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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11. 2024

우리 반 피터(4)

내 마음이 들리니

사랑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남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남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도움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남을 사랑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고 이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출처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중 69쪽>




요즘 읽고 있는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중 한 구절이다.

내가 화가 나는 것이, 답답하고 속상하고 서운한 것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서라니. 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자. 교실에서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미술 시간이었다.

첨성대에 대해 배우고 첨성대를 간단하게 색칠하는 수업이었다..

영상을 본 후 첨성대의 의미와 역사적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그림을 그리던 중이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짝 정할 때 서로 뜨악하던 말 많고 목소리 큰 두 녀석이 영상 재생할 때부터 뭔가 계속 속닥거렸다. 그 아이들 뿐만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뭉쳐 다니며 의리를 과시하던 녀석들이었는데 같은 모둠이 아닌데도 앞 뒤 옆으로 몸을 돌려가며 이야기 중이었다.  그 아이들 옆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은 눈치를 보며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몸을 돌려 내가 보는 것 같으면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다시 말해 수업 분위기가 영 어수선했다.


이럴 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이 영상을 멈추고 기다리거나,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감정소모적인 일인지 익히 경험하였고, 오히려 말을 할수록 화가 나는 기분을 자주 느낀 터라 나름의 방법으로 찾은 것이 멈춤이었다.

그렇게 멈추면서 피터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술 수업이면 으레 내 옆자리로 와서 같이 하곤 했다. 오늘은 색연필 사인펜만 사용하면 되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아이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지 천천히 색을 칠하고 있었다.

내가 묵묵히 색만 칠하고 있자 피터가 소리를 내지른다.


-그만해!


피터는 소리에 민감하다. 누군가 내지르는 소리에 곧잘 귀를 막곤 하지만 그런 소음을 못 견뎌하며 막상 자신도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렇게 피터가 고함을 치면 아이들은 순간 잠잠해지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수군거리는 것을 넘어 이 자리 저 자리 옮겨 다니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수업 시간이다.

수업시간에 무조건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킬 것은 지켰으면 하는 것이 나의 욕심이었다. 애들이 그럴 수 있지. 내려놓지 못했다. 소란한 가운데 나의 자리만 고요했다.

이때 제일 먼저 눈치를 챈 것이 피터였다. 피터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해!

-피터야! 많이 시끄러워?

-예. (귀 막기)

-선생님도 그래.

  친구들이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많은가 보다.

-시끄러워(워요) 왕좀비!


피터는 소란의 진원지를 찾아 총 한 발을 장전하고(손으로) 그 자리에서 왕좀비를 무찔렀다. 허공에다 주먹을 몇 번 휘두르고, 한 손으로 목을 움켜쥐는 듯한 행동을 했으며, 발로 뻥뻥 걷어찬 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왕좀비! 없어.

-피터가 왕좀비 잡고 왔어?

-예. 

-잘했어. 이제 우리 교실이 좀 잠잠해지면 좋겠다.

-선생님! 왕뿔?(자주 하는 행동으로 두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나의 마음을 읽어 줌)

-맞아! 어떻게 알았어? 선생님 지금 왕뿔 났어. 화나.

-왜요?

-친구들이 수업시간인데 계속 떠드니까.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떠들면 좋은데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좀 속상하네.

-선생님 왕뿔! 탕!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한 뒤 내 머리를 겨눈다.)


녀석이 내 머리에 난 뿔을 없애주었다. 그러더니 마라탕 노래를 부른다.

-탕탕! 후루후루! 탕탕!! 후루루루!


분명한 발음으로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더니 자기 그림에 다시 집중했다. 녀석의 이런 행동으로 소란했던 마음이 조금 잠잠해졌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때와 자기들끼리 떠드느라 소란스러운 것은 구별이 확실히 된다.

수업 내용이 어렵거나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 반엔 정적이 흐른다. 내 목소리 외에 딴 목소리는 없다. 그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도 적어도 아이들의 머릿속에 내 말이 흡수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때문이 아닌 잡담과 다툼, 장난의 말들이 바닥에 깔린 채 그 위에 말을 얹어 수업을 할 때면 말이 미끄러지고, 배워야 할 내용이 다시 튕겨져 바닥에 굴러다니는 기분이다.


오늘 화가 난 이유는 그런 시간이 계속 연속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작은 학교라면 이렇게 소란스러울 때 바깥 산책이라도 한 번 다녀오고, 운동장이라도 뛰면서 아이들도 스트레스 해소! 나도 비슷하게 할 텐데 운동장, 강당, 뒤뜰 사용 시간표가 다 있는 지금 학교처럼 큰 학교는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부담스럽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아이들이 내 말을 튕겨 보낼 때 교사로서의 내 행복과 권리도 바닥을 뒹구는 것 같았다. 그게 화의 근원이다.  

이것을 내려놓기 참 힘들다.


다시 반야심경으로 돌아가면 내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그 아이들을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고 이해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피터가 내 머리에 난 뿔을 뽑아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불필요한 감정 소모로 이어졌을 것이다. 다행이다.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다.

피터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것도 꽤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하고 실행한다.

시끄러운 교실 속에서 나 혼자 가라앉고 있을 때 내게 손 내미는 유일한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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