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어도 못 사는

by 다시

어제 오후 낮잠이나 자볼까 싶어 눕는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전날까지 친정집에 있었던 터라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받았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휴대전화에 눌려 있던 얼굴이 벌갰다.


첫 통화 시간 59분.

그렇게 일단락 됐나 싶었지만 그 이후로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7번을 더 했다. 낮잠은커녕, 바깥은 벌써 이른 어둠이 내려앉은 초저녁이 되었다. 평소 드물게 안부 확인차 연락하는 것 외에 아빠와 이번처럼 오랫동안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아빠와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해야 했을까 천천히 적어본다.




평소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은 아빠는 나에게도 종종 여러 종목을 추천하고는 하셨다. 아버지의 권유와 녹아내리는 원화 가치가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이 5년 전이었고 조금씩 투자를 시작했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말씀하시는 종목은 전기차로 유명한 미국의 회사였다. 워낙에 변동성이 큰 종목이고 전기차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없었지만 최근 3~4년간 경제 관련 방송에서 가장 화두가 된 기업이었기에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마다 살까 말까 하다가 결국 사지 못한 것이 지금 내 상황이다.


아버지는 갖고 계신 현금과 국내 주식을 정리하면서 꾸준히 그 회사 주식을 모으셨고, 현재 최고가에서 어느 정도 내려오긴 했지만 굉장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 아무리 아빠지만 부러웠다. 물론 그 회사 주식만 갖고 계신 것은 아니고, 핸드폰으로 유명한 미국회사의 주식도 갖고 계시던 차에 핸드폰 회사를 정리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세금 제외 투자 수익으로 전기차를 살까 고민하셨다.


전기차를 70대 아버지가 운전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었기에 아버지 말씀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아버지께서 자동차를 구입하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1. 지금 타고 있는 SUV는 15년식이고 잔고장이 많아 수리비가 지속적으로 들어갈 것이다.

2. 올해부터는 농사일을 하지 않고 국내 여행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3. 사고자 하는 차 가격이 최근 300만 원 내렸다.

4. 미국 핸드폰 회사 주식이 최근 들어 내리고 있는데 팔고 자동차를 사면 투자 수익으로 차를 사는 것이다.


아버지의 분명한 생각을 들었음에도 나는 건성으로 듣다가 대답했다.


"아빠 하고 싶은데로 하세요!"


70대의 아버지보다 더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며 모험은 피하고 보험은 만드는 나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물론 내 말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겠냐마는 일주일가량 친정에서 지낼 때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추진을 하지 않던 아버지께서 내가 거제 집으로 돌아오자 바로 전화를 하신 것이다.


"나 차 계약하려고 한다."

그 말을 시작으로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자동차 주문을 나와 통화하면서 핸드폰으로 하게 된 것이다. 한 칸 한 칸 넘어갈 때마다 고비였다.


*이름을 영문으로 쓰는 것 - 여권을 찾아야 했음.

*이메일 주소를 쓰는 것 - 이메일 주소를 적어둔 수첩을 찾아야 했음. (나중에 알았지만 잘못 적음)

*휴대전화 번호를 쓸 때 010으로 시작하지 않고 01로 시작하는 것 - 010으로 쓰니 다시 입력해야 했음.

*주소 입력 - 우편번호 찾으려고 우편 봉투를 뒤적거리다가 내가 검색해서 알려드렸음.

*결제 페이지로 넘어간 후 카드 선택하기 - 자주 사용하는 카드를 등록하기 위해 카드 어플부터 설치했음.

출처 테슬라 주문 화면 캡쳐


출처 테슬라 주문 화면 캡쳐

여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이메일 주소가 문제였다. 아빠가 이메일을 자주 사용하지 않거니와 주소를 알고 계시지 못했기 때문에 이메일 주소를 찾기 위해 평소 아이디 적어두는 수첩에서 찾아 겨우 적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메일 주소를 잘못 써서 (뒤에 알파벳 하나를 빼먹고 적음) 이 때문에 나중에 다시 고객상담센터에 계속 전화해야 했다.


내가 노트북으로 해보니 위의 과정 전부하는데 5분도 안 걸렸다. 아버지는 나와 통화를 하면서 핸드폰 화면으로 주문해야 했고 평소 사용하지 않는 이메일이나 카드 결제 같은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카드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 어플을 깔기 위해 집 근처 농협에 전화를 한 아버지이니,,, 위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우셨을까 싶다.


70대 할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전기차를 구입하다니! 이토록 힙할 수가! 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하고, 결제했던 인터넷 쇼핑이 아버지에겐 얼마나 힘들었을까..


더군다나 이메일 주소는 이때 잘 못 적어서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해야 했다. 이메일 주소가 중요했던 이유는 위 계약 내용과 주문 번호를 메일로 보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카드 결제까지 마쳤지만 주문 관련해서 회사에서 아무런 문자나,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 시간 통화 이후 다시 전화를 거신 것이다. 고객상담센터에 전화를 해야 했다.


고객상담센터에 전화해서 잘못된 이메일을 수정하고 싶다고 하니, 그렇게 하려면 주문번호를 알아야 한다고 하고 - 주문번호를 받지 못했다 하니 - 그러면 카드 승인번호, 승인 일시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하니 어제저녁 6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다시 이 차전! 카드 승인 번호를 알기 위해 아빠와 다시 통화를 했다. 보통 카드 결제를 하면 카드 승인번호가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오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문자에서 찾아보라고 했는데, 못 찾겠다고 하셔서 카드사에 전화를 했다. 난데없이 디지털 ARS로 넘어가고, 뭘 눌러야 할지 핸드폰을 달고 사는 나도 한눈에 보이지 않았다.

겨우 음성 ARS로 넘어가서 상담사와 전화를 하고 위 내용을 카드 어플로 알 수 있다고 해서 과연 어르신들이 그런 것을 잘 알아볼 수 있는지 눈앞이 막막했다. 아버지에게 상황을 말하니 다행히 카드 어플을 사용할 수 있으시다고 했다. 나도 사용하는 카드라서 카드 어플을 깔아서 통화하면서 카드 승인 번호를 알 수 있었다.

자동차 회사에 전화해서 카드 승인 번호를 알려주니, 확인이 됐다면서 주문 번호를 알려줬고, 잘못 입력한 이메일로 변경해 준다고 했다. 드디어 끝!




인터넷 쇼핑 전성시대!

핸드폰에 카드나 은행 계좌 연결만 미리 해 놓으면 네이@이나 쿠@으로 하면 물건 하나 사는데 1분도 안 걸린다. 검색해서 고르고 결제까지 모두 말이다. 위의 과정을 내가 옆에서 같이 했다면 조금 헤매긴 했어도 1시간이면 했을 것인데, 아빠는 멀리 고향집에 계시고 나는 우리 집에 있으니 도와 드리고 싶어도 전화상으론 무리였다. 아빠는 평소 핸드폰으로 인터넷 쇼핑도 잘 하시고 유튜브, 주식 등 꼭 필요한 것들은 무리없이 잘 사용하고 계시는데도 이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어제 오후 내내 오늘 오전까지 일을 마치고 나는 후련한 마음도 있었지만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사회가 얼마나 어려우실지 조금은 체감할 수 있었다.

바로 정보 격차이다.

정보 격차로 인해 인권 침해까지 이어진다는 말이 말이 뉴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도 있는 일이었다.




어제 현대차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그 무거운 주식이 말이다.

이유는 미국에서 열리는 CES(세계 최대 가전 정보기술 전시회)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현대차가 인수한 미국 로봇 회사)와 합작하여 만든 아틀라스 휴머노이드 로봇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말로만, 또는 화면에서만 봤던 AI를 실제로 볼 수 있어 경이롭기까지 했다는 이유로 현대차가 하루 종일 뉴스화면에 나왔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뛰고,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까지 보이는 로봇에 경이로움과 공포를 모두 느꼈다.

뉴스 기사 캡쳐(출처 네이버 뉴스 '아틀라스'검색)


세계의 한편에서는 ai와 휴머노이드 로봇, 피지컬 ai에 환호하고, 변화를 실시각으로 체감하며 실생활에 적용하고, 더 편리한 삶과 더 부유한 삶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돈이 있어도 사고 싶은 물건도 제대로 살 수 없는 정보 취약 계층이 있다. 더 심각하게는 그로써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모든 것을 핸드폰으로 해결하는 지금.

핸드폰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계층에게 정확하고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핸드폰을 너무 사용해도 문제, 너무 몰라도 문제, 그것으로 악용하는 사람이 있어 사회적 문제, 경제적 문제까지 야기되는 지금 이 시대에 마냥 발전하는 ai, 정보기술에 환호만 보내는 것이 다는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제까지 난관을 통과한 아버지는 이후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잘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용 충전기 설치 비용, 전기자 보조금 등을 알아보기 위해 회사, 군청에 연락을 많이 하셔서 이미 상당 부분 진행이 된 모양이다. 옆에서 도와드리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는데 후회스럽다.

정보 격차로 인한 가족 갈등까지 경험했던 어제, 오늘이었다.


가족여행 - 부안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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