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웠다 풀리기를 반복하여 아직은 더운가 싶다가도 아침이면 정신이 번쩍 드는 가을이 계속 지나가고 있다. 교실 밖에서 보이는 풍경이 제법 알록달록하고 이파리들이 몇 장 안 남은 나무들도 있는 것을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 싶다. 10월 휘몰아치듯 일들이 지나갔고 월요일 2학기 동료장학 공개수업까지 마치고 나니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간다고 새삼 놀랍다.
반 아이 서너 명이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하며 대부분 아이들이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며 컨디션이 급변하는 계절. 누구는 벌써 패딩을 입고 있는데 어떤 아이는 덥다면서 에어컨을 연신 외치는 이런 날씨.
결석하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나면 독감이 퍼지고 있다는 뜻인데 아직은 그 수가 많지 않아 다행인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도서관 가기, 침대에 누워 책 읽기, 수영하기, 영어 공부하기, 라디오 듣기, 경제 방송 듣기, 요즘은 안 하지만 리코더, 피아노 우쿨렐레 연주에 가뭄에 콩 나듯 쓰는 글쓰기까지, 가을바람처럼 스쳐간 취미들이 참 많았는데 요즘 제일 마음에 드는 취미는 잠이다.
그냥 자는 것이 아니라 잘 자기.
예전엔 잠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혼자 오롯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 밤뿐이라 모두가 잠든 시간에 책이나 텔레비전, 핸드폰을 하며 감기는 눈을 억지로 버티면서 자는 것을 거부했는데 근래 들어 침대에 누워 제일 편안한 자세로 그냥 잠이 드는 것이 좋다.
휴대폰을 이렇게까지 사용하진 않았던 그 시절에도 눈이 시릴 때까지 휴대폰을 놓지 못했는데 여전히 여기저기 새로운 소식을 허겁지겁 체할 만큼 주워 담느라 잠을 자는 것이 아까웠다. 그러다 힘든 아침을 맞이하면 그 전날의 피로가 온몸 구석구석 퍼져 제대로 하루를 보낼 수 없었다. 그것이 반복이었다.
잠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마다 필요한 시간은 다 다르다.
시간을 다퉈 공부하고, 일하고, 살아내느라 제대로 된 잠을 못 자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새로운 취미가 얼마나 한가하게 늘어지고 게으른 말일지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잠이 참 달다.
거기엔 여러 가지 사정이 있다.
첫째는 성장호르몬 주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하루 최소 8시간 이상을 자야 한다.
둘째는 드림렌즈를 착용하고 자야 해서 이 아이도 무조건 8-9시간의 수면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다른 집보다 조금은 이르게 우리 집은 불을 끈다. 내가 아홉 시 5분 전쯤 아이에게 주사를 하고, 그 시간에 남편은 둘째에게 드림렌즈를 착용해 준다.
주사 바늘 싫어하는 딸과 렌즈 착용이 여전히 어려운 아들 덕분에 잠시 소란이 있은 후 아홉 시면 소등을 하는데, 물론 불을 껐다고 잠이 바로 오는 것은 아니라서 아이들 침대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이제 제법 몸집이 커진 두 아이는 여전히 엄마가 밤에 단 몇 분이라 옆에 같이 있어주길 바란다. 그 따뜻한 온기가 같이 이불을 덮을 때 가슴까지 데워서 금방 잠이 온다. 그렇게 아이들 옆에서 자다가 깨면 비몽사몽으로 안방으로 건너와 이어서 잠을 잔다.
잠이 단 이유는 수영 때문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가는 것이 목표인 수영장이 해가 짧아지면서 길어진 새벽잠을 핑계로 멀리하고 있었다. 10월엔 바쁘단 이유로 강습에 너무 자주 빠졌는데, 11월은 새로운 각오로 열심히 하려고 하니 적어도 5시 15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빠듯해서 수영장에 도착해서 사워 하러 들어가면 준비운동 시작 휘슬소리가 들려온다. 이래저래 빨리 자는 것이 좋고 좋지만 그동안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잠결에 아이들이 잠꼬대하는 소리에도 벌떡!
믹스 커피 한잔만 더 먹어도 눈이 말똥!
저녁 먹고 잠깐 침대에서 누워있다가 살포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별안간 일어나는 일도 많고
무엇보다 내가 자는 동안 놓칠 세상 재미있는 드라마, 영화, 예능프로그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경제 이야기까지 알고 싶은 게 한참 많은 마흔이라 그랬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이후엔 잠을 자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잘 자면 다음 날 마음부터 달랐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고마웠다.
밤사이 별 일 없이 아프지 않고 가족끼리 얼굴을 마주 보고 다시 만난 것이 반가웠다.
아침잠이 없는 딸이 여섯 시 반이면 거실로 나와 엄마방으로 들어올 때
그 전날 늦게 장날이면 귀찮았는데, 잘 잔 날이면 아이에게 곁을 주고, 짧은 시간이라도 다시 눈을 감고 같이 누워있어 좋았다.
세상은 밤낮없이 돌아가고 내가 잠든 사이에 그 많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던 때가 바로 얼마 전까지였다. 하지만 내가 그 어지러운 세상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좀 쉬어도 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취미가 잠이 된 이유, 취미는 나만 잘 즐기면 되는 것이다. 꼭 7시간, 8시간 정해진 시간을 다 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좀 잠을 미뤄도 되는 날도 있어도 된다. 어떤 날은 10시간 11시간 온통 잘 때도 있으니까.
새로운 취미가 좋아진 또 다른 이유는 잠잘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자주 보는 사람은 아니지만 꿈 속에서만 볼 수 있어서 서둘러 잠들어야 더 오래 볼 수 있다.
오늘도 하루 열심히 살았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침대도 아니고, 고급 이불이랑 베개도 아니지만
익숙한 냄새와 촉감이 가득한 이부자리로 들어가 자야겠다. 새로 생긴 취미가 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