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면 해야 할 것들

정답 없음

by 다시

올해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수 없으니 기어코 이 기차가 2025년 끝을 향해 달리는 것을 끝끝내 볼 텐데 나는 올 한 해 무엇에 달렸는지 무엇에 매달렸는지 돌이켜 봐야 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40이었다. 만 나이로 하면 아직 38이네, 생일 지났으니 39이네 꼼수 부릴 것 없이 딱 마흔 시작이었던 올해가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것은 그 나이였다.

3으로 시작했을 때와 4로 시작하는 나이는 겨우 1 차이일뿐이지만 같을 수는 없었다. 사회적으로 누가 뭐래도 어른인 나이가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마음가짐, 행동거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흔이면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라는 인터넷 페이지가 핸드폰에서 자주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일까.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마흔이면 자기 몸매에 책임져야 한다.

마흔이면 자기 말투, 인간관계에 책임져야 한다.

가뜩이나 책임질 것도 많은데 온갖 것에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니 부담스러웠다.

내 할 일만 잘하면 된다!라고 책임을 좀 최소화하고 싶지만 아이 둘 엄마로서, 1학년 담임교사이자 부장교사로서, 아내로서, 아버지의 딸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들이 많아 매 순간 집중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일단 아이 엄마로서 나의 올해는 어땠을까

가족 안에서 엄마의 일들은 어째 점점 더 늘어갔다.

마냥 어릴 것 같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작은 사탕 하나를 먹어도 좋아했던, 값싼 선물에 기뻐하던 아이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의 행동을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게 되었고, 엄마가 골라준 것보다 자기의 선택을 존중받고 싶었했다. 그렇지만 자기 방을 정리한다던지 먹은 자리를 치운다던지, 바닥에 흘린 머리카락을 줍는다던지, 가정 내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일들은 여전히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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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아이들이 병원에 가는 일이 많아서 더 그렇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 눈이 안 좋아 렌즈를 끼게 된 일도 결국은 엄마의 책임이었고,

아이가 키가 잘 크지 않아 병원 검사와 주사를 병행하게 된 것도 엄마의 책임이었다.

일주일에 고작 한 번가는 안과, 두어 달에 한 번가는 대학병원이라고 마음을 넉넉잡아 생각하고 싶어도 그로써 해야 하는 일이 늘어서 아침마다, 저녁마다 해야 할 들이 더욱 늘어난 것은 넉넉하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침에 아이 렌즈를 빼줄 때도 노심초사, 저녁에 아이 주사를 맞힐 때도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면 됐지. 하던 차에 독감이 걸리고, 감기가 계속되면서 12월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몸이 바쁘니 당연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사소한 실수에도 걸핏하면 짜증을 냈었다.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으니 아이들의 마음도 마냥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큰 말썽 없이 친구들과 잘 놀고, 너무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게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집에서 어떤 행동을 해도 아이들도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아이들도 나름대로 책임감을 갖고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잘 못 키운 것 같지는 않았나 싶은 것이다.

거제 산달도



교사로서도 정신없이 보낸 일 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1학년 아이들과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우면서 3월부터 12월까지 어엿한 초등학생으로 키워낸 것이 최고의 성과였다. 처음 학교 와서 어리둥절하던 아이들이, 보건실 급식실도 몰라서 헤매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디든 우르르 몰려다니고 돌아다니니 많이 컸다 싶은 것이다. 처음으로 해본 학년 부장이라는 업무는 생각보다 책임이 막중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챙길 일이나, 시간을 쪼개 회의에 참석한다거나, 학년을 대표해서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지만 그것도 크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오로지 학년 일만 챙기면 되는 우리 학교 특유의 시스템이 부담감을 최소로 해준 것이다. 다른 학교라면 1학년에, 학년 부장 역할만 하지 않고 크고 작은 업무 서너 개를 얹어 주었을 테니 더 바빴을 테지만 다른 학교보다 우리 학교에서 부장 일은 나로서는 해볼 만한 일이었다. 사실 40이 되면서 처음 맡은 부장은 그동안 학교 일을 기피했던 시간에 대한 벌충이었는데 이 학교에서는 난이도가 낮아서 왠지 일을 제대로 안 한 기분도 드는 것이다. 그래도 연거푸 1학년을 하고 싶지는 않아 내년 학년 업무 희망서에 1학년을 1순위로 쓰진 않았다.

우리반 아이들 작품
순천 여행

이제 마흔을 시작하면서 온갖 것에 의미 부여를 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고민할 것이 아니었다.

마흔이라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세상에 나와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인데 그것을 나이에 일일이 의미 부여하며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위에 주절주절 나열한 엄마로서, 교사로서 책임질 일들도 마흔이라 통과의례로 해야 할 일들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상들이 모인 것이니까.


앞서 했던 문장을 다시 가져와서 결론을 내야겠다.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

- 마흔 살은 어떤 얼굴 이어야 하지?

마흔이면 자기 몸매에 책임져야 한다

- 마흔 살은 어떤 몸매여야 하지?

마흔이면 자기 말투, 인간관계에 책임져야 한다.

- 마흔 살은 어떤 말투여야 하고 어떤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거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닌데 나부터 마흔! 사십이니까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서 더 숨 가쁘게 고삐를 쥐고 살았던 것 같다.


마흔에서 이제 마흔 하나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다른 역할들을 벗어던지고 온전히 나를 보았을 때

어리숙하고, 미련하고, 고집불통 못된 아이가 가슴 한 구석에 있음을 안다.

그 아이가 불쑥 튀어나올 때 참고, 견디고, 달래가면서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잘 키울 때야 비로소 나잇값 하는 것이겠다. 고집불통 둘째 아이가 큰 소리로 울고 짜증을 낼 때 그 얼굴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안다. 아홉 살 아이를 키우듯 40살 내 인생도 잘 키워봐야겠다. 이제 겨우 40, 한창일 나이면서 바쁘다고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어른처럼 살아야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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