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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24. 2024

우리 반 피터(5)

우리 반 아이들은..... 착해요.

지난주 긴 추석 연휴가 지나고, 짧게 목요일, 금요일 등교 후 다시 주말이었다. 주말 동안 여기 거제엔 비가 많이 내려서 그동안 계속 됐던 불볕더위가 한풀 꺾였다. 찬 바람이 불고 실려오는 햇살과 공기도 가을이었다. 월요일, 변한 날씨만큼 아이들의 모습도 달라져있었다. 아침활동 시간이지만 아랑곳 않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드러냈던 아이들이 차분해졌다. 글쓰기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있길래 이제 이 녀석들이 철이 드나 싶었다. 손목 워치 소음 정도가 90 데시벨이 뜨는 게 하루 일상이었는데 이렇게 조용하다니 좀 늦게 가을이 온 것처럼 아이들도 이제 공부를 할 마음이 생겼나 해서 좋았다.


그런 기대도 잠시, 아이들은 저 멀리 천천히 오는 파도처럼, 서서히 서서히 자기 본모습을 찾았다. 주말의 피곤이 다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등교한 후 친구들의 에너지에 힘입어 풀충전을 하고 있었고, 아침의 고요는 충전 중 대기 상태였던 것이다.  조용했던 수업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 아이들은 늦은 잠에서 깼다.


10분, 그 짧은 시간에 모든 일이 다 벌어진다.

아이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게 평소 조용한 아이든, 소란스러웠던 아이든, 수업 태도가 좋은 아이든, 친구가 좋은 아이든 그저 아이들은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자기 나름의 때를 노린다. 쉬는 시간이면 그렇게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고, 쿵쿵 뛰면서, 싸우고 놀면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10분은 너무 짧다. 그렇게 생각하니 수업 시간에 집중 못하는 아이도 이해가 된다. 사회 시간엔 역할극을 했는데  짧은 대사를 하면서도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마음껏 웃고 떠든다. 역할극의 수준은 당연히 높지 않지만 스스로의 만족도는 높아 보였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바로 우리 반이다.


깜빡 속을 뻔한 월요일을 보내고 화요일이 되었다.

아침이 또 조용했다. 친구들이 와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기보다 슬쩍 쳐다보고 만다. 소란스럽게 등교한 아이들도, 적막한 교실 분위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자기 할 일을 했다. 피터가 들어와도 그랬다.


-선생님!


높은 도로 인사를 건넬 때 아이들은 뒤를 잠시 돌아보지만 큰 관심은 갖지 않았다. 피터는 이때를 노린다.

보고 싶었던 친구 자리에 가서 이름을 부르고 악수를 한다. 그 친구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같이 토닥인다.

선생님에게 와서 어제 했던 공부(그림책 보고 낱말 1번쓰기)를 꺼내놓고 군말 없이 좋아하는 친구 옆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피터는 다르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도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좋고 반가운 마음도,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마음도, 타인에 대한 관심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는 더 그렇다.


책을 읽어준다고 선생님 앞으로 오라고 했더니 터벅터벅 신발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온다.- 싫다는 뜻

표지에 나온 고양이를 세보라고 했더니 한 마리 세더니 두 눈을 가린다. - 세기 싫다? 모른다는 뜻

책을 읽어주다가 흥미를 보이길래 읽기를 멈추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 더 읽어달라는 뜻

이제 다 읽었으니 낱말을 한 번씩 쓰라고 하니 한숨을 푹 쉰다. - 하기 싫다는 뜻


피터는 마음을 일부러 숨기지도 않는다. 굳이 자신의 때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것을 그저 할 뿐.


1교시 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오늘은 어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의견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 자료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공부했다. 학습 내용을 교과서로 정리하고, 토의를 할 참이었다.

내용을 읽고, 밑줄을 긋고, 중요한 낱말을 적는 것.

하품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슬슬 옆 자리 친구와 서로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있어도 못 본 척했다. 단순하고 지루하지만 그런 활동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학습 내용을 정리한 후 반 친구들과 토의하고 싶은 주제를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그땐 오히려 묵묵 부답이었다. 교실이나 학교에서 지내면서 불편하거나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는데 나랑 상관없다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까의 수군거림이나 소란스러움은 없어지고, 또 다른 기회를 엿보는 듯 조용히 있는 것이었다.

은근히 부아가 났다. 이렇게 수업시간이면 조용하다가도 쉬는 시간이면 돌변하는 모습이 진짜 아이들의 모습일까 의아했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 없이 고함을 치고, 복도에서 뛰면서 친구를 쫓아다니다가도 정작 공부해야 할 땐 침묵을 지키는 모습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때가 그 짧은 쉬는 시간 10분이 아니라 수업 시간이면 어떨까?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할 땐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까?

선생님이 볼까 봐 숨어서 수군거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고,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더라도 나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에서 오는 자신감이 이들에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겠다.

음악시간에 그런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노래를 다시 배웠다.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정 나서야 할 때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조차 못하는 것이지만 한번 시도해 보았다.


앞서 영상 2개를 보여주었다. 담담하게 마음을 전하며 노래하는 영상과, 시끌벅적 요란하고 유쾌하게 노래하는 영상. 상반된 두 영상이지만 어떤 방법도 좋으므로 자신의 노래를 부를 것을 제안했다.


-얘들아, 우리 지난 시간에 배운 섬마을 오늘 한번 더 불러보자. 너희 본래의 목소리로, 잘 부르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편하게 한번 불러 볼 사람 있을까?

-.........

-지금이 그 기회야. 너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 네가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여줄래?


몇 명 아이들이 손을 들었다. 원래 활발하고 목소리가 큰 아이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수줍어하는 아이도 있었다. 네다섯 명 아이들이 발표를 할 때 나는 그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으로 지휘를 하면서 그 아이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더 했으면 좋을 텐데 나서는 아이가 없어서 아쉬울 참이었는데 피터가 손을 들었다.


-피터도 친구들한테 노래 불러주고 싶어?

-예!

-그래, 한번  해봐요.


아이는 책을 들고 칠판 앞으로 나오더니 그대로 꼼짝 않고 서있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평소 추던 춤도 추지 않았다. 그냥 서 있었다. 혹시 음이라도 낼까 싶어 내가 작게 옆에서 같이 불렀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바람처럼, 흥얼거리는 소리로, 튀는 소리 없이 조용히 거들어줬다. 피터가 부르진 않았지만 피터의 노래이자 우리들의 노래였다.

 

누가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면 얘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이 되곤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실 쉬는 시간엔 정말 떠들고, 수업 시간엔 잠잠한 이 녀석들을 가르칠 때 내 말이 스며들지 않고, 튕겨지는 경험이 많았다. 목에서 정말 쇠맛이 나도록 이야기를 할 땐 반응이 없다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저희들 목에서 쇠맛이 나는 줄도 모르고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성격이 모나거나 못된 아이들은 없지만 수업 태도가 그렇게 뛰어나게 좋지도 않고, 수업할 때 열심히 배우고 있는 느낌보다는 어딘가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시끄러워요.


그 말을 이렇게 바꿔야 할 것 같다.

우리 반 아이들! 시끄러운데 착해요.

다소 시끄럽게 들리는 것은 자신을 표현할 때를 포착하여 마음껏 발산하는 중이고

친구의 노래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만히 더해줘, 용기를 주는 그 모습들은 착하니까. 

그 한 문장이 우리 반 아이들을 다 말할 순 없겠지만 배우는 모습이 다 내 마음 같진 않을 테니까 좀 여유롭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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