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약이라쓰고 업무라 읽는다
규약(規約) : 조직체 안에서, 서로 지키도록 협의하여 정하여 놓은 규칙.
다모임이라 불리지만 사실은 교직원 회의, 전달 연수시간에 인성 부장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두의 학교를 위한 '학교문화 책임규약'을 늦었지만 이제는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면서 관련 연수 영상을 보여줬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의견 수렴 기간 및 홍보 기간을 갖고, 학생, 교사, 학부모가 직접 참여하여 규약을 만들어 서약하여 지킬 수 있도록 하자는 계획이었다. 인성 부장님은 각 단계를 설명해 주시면서 우리 선생님들에게 최대한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활동해 보자고 말씀하셨지만 그걸 듣는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규약인가요?
일단 모두의 학교를 위한 학교문화 책임 규약에 대해 알아보자면
의미 : 교육공동체(학생, 학부모/보호자, 교사)가 함께 학교 폭력 및 학생생활지도와 관련한 내용을 이해하고, 학교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을 확인하며, 실천을 다짐하는 약속
단계 : 준비(활동 준비) - 의견 수렴 - 책임규약 작성 - 서명 및 캠페인 - 환류
기대효과 : 책임규약 준수를 위한 책무성을 갖게 되고, 행복한 학교 문화 조성을 수립하는데 스스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자부심 배양? 책무 의식 증진?
그래서 결국 누구를 위한 규약인가
학생 ->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급 및 학교 규칙을 잘 지키기고 있다. 그 학생들의 다짐을 받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자부심을 갖는 것이 이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즐겁게 공부하며 마음껏 뛰어노는 것이다. 이때 이들을 방해하는 것은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학교폭력 관련 학생들이고, 이 학생들로 인해 학부모 민원과 상담으로 찌든 담임교사에게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없게 된다. 아이들도 안다. 이런 약속 따위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을.
학부모 -> 이 알리미와 가정통신문 회신으로 학부모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인데 가정통신문 회수율?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나 공개수업 참가 신청서가 아닌 가정통신문에 회수율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1, 3학년 학부모인 나도, 교사면서도 이 알리미 제때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의견까지 내라고? 부담스럽기는커녕 관심도 갖기 힘들다. 학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 안전하고 즐겁게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며 공부 열심히 스스로 하는 것, 그 이상 있을까? 엄마들이 원치 않는 것은 수업 방해 학생, 학교폭력 관련 학생들로 인해 내 아이가 상처받고, 피해받는 것이지 이런 규약일까?
교사 -> 교직원 회의(다모임시간)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선생님들이 관심을 갖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까? 교사 경력 통틀어 업무 관련한 일 아니면 아무런 말도 안 하고 회의가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내가 오늘 이 안내에 결국 참지 못하고 의견을 말하는 동안 속으로 동조할지언정 섣불리 말하지 않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결국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을 알았다. 나도 똑같다. 하라는 대로 하게 될 것이다. 내 의견보다 학교에서 정한 결과를 따르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년 여름.
그 뜨거운 하늘 아래 교사가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이 규약은 의무도 아니고, 기존의 학교폭력 예방교육(회복적 생활교육)과 차별성도 없고, 구속력이나 서약에 따른 법적 효력도 없는 단순한 캠페인 활동이다. 교육이 원만하게 잘 이루어지기 위한 마음에서 이런 방법도 있다고 제시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으나 이를 작년 선도학교 추진을 시작으로 경남 전체에서 일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하라고 던져주면 해야 하는 것이 학교일까?
다시 한번 묻자면 정말 누구를 위한 규약일까?
내 생각엔 교사를 위한 것은 아니다. 교사를 위한다면 이런 생각을 낼 수 없다.
진심으로 교사를 생각했다면 이런 방법을 던져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과정 전체를 교사가 계획하고 관리하고, 결과까지 도출해야 하는 동안 학생과, 학부모는 의견 개진 외에 무엇을 하는가? 내 일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허울뿐인 이런 규약을 만들고 실행하는데 모든 일을 주관하는 게 교사라는 데서 교사를 위한 규약을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법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채 아무도 지켜주는 사람 없이 홀로 교실에서 싸울 선생님을 위해 이런 말뿐인 규약은 필요 없다.
학교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힘을 모아 학생이 스스로 살아갈 힘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법적 공간이다. 이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과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남에게 피해주는 자신의 아이를 감싸면서 학교 탓, 교사 탓, 사회 탓 아무튼 자기만은 탓이 없다며 어떤 핑계를 대는 학부모, 학생, 교사에게 이런 규약을 들이밀어봤자 절대 지키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알고 있다. 실질적인 대책은 약속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나 역시 이런 규약으로 인해 교육 3 주체 모두가 책임감과 실천 의지를 갖고 더 나은 학교를 만들고 교육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많은 선생님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이미 학기 초부터 존중의 약속, 회복적 서클, 학급 다모임을 계속 실천하고 있다. 나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급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이 생활지도다.
짧고 간결하게 의견을 말해야 했는데 중언부언 어설픈 감성 타령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고 앉았다. 부끄럽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서로가 배려하고, 존중하고, 한번 더 생각하고 말하고,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예의를 보이는 것.
이것을 몰라서 지키지 않을까? 알면서도 안 지키는 그들에게는 약속보다 따끔한 회초리를 뽑아 들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