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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ug 29. 2022

여름방학 바다탐험(3)

여차 몽돌해수욕장을 어떡하지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간다.

지난주 목요일엔 오랜만에  비가 그쳤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그것은 이제 여름의 것이 아니었다.

여름은 매 순간 자신과 이별하고 있었다.

햇빛, 바람, 공기, 그림자, 사람들.

모두 조금씩 여름과 이별하는 중이었다.

오전에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교실에 들어갔다.

이전 선생님께서 물건 정리를 끝내 놓으셨던지 서랍장들이 대부분 비어있었다. 조금의 학습준비물과 책들, 종이류, 미술 준비물 등만 서가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일단 내가  먼저 할 일은 먼지를 닦는 일. 먼지는 틈새마다, 구석마다 소리없이 빼곡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게 먼지를 다 닦고 나니 정작 내가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먼지를 바다 바람으로 날려버려야겠다. 


이번 여름방학 바다탐험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거제의 아름다운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고  물놀이를 즐기면서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어 시작했다.

사르르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고운 모래와 바다를 둘러싼 경치가 아름다웠던 명사 해수욕장은 맑고 깨끗했고 깊이가 깊지 않아 물놀이하기 좋았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까만 몽돌 굴러가는 소리가 즐거운 학동 몽돌 해수욕장은 물이 차갑고  쉴 새 없이 들이치는 파도가 재미있었다.  


이번에 간 여차 몽돌 해수욕장 거제 9경 중 하나인 여차 - 홍포 해안 비경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명사 해수욕장에서 가까웠다.


여차 몽돌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우리 집(아주동)에서 꽤 멀다. 상동과 거제면 사이를 잇는 명진 터널을 지나 동부면 그리고 남부면으로 이어지는 길은 매우 구불구불하다.

봄이면 벚꽃이 흩날리고 여름이면 수국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꽤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바다는 아름답다.

먼저 여차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우회전을 하면 다포마을 입구에 보이는 빨간 다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게 이어진 빨간 다리는 사람들만 다닐 수 있어 그 옆으로 천천히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도대체 언제 해수욕장에 도착하나 싶게 멀지만 그 불평은 금방 잊힌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면 산 너머로 보였다 사라지는 푸른 바다와 초록섬들이 너무 아름다워 여기까지 운전하며 온 피로를 잊게 만든다.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재잘대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조용했고 나 혼자 감탄하며 도착하며 드디어 도착했다.


이름만 들었을 땐 처음 가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재작년 겨울 드라이브를 왔었다.

그날 바람이 아주 세서 남편의 머리를 흩날렸는데 어찌나 앞머리가 허였던지 흠칫 놀랬었다.


이번에 간 바다는 그날처럼 바람도 세지 않았고 여름 막바지라 그런지 다른 피서객들도 거의 없었다.

뜨끈하고 바삭바삭하게 마른 몽돌을 지근지근 밟으며 바다로 가까이 가는 동안 계속 감탄을 했다.

몽돌로 이뤄진 해수욕장은 꽤 길었고  오목하게 들어선 해수욕장 오른편엔 오랜 세월 바닷물에 깎이고 깎여 만들어진 절벽이 파도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 옆으로 굽이치듯 이어지는 또 다른 작은 몽돌 해수욕장과 숲이 한 편의 그림처럼 이어졌다.

몽돌은 물살이 닿은 곳은 까맣게 빛이 났고 해변으로 밀려오는 바닷물은 초록빛이었다.

푸른 하늘은 솜뭉치를 마구 쏟아부은 듯한 구름이 가득이었으며 바다 너머 소병대도, 대병대도라고 불리는 섬들이  감싸고 있었다.


오후 3시 넘어서 도착한 바다엔 싸늘한 바람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여름 바다였기에 물놀이 준비물을 서둘러 옮겼다.

돗자리, 파라솔, 튜브, 각종 물놀이 도구를 담은 커다란 가방, 간식을 담은 작은 아이스박스까지 옮기자 아이들이 낮잠에서 일어났고 쉴 틈 없이 움직이며 흘린 땀을 식힐 새도 없이 바닷물 가까이 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멀리서 본 바다는 한없이 아름다웠는데 가까이 본 바다는 아름답지 않았다.

아름답기는커녕 바다에 있으면 안 될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평소라면 튜브를 타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어야 할 둘째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한마디 외쳤다.


-엄마, 미세 플라스틱이야. 


물 위에 하얗게 떠있는 것이 물방울인 줄 알았는데 스티로폼이 잘게 부서져 물 위를 떠돌고 있었고 고무장갑, 마스크, 플라스틱 봉지, 나무판자, 시커멓게 썩은 나뭇가지들이 가득 고인 채로 파도가 칠 때마다 해변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쓸려가고 있었다.


 반짝이는 바다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사람들이 만들고 버린 쓰레기가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아이들을 태운 튜브를 끌고서 이리저리 물살을 헤치며 다녔을 텐데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겨우 견디면서 종아리까지만 물속에 들어가서 그나마 깨끗한 곳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바다를 찾았다는 경탄에서 비탄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그동안 갔던 어떤 바다도 이렇게 더럽지는 않았었다.

미역이나 톳 같은 해초나 군소 따위가 파도에 떠밀려와 그것만 피하면 꽤나 재밌게 물놀이, 모래놀이를 할 수 있었고 사실 그런 해초 더미 사이에서 게나 조개도 찾을 수 있어서 재밌기도 했다.


특히 명사해수욕장은 깨끗한 바닷물 속에 물고기가 빠르게 헤엄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 좋았는데

거제 9경으로 손꼽히는 여차 몽돌 해변이 이렇게 쓰레기로 덮여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 조각을 먹는 물고기도 볼 수 있었다.  


피서철이 끝나고 남은 쓰레기가 떠다녀서 그랬을까?

그래도 깨끗한 곳이 있겠지? 하면서 아이와 함께 해변을 걸었다.

하지만 걸을수록 더 처참한 광경만 이어질 뿐이었다.  

오래 보아야 예쁘고 가까이 봐야 예쁘다고 했는데  오래 보고 가까이 볼수록 온갖 생활쓰레기만 목격할 뿐이었다.


불현듯 무서웠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바다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가왔다.

얼마 전 읽었던 타일러 라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가 떠올랐다.


우리가 값싸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 스티로폼, 일회용품들이 사실은 우리가 말하는 경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 즉 경제적 외부성에 의해 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저렴하게 사용하지만, 틀린 가격이 비싸게 돌아온다는 구절이 기억났다.


( 출처 타일러 라쉬 두번째 지구는 없다  - 경제적 외부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제삼자나 외부의 영향으로 비용이나 이익이 생기지만, 그것을 통제도 제어도 할 수 없어서 공식에 반영되지 않고, 실제 가격이나 값을 계산하는 데에 포함되지 않는다.)


너무나 쉽게 사용하는 일회용품들이 바다에 흘러들어 가 바다를 오염시키고 그렇게 오염된 바다에서 자란 물고기나 해산물을 섭취하는 인간에게 다시 돌아와 미루어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병들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왜 이렇게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추억의 대상으로만 바다가 남을 수 있다는 공포, 우리가 먹는 수산물들이 각종 중금속, 미세 플라스틱으로 오염되어 그것을 섭취하는 우리의 몸에도 차곡차곡 쌓인다는 공포, 내가 버린 쓰레기가, 쉽게 사용한 각종 일회용품들이 돌고 돌아 결국 내 생활 터전을 잠식시킬 수 있다는 공포. 그런 공포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와 더 이상 해수욕장에 있는 것이 힘들어 서둘러 짐을 쌌다.


더 있다 가자고, 더 놀자고 떼를 부렸을 둘째도 이번에는 군말 없이 튜브를 들고 차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은 역시 아름다웠다. 늦은 오후의 햇살은 바다 위에서 유리알처럼 튕겨 나와 어룽거렸다.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아이들과의 바다 탐험이라 이름 붙인 이런 여행들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것도 바다에게 해주지 않는데 바다에게 아름다움과 재미를 원했다.

그러면서 더러워진 바다를 보고 공포를 느끼며 도망가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한심했다.

나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이 아름다운 바다는 지켜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르겠지만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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