왜? 목 아파?

-네. (어깨나 배를 가리킴)

-그래? 많이 아프면 보건실에 가볼까?

-(고개 흔들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림)

-그럼 다시 읽을게. (그림책 내용 시작)

-선생님? (그림책 속 캐릭터 가리키며) 친구?

-그래! 주디랑 닉이랑 이제 친구가 되는 거야.

-아니! 선생님, 나! 친구(손으로 나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며) 친구!

-그래. 선생님도 피터랑 더 친해지고 싶어!


그러면 아이는 활짝 웃는다. 그림책에 나온 낱말 2-3개를 공책에 가지런하게 적어주고 집에서 한번 더 읽으라고 책과 함께 챙겨준다. 아침활동 시간이 끝나고 아이는 아프다고 한 사람치고 말짱히 웃으며 자기 자리로 간다. 수업시간에 교실에 가득한 여러 말 중에서 아이가 과연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얼마나 될까? 그런 아이에게 책을 가져오고, 친구들에게 말 걸지 않고 가만히 있도록 말하고, 바닥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말할 때 아이가 가졌을 무기력감은 가늠하기 힘들다.


마음을 나눌 시간이 필요하다.

밥 먹으러 가자!

교실로 들어 가!

친구 보지 말고 앞에 보고 앉아!

교과서 가져와요!

의자에 앉아요!

이런 말 말고 아이와 진심으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서 그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관찰을 했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금요일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을 정리하며 칠판에 뒤죽박죽인 글씨들을 정리하며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 봤다.


피터야 네 마음이 알고 싶어.

피곤해 보이는데 어젠 뭘 했어?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선생님은 진짜 피터가 좋아.

보건실에 다녀오면서 작은 꽃 한 송이를 건네주는 아이에게 나도 꽃 같은 말들을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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