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도 바쁜 이유
방학 후 일주일은 고향집에서 아이들과 새해를 맞이했다. 대전, 부안과 같은 거제에서는 가기 조금 먼 지역으로 짧은 여행도 했다. 거제에 돌아와서는 신입생 예비소비집일 때문에 오후 한나절 출근을 했고, 아이들 대학병원 검진과 치과 검진도 했다. 아이들 여권 갱신을 제때 못해서 재발급을 하려고 사진도 찍고, 시청에서 여권 발급 신청을 했다. 지난 두 달 쉬었던 수영을 다시 시작하고, 영어 공부도 조금씩 했다. 틈틈이 책을 읽은 후 나중에 학습 자료로 필요할 까 싶어 요약, 발췌하여 블로그에 정리를 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방학인데 아이들과 더 놀러 가야 하지 않나 하는 나름의 부채 의식 때문에 진주 과학교육원에 관람, 만들기 체험을 하러 갔었고, 어젠 오랜만에 온 가족이 부산으로 쇼핑을 하러 가기도 했다.
오늘까지 방학 19일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그동안 읽었던 책을 모두 갈무리해서 하나의 파일로 만들었고, 방학 내내 잡고 있던 책을 대강 마무리해서 정리했다. 다음 학년도 교육과정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수학 문제도 몇 문제 풀었다. 내일은 하루 학교에 들러 개학식 전 교실 청소도 하고 연말정산 서류도 제출해야 하므로 남은 날이 더 짧아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누워 있고 싶은데 그러지 않고 무엇이나마 붙들고 있는 이유가 뭘까?
마냥 쉬는 것이 불안해서일까?
새해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각오일까?
꿈지럭거려야 마음이 놓이는 천성 때문일까?
오랜만에 아는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늦도록 한 날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가족과 함께 한동안 외국에서 사시게 되어 연락이 뜸하던 차에 서로 시간이 맞아 가까스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어느 정도의 적응기를 거친 후 지금은 한국이 그립지만 그곳 생활에 차차 적응하며 재밌게 지내고 계신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대화 중 선생님께서 여쭤보셨다
-선생님은 어때요? 여전히 운동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시지요?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세요?
그 질문에 너무 반가워서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던 터라 호들갑을 떨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런 주제로 대화를 해도 그 선생님과는 전혀 민망하지 않았다. 그동안 읽었던 책이나 공부했던 내용, 운동하면서 달라진 점 등을 마음껏 이야기했더니 속이 후련했다.
선생님과는 재작년 동학년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같은 또래 아들을 키워서 그런지 아이들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다. 그런 이유 말고도 선생님과 공통점은 뭔가 계속 배우고 시도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도서관에서도 자주 마주쳤고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사교육보다는 엄마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선생님 덕분에 시에서 운영하는 축구교실을 소개받기도 해서 아이가 1년 넘게 다니고 있다.
선생님도 나도 방법을 바깥에서 찾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전환하고, 항상 배울 거리를 찾는다는 점이 비슷한 부분이었다.
선생님은 멀리 외국에서 지내면서 가사와 아이 키우는데만 몰두하지만은 않고 바깥으로 나가 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기적으로 모여 운동을 하게 되면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자기 발전을 위한 강의나 책도 끊임없이 읽고,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와 함께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며 자칫 외국에서 지낸다는 이유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알차게 보낸다고 말씀하셨을 때 너무 반가웠고, 동질감을 느꼈다.
방학인데도 쉬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방학이라 엄마는 학교 안 가서 좋겠다는 아이에게(자기도 방과 후 수업만 듣고 오전에 집에 오면서) 엄마도 공부한다고, 엄마는 쉬는 게 아니라 연수중이라고 말해도 아이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일기를 쓸 때 나도 책을 읽고 요약하여 정리하는 일을 하고, 이렇게 가끔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하며,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면서 씨름하고 짜증 낼 때 나도 안 풀리는 문제를 (6학년 문제인데) 한창 잡고 있다가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풀기도 한다.
아이가 영어 학원 숙제를 할 때 같이 문제를 풀고, 나도 매일 듣는 영어 방송을 재방송을 찾아 듣는다.
책 반납할 때가 되면 같이 도서관에 가서 각자 멀리 떨어져서 보고 싶은 책을 구경하고 집어 들어 읽는다.
방학인 선생님을 대부분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쉬면서 월급을 받는 좋은 직업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그 부분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부분 모르는 사실은 방학 동안 교사는 교육공무원법 41조에 의거하여 근무지가 아닌 장소에서 연수받아야 하는데 장소가 가정이나 다른 어떤 장소도 괜찮은 것이다. 방학은 교사의 쉬는 날이 아니라 41조 연수 기간인 것이다. 연수 과목이 정해지고 일정 시간 이상 이수해야 하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 연수는 아니지만 기간별로 주제를 정해서 교육과정과 관련된 다양한 연수를 스스로 계획하여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41조 연수를 매우 충실히 이행 중인 셈이다.
방학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마음은 누워서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싶지만 여전히 비스듬하게 앉아 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이 글을 마치면 아까 못 풀었던 수학 문제를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축구간 아들을 데리고 온 후 저녁 준비를 하면서 영어 방송을 듣거나 뉴스를 들을 테고 저녁 후엔 아이들이 푼 문제집과 일기 검사를 할 예정이다. 모두 마친 후엔 다시 책을 읽을 것 같다. 뻔한 하루 일과지만 이유를 찾으니 좋다. 나는 이렇게 놀면서,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냥 누워있지만은 않는 것이다.
최근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옮겨 적으며 글을 맺고자 한다.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고. 어떤 행위는 쓸모가 없는 만큼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온갖 일들과 행위와 느낌과 생각들로써 그는 하나의 무늬를, 다시 말해, 정연하거나 정교한,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다. 선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또한 현상과 달빛을 함께 얽어 짤 수 있는 환상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그렇게 여겨지면 그런 것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여, 삶의 거대한 날실에, 사람은 다양한 실가닥을 선택하여 무늬를 짬으로써 자기만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장 뚜렷하고,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무늬가 하나 있다. 태어나, 성장하여 결혼하고, 자식을 생산하고, 먹고살기 위해 일하다 죽는다는 무늬가 그것이다. ---중략---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이제는 삶의 무늬를 정교화하는 데 보탬이 되는 동기가 될 뿐이다. 종말이 다가오면 그는 무늬의 완성을 기뻐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예술품이리라. 그 예술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뿐이라 한들, 자신의 죽음과 함께 그것이 사라져 버린다 한들 그 아름다움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립은 행복했다.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