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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29. 2022

육아 휴직 후 달라진 것들

여섯 시 반에 눈을 떴다.

남편이 출근 준비하는 시각이다.

평소라면 나 역시 출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산책을 가려고 했으나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굳이 나가고 싶진 않았다.

그냥 누워서 책을 폈다.

이게 육아 휴직 후 달라진 첫 번째다.

여섯 시 반에 책을 볼 수 있다. 


남편은 회사에서 아침을 먹기 때문에 따로 아침을 차릴 필요가 없지만 미안한 마음은 있다.

결혼 8년 차지만 아침을 해줘야 하는 아내로서의 의무감은 없다. 남편은 내게 그런 미안함을 주진 않지만 나 스스로 생기는 미안함이다. 그래도 살짝 눈을 뜨고 책을 보면서 아침을 보냈다.

다원이는 7시 10분에서 30분 사이에 일어난다.

학교 가는 준비는 금방 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아이를 꼭 안아 밤새 얼마나 컸는지 본다.

꼭 안아서 얼굴이랑 배에 뽀뽀를 한다.

이것이 육아 휴직 후 달라진 두 번째다. 


어제 먹던 쑥국을 다시 끓이고 도시락 김으로 밥을 말아 아침으로 준다.

오렌지를 얼음을 넣고 갈아서 컵에 따라 준다.

아이가 아침밥을 먹는 동안 둘째가 자기 방에서 나를 부른다.

그릇 정리를 하다가 아이 방에 가면 아이는

 "엄마, 옆에 누워."라고 한다.

나는 군소리 없이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끌어당겨 안는다.

아이는 따뜻하고 말랑하다.

눈도 못 뜨고 아이는 엄마 목을 꼭 안아준다.

이것이 육아 후직 후 달라진 세 번째다.

아이가 짜증을 부리는 날도 많지만 아이의 짜증에 내가 짜증으로 화답하지 않는다. 


둘째 아침까지 준비해서 주면 첫째는 밥을 다 먹고 이를 닦으러 간다.

여덟 살은 위대하다.

이를 닦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를 닦는다.

옷을 골라주지 않아도 스스로 고른다. 물론 엄마 눈에 안 차는 옷을 고를 때가 많지만 별 말 안 한다.

그렇게 옷을 고르면 아이는 화장대 의자에 앉아 머리를 빗는다.

"오늘은 양갈래로 묶어줘! 오늘은 높이 하나로 묶어줘! 오늘은 똥머리 해줘!"

손이 야물지 못한 엄마는 화려한 머리 스타일은 아니더라도, 잔머리가 풀풀 날리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머리를 묶어준다.

머리카락이 삐져나오거나 갈라지거나 잔머리가 너무 많으면 기껏 묶은 머리도 풀고 다시 묶는다.

엄마 마음에 들면서 아이도 원하는 머리를 해준다.

이것이 육아휴직 후 달라진 네 번째다. 


8시 20분 등교 준비가 되면 첫째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8시 20분에 타면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많다.

출근할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금은  층마다 엘리베이터가 선다.

아이들이 탄다. 부모와 같이 타는 어린아이들도 많다.

대부분 등교하고 등원하는 아이들이다.

나는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그 시각에는 만원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항상 텅 빈 엘리베이터만 탔었는데 북적이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이것이 육아휴직 후 달라진 다섯 번째다.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다가 학교 들어가는 횡단보도 앞까지 아이를 데려다준다.

아이가 정문으로 들어가면 휴대폰 알림이 뜬다. 아이는 내가 안 보이지만 아이가 학교로 들어가는 계단까지 올라가는 것을 천천히 본다. 내 눈도 아이와 함께 학교 건물에 따라 들어간다. 첫째가 등교할 때 둘째도 같이 가는 일이 많은데 돌아오는 길에 바로 차에 타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은 아이와 우산을 하나로 같이 쓰고 버스정류장에 들어가 다른 아이들이 유치원 버스, 어린이집 버스 타는 것을 한참 본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매달리기도 하고, 그네를 탄다.

아이들이 모두 가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놀이터에 우리 둘만 있다. 육아휴직 후 달라진 여섯 번째다.


빨리 가야지! 늦었어! 라고 말하긴 하지만

나도 마음이 급하진 않다.

둘째가 유치원에 등원하는 시각은 보통 9시 30분쯤 아니면 그보다 살짝 일찍 간다.

둘째는 첫째가 다니던 병설 유치원에 그대로 다닌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지만 지금은 학부모로 이 학교에 드나든다.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만 매일 보고 인사를 나눈다.

평소 같으면 1교시 수업이 한창일 시각에 나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교실이 아닌 내 집으로 다시 간다.

그리고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나만의 하루.  

엄마도 교사도 아닌 나만의 하루는 딱 5시간이다.

온전히 나만 있는 시간을 갖게 된 지금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너무나 안다.

숨 한번 돌릴 새 없이 여러 역할 속에서 바쁘게 살면서 정작 나는 쏙 빠진 내 인생이었다.


휴직 후 두 달,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았다.

영화의 장면이 바뀌듯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기적은 없었다.

늘 그렇듯 하루하루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소와 같이 아이들에게 성화를 낼 때도 많고 늘 바쁘게 하루를 보내 저녁이면 피곤에 지쳐버린다.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아이들을 기다리고 함께 하는 시간,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달라졌다.

그 사소함이 내 마음의 빈틈을 준다.

마음 놓고 한숨 쉴 여유를 준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여유, 편안하다 느끼는 여유  이것이 육아휴직 후 느끼는 가장  큰 변화다.

글쓰기도 달라진 것 중 하나

할 일 없이 집에서 빈둥대지는 않는다.

집안일도 육아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다만 여유가 생긴 지금이 행복할 뿐이다.

비 오는 날 창밖 바라보기(평일 오전에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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