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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May 02. 2022

너희들과 기차여행

4월 마지막 날 아이들과 약속했던 그날이 밝았다.

오늘은 아이들과 처음으로 기차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다.

올해 1월 첫날 아이들과 같이 곡성 여행을 갔었고 거기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봤다.

증기기관차 모양의 오래된 기차를 타고 아이들은 처음 타보는 기차를 신기해했다.

짧은 거리였으나 연방 까만 눈을 굴려 여기저기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기억이 좋았는지 기차를 또 타고 싶다고 했다.

거제는 기차역이 없다.

제일 가까운 도시에 있는 기차역은 진주역이다.

여행 가기 몇 주 전에 기차표를 예매했다.


목적지는 여수

진주에서 여수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는 없었고 순천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출발 시각은 오전 8 45,

집에서 진주역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기 때문에 7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어제저녁에 아이들은 9시가 되기 전에 잤다.

여러 가지 약속을 단단히 했다.

첫째, 뛰어다니지 않기
둘째, 좌우 살피면서 다니기
셋째, 부모님과 손 잡고 다니기


세 가지 약속을 단단히 받아내고 아이들은 기차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아침에 비몽사몽으로 일어났지만 금세 일어나서 정신을 차린다.  말도 하지 않아도 밥을 먹고 이를 닦고 옷을 말끔히 갈아입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그냥 차를 타도 여수에 가면 거제에서 2시간이 조금 안 되는 거리다.

그런데 그 길을 기차를 타고 가려니 거제에서 진주, 진주에서 순천, 순천에서 다시 여수까지 5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가는  흥분, 처음으로 같이 타는 설렘이  여정을  기쁘게 만들었다.


처음 가보는 진주역은 내가 알던 진주역이 아니었다.

대학교 때 있었던 위치에서 개양동으로 위치를 바꾸었고 한옥 스타일로 널찍하게 다시 지었다. 주변은 역세권인 만큼 새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섰지만 아직 신도시 티를 못 벗었다. 8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역사에는 집으로 가는 듯한 고등학생 아이들이 몇몇 있고 사람들도 꽤 있었다.

진주에 있는 항공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인 것 같았다. 교복인 듯 제복인듯한 옷과 모자까지 쓴 아이들이 삼삼오오 집으로 주말을 맞아 떠나는 모습이 예전에 고등학교를 대학교를 집에서 나와 타지에서 다녔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차역에 있는 스탬프도 찍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보니 출발 시각이 다 되어 기차를 탔다.

플랫폼에 있으면서 아이들은 처음에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에스컬레이터, 황색선, 저 끝까지 펼쳐져 있는 플랫폼 등은 아이들의 질주 본능을 자극했다.

특히 둘째는 선로에 놓인 하얀 KTX와 빨간 ITX를 궁금해했고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것은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여서 참 신기했다. 기차는 제 시각에 맞춰 도착했다. 우리 자리를 찾아 앉았다.

처음 타는 기차는 목포행 무궁화호 열차였다.


덜컹 거리는 기차는 금방 출발했고 7-8분에 한 번씩 기차역에 멈췄다.

완사-횡천-북천-하동-진상-광양 기억나는 것은 그 정도 역이지만 한 시간의 여정이 금방 끝났다.

짧은 길이었지만 아이들은 가방에 있는 간식 주머니를 꺼내서 야금야금 오징어도 씹고 육포도 먹었다.

기차는 금방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에서는 10분 정도 기다리니 여수행 KTX가 도착해서 우리 자리에 앉았다.

무궁화호 열차보다 훨씬 빠르고 쾌적해서인지 아이들은 더 신났다.

그렇게 여수에 도착했다.

기차까진 좋았는데 둘째 컨디션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는지 역에 도착하자마자 짜증을 부렸다.

평소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서 졸렸을 텐데 기차에서 신나게 간식을 먹고 떠드느라 쉬지 않았기에 피로가 금방 몰려왔는가 보다.

그런 둘째를 안아주고 싶어도 엄마 역시 짜증을 견디기 힘들었고 곁에 있던 아빠와 누나까지도 힘들어하는 것이 역력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짜증을 밀어 넣고 택시를 타고 오동도에 갔다.

작년 여름에 왔던 여수는 한결같이 관광객으로 붐볐다. 지난번에 묵었던 숙소가 바다에 보였고 금방 오동도 입구에 도착했다.  지난여름에는 아침 산책 겸 운동으로 나 혼자서 오동도까지 걸어갔었던 길을 이번에는 유람선을 탔다.

유람선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유람선 밖 풍경을 보니 거북선 대교와 멀리 돌산대교, 그 위를 날아다니는 케이블카, 빨간 하멜등대, 유람선 안내 방송을 계속 관광지를 설명했다. 우리 눈은 그것들을 찾는라 바빴고 유람선 갑판으로 올라가서 더 시원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바닷가 동네에 살면서, 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배를 타는 것은 신기했다.

한참 시원하게 배를 타고 유람선은 오동도에 닿았다.

빨리 내려 오동도 동백숲으로 다른 사람들과 빨리 듯이 들어갔다.

숲은 시원하고 청량했다. 으스스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서 그런 기분도 잠시였고 오르막은 힘들었고 내리막은 아이들의 질주에 아찔했다.

문제는 이제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이었다.

오동도 밖으로 나가자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는데 아이들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고 엄마 아빠도 피곤한 것을 마찬가지였다. 피곤하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벗어나려고만 하다니 어리석었다. 그래도 그땐 피곤해서 어쨌든 여기를 빠져나가야 했다. 서둘러 걸어 나갔다.

또다시 올 땐 꼭 동백열차를 타야겠다.

오동도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생선구이 정식을 참으로 맛나게 먹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닐 때마다 식당의 기준은 맛집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이냐 아니냐 였다. 그리고 두 번째 기준은 기다리지 않고 빨리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생선구이 정식은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반찬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 갈치구이, 고등어 구이가 맛났다. 맛나게 공깃밥 한 그릇씩 먹고 배가 두둑해져서 다시 택시를 탔다.

이번에는 아르떼 뮤지엄이었다.

아쿠아리움은 저번에 갔었고 이번에는 새로운 곳을 가고 싶어 선택했는데 잘했다.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아름다웠고 놀라웠고 무엇보다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내가 미술 작품 속에 들어가는 색다른 경험은 아이들에게도 신선했었던 것 같다.

2시간의 관람을  가쁘게 마치고 우리는 거의 녹다운이 됐다. 눈이 너무 피곤했다.

기차 타는 시각까지 2시간 조금 안되게 남았지만 아무도 다른 곳에 가자는 말을  했다.

차를 타고 갔을 때는 운전하는 남편은  힘들지라도 옆에 타는 아이들은 의자에 자유롭게 앉아 휴식을 하면서 다른 행선지로 이동을 했다.

하지만 뚜벅이 여행은 걷거나, 택시를 타거나 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았다.

아이들은 힘들다는 말을 연신했고 곁에서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기차역 앞에서 쮸쮸바 하나씩 물고 한참을 앉아 출발 시각을 기다렸다.

둘째는 기어코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아이들과 기차여행을 하기!

휴직 기간에  하고 싶었던   하나였다.

차를  때와 다른 여행의 묘미였다.

기차 안에서 간식을 먹고 책도 보면서 바깥 풍경을 보는 것은 나도 아이들도 좋았다.

 이번 기차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것

- 기초 체력을 기르자

 타고 이동하는 것이 익숙한 아이들에게 뚜벅이 여행은 힘들었던 모양이다.


- 가방은 가볍게

책과 간식,  때문에 가방이  무거웠다.


- 환승하지 않는 기차를 타자.

기차 안에서  쉬어야 하는데 금방 내리고 환승을 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었다.


다시 진주역에 도착했을  아이들은 다음에  가자고 한다.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나는  다시 가자고 약속했다.

단!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훌훌 가볍게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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