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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29. 2024

글이 곧 길이다.

글을 쓰는 이유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밖에서 들려오는 어느 집 아이의 목소리가 10층인 우리 집까지 들린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의 온갖 소리로 가득해야 할 집에 나 혼자뿐이다. 거의 일주일 만에 집에 온 아빠와 아이들이 점심때쯤 나갔는데 아직까지 안 들어온다.  불안과 행복의 그 어딘가 언저리에 글을 쓴다. 싱크대엔 아까 먹었던 그릇들이 어지럽고, 소파 위 쿠션은 제멋대로에, 빨랫감은 산더미인데 그것들을 제쳐 두고 글을 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 것은 2년 정도 되었다. 누군가 보여주려고 시작한 글쓰기가 아니라 흘러가는 하루와 생각들을 잡아두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일주일에 보통 한 번.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보통의 날들을 담담히 담아보고 싶었다.


100개가 넘는 글을 썼지만 딱히 목표성이 없는 일상의 글들이라 글 내용이 무겁지 않았다. 꾸밀 필요도 없어 사실 너무 날것 그대로의 나라서,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오싹하기도 하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을 끊을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쓰는 동안은 내가 착해진다.

남편, 아이들, 학생들, 학부모들, 학교에서 만나는 동료 선생님들. 모두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일부는 이해하는 시도를 하게 됐다. 글을 쓰면서 내 입장에서만 쓸 수가 없으니 상황 속에서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었는지 되짚어 보고, 곱씹어 보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좀 더 착하게 살고 싶어졌다. 글로 남겨진 내 모습이 너무 추하고 이기적이진 않았으면 좋겠어서.

글을 쓰면서 달라진 건 독자로서 편하게 봤던 책들의 값어치를 알게 된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땐 줄거리 파악에 급급해 문장, 문단, 행간 헤아릴 것 없이 후다닥 빨리 책장을 넘기면서 끝을 봐야 책을 다 본 것 같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배우기 위해 읽는 책 속에서는 중요한 핵심만 간단히 말할 수 있으면 다라고 생각했다. 전체 내용 파악이 독서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한 문장 한 문장 속에 작가가 담으려는 의도가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무슨 단어를 쓰고, 그것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연상시키는지 그것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경탄스러웠다. 글 한 편 쓸 때도 머리가 터지는데 책 한 권을 어떤 마음과 집중력이 들어갔을지 어림잡을 수도 없어 경외심마저 들었다.


글 쓸 때만큼은 집중할 수 있다.

쇼츠와 유튜브로 점철된 여가 시간에서 헤어 나와 좀 더 길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 덕분이다. 핸드폰을 손에 쥔 순간 엄지, 검지를 위로 스크롤하며 더 재미있는 거, 더 자극적인 것들을 찾게 되는 게 그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이런 일련의 행동이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헛헛함을 더할 뿐이라는 것을 글을 쓰면서 알았다. 수많은 영상을 보면서 즐거웠고, 재미있었으니 쉬었다고, 또는 흘러가며 들은 지식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끝내 잃은 것은 내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시간을 들여 내 글을 얻는다. 그뿐이다. 그때만큼은 집중한다. 그것이 짧든 길든 온전히 내 시간이다. 남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닌 아무도 안 볼지언정 나만 만들 수 있는 내 콘텐츠를 만든다.


글을 쓰는 수많은 이유 중 마지막은 내가 살아온 길이 글이 되기 때문이다.

글은 곧 길이다.

글을 쓰면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길이 보이는 것 같다. 아직 희미하지만 그 길을 찾기 위해 글을 쓴다. 삼십 대를 훌쩍 넘어 인정하기 싫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어릴 때 이 나이면 뭐든 다 할 것 같고 다 가질 것 같았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엉성한 와중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길 위에서 헤맬지언정 멈추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불확실한 내 인생에서 확실한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 내 인생의 여러 길 중 하나가 되어 좁지만 확실한 샛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냥 쓰면 되는 것이지 뭔 이유가 그렇게 거창할까 싶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쓰는 이 글에 나라도 의미를 꾸역꾸역 붙여 주고 싶다. 그래야 진짜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된 것만 같으니까..

글은 곧 길이다. 내 길이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지만 글 속에 그 답이 숨어져 있으므로 이 행위를 멈출 순 없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이 돌아와 고요에서 깨어났다. 이제 할 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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