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도 안 돌아보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가는 너는
나에게 귀한 것을 준 것도 모를 테지
아무도 없는 도서관 한 구석
익숙한 자리에 온몸을 널어두고
기다림을 만끽한다
숨 가쁘게 지나간 하루
아직도 할 일이 켜켜이 쌓여 있지만
다 미루고 기다림에 집중한다
네가 있는 운동장을 기웃거리지 않고
잘했네 못했네 평가하지 않고
너의 시간에 끼어들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잘 기다리는 것임을 잊지 않는다
느린 듯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아깝지만 헐하게 흘려보내는 중이다
네가 땀에 젖은 뜨듯한 숨을 뱉으며 돌아올 때
잘했다 멋지다 칭찬해주지 않을 테다
기다리는 시간을 줘서 고맙다할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너만이 줄 수 있고 나만 할 수 있는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할퀴고 상처 줬던 말도
넘치게 사랑스러운 말도
달게 흐르는 시간 속에 사라질 테지만
너는 겨울 해가 가는 것도 모르게 뛰어라
나는 여기서 오로지 기다릴 뿐이다
아이가 축구장에 들어갈 때는 분명 환한 대낮이었는데, 축구 수업이 끝나니 겨울 저녁이었다. 한 시간 넘게 운동장에서 뛰고 있을 아이가 안쓰럽고 대견해서 구석에서 응원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는 내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보지 말라고 했다. 수업 끝나고 이래야지, 저래야지 잔소리가 듣기 싫었을 것이다. 눈길을 아이에게서 나로 돌리니 공백이 생겼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아깝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짬을 내서 집에 가서 빨래를 개거나, 저녁 밥을 준비했는데 그렇게 굳이 바쁘게 시간을 쪼개 집안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한숨 돌릴 시간도 필요했다.
짧은 가을이 지나고 어느새 겨울
지나고 보면 또 짧은 겨울이니 기다리는 시간도 아껴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