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2학기 사회는 단 한 권의 책 안에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담는다. 당연히 엄청나게 축소하고, 간략하게,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보다는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의 단편적인 수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세세히 짚고 나가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이들의 집중력 저하와 오히려 역사를 어려워할 것 같아 적당히 타협하며 수업을 하고 있다. 내 수업 자료는 대부분 내가 읽은 역사책과 역사저널 그날, 그리고 홍진경 씨가 하는 공부왕 찐천재 유튜브 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역사책은 큰별선생님 최태성의 별별한국사 1~7권까지 시리즈로 나온 책과 한국사개념사전을 중심으로 한다. 별별한국사는 교과서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한 시대적 상황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특히 삽화가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미있는 그림이라 좋다. 별별한국사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한국사 개념사전을 읽은 후 보충한다. 교사가 수업 전 먼저 공부를 하고 수업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국사 같은 경우는 요즘엔 더 특히! 공부를 꼼꼼히 하는 중이다.
이렇게만 수업하면 당연히 힘들기 때문에 내가 일단 개략적인 내용을 말하고, 이를 영상으로 두 번째 각인시킨 후 카훗이라는 게임을 하면서 재미와 지식을 다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긴 하다. 사회 수업만 하면 한숨부터 쉬는 게 아이들이라 수업하는 입장에선 안달나도 어쩔 수 없다.
최근 수업 내용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부분이었다.
병인양요는 1866년 프랑스 함대가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에 쳐들어 와서 민가를 향해 폭격을 퍼붓고는 통상을 요구하며 일으킨 전쟁이다. 프랑스군이 끈질긴 조선군의 항전에 쫓기듯 물러나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하였다고 단 한문단으로 설명한 그 사건을 아이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였을지 애가 탔다.
통상? 외규장각? 의궤? 정족산성? 아이들에게 그 말들이 얼마나 무의미할지, 입 밖으로 나간 말이 말하자마자 귓가에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연구 끝에 도서관 창고(국립 베르사유 도서관 분관)에서 의궤를 발견하여 우리나라에 반환된 2011년까지, 거의 15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의궤에 대해 소중함과 애틋함, 문화재 반환을 위한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열정을 아이들이 얼마나 느꼈을지는 미지수다. 나 역시 실제로 의궤를 보기 전에는 수많은 사건 중 그리 중요하지 않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지난 주말 아이들과 서울 여행을 갔다.
당연히 국립중앙박물관은 무조건 가야 하는 곳으로 1순위에 넣었다. 일요일 오전,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서울 기온이 그리 낮지 않고, 하얀 보도블록과 대조적인 푸른 하늘과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걷는 기분이 상쾌했다.
선사시대, 삼국시대 전시관이 공사 중이라 2층부터 둘러봤다. 유명한 사유의 방부터 들렀다.
두 분(?) 금동 반가사유상이 그 큰 방을 가득 메웠다. 아름답다는 말보다 더 큰 비유가 무색할 정도로, 유려한 선과 인자한 미소, 세상을 모두 껴안을 수 있는 도량의 부처님의 모습이 더없이 신비로웠다.
우리 아이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내내 찡얼거렸던 아들도, 전시관보단 기념품 가게부터 가고자 했던 딸도 조용히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마음 변할까 서둘러 다른 전시관으로 향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의궤 전시관이 있었다.
디지털 실감 영상들이 의궤에 표현된 조선 왕실 가례(결혼식)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전시관을 들어가자 수백 권의 의궤가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그 모습이 웅장했다. 우리나라를 떠나 낯선 땅에서 헤매다가 고국에 돌아와 자리를 찾은 의궤는 비록 실물이 아니라도 당당하고 근엄했다.
전시관에선 의궤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도 얼마나 소중한 것을 빼앗겼었고, 이제 다시 보게 되어 소중하고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영화보다, 그림보다, 섬세한 인물들의 묘사가 내가 진짜 그 행사의 관중이 되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이런 의궤를 빼앗아가고도 한마디 사과 없이 획득한 문화재는 자기들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논리의 프랑스가 결국 영구 반환이 아닌 임대 형식으로 의궤를 보내준 뻔뻔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이 전시용 의궤를 손으로 휘휘 넘겨보며 길고 긴 행차 모습이라던지, 표현 방식이라던지, 아무튼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고스란히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이게 결국 서울로 사람이 모이는 이유인 것 같았다.
둘러보니 주말이라 외국인도 많았지만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더 유심히 보니 아이들이 어른 한 명과 함께 전시관에 앉아 설명을 듣고, 책자에 무언가를 정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문화해설사와 아이들이 한 그룹이 되어 역사 투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재들을 책에서 볼 땐 그 규모와 섬세함에 상관없이 2차원의 조그만 네모 속에 담긴 그저 그림이었겠지만 눈앞에서 실제하고 있을 때 이야기가 다르다. 문화유산이 담고 있는 세월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전해져 오면서 더해진 사람들의 손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못 봤을 진짜 시대의 생생함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하나의 그림과, 불상과, 도자기라고, 사진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며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실제 유물을 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상상력과 창의력과 시대적 소통은 사진으론 얻을 수 없다.
아이들의 눈은 반짝였고, 선생님들의 말은 흩어지지 않았다. 한두 번의 수업으로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왔을지 몰라도, 그것이 반복되어 시간이 쌓이면 관심이 생기고, 역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본 장면은 그랬다.
거제 사는 우리 아이들은 고민고민하고, 겨우 시간을 내야 찾을 수 있는 이곳을 여기 있는 어떤 아이들은 제집처럼, 시간 날 때마다, 궁금할 때마다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힘은 비싼 아파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교육적 경험의 힘을 말하는 것 같았다.
경천사 10층 석탑을 볼 때 그저 웅장함을 말하며 사진 한 장으로 남기는 추억이 우리 아이들이라면
그 탑이 중앙박물관 실내에 들어오기까지 겪었을 우여곡절과 아픔과 분노를 누군가는 보듬고 이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저릿저릿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모습은 모두 다양함을 왜 모르겠는가.
차를 타고 십 분만 나가도 거제를 둘러싼 아름다운 바다가 사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얻는 여유와 안정감이 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 장소가 한 두 군데가 아닌 수백 수천 장소로 이루어진 서울에서 공부할 많은 아이들이 생생한 역사 수업을 할 때 우리 반 아이들은, 아니 내 아이들은 그저 하품을 참고 쉬는 시간을 기다리며 인내해야만 하는 수업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글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