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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05. 2022

태풍이 온다기에

태풍이 점차 가까워 온다.

모두 일찍 잠이 들었다.

아이들 숨소리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고요히 방을 채운다.


오늘은 별일 없이 마음만 바쁜 날이었다.

태풍이 온다기에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은 원격수업으로 대체되었지만 원격수업의  주체인 나는 학교로 가야 했기에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았다. 평소와 비교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갔다.

7 30 주차장 도착. 그렇게 일찍  필요는 없었는데 마음만 급해서 일찍 갔다.

나보다 더 빨리 오신 유치원 선생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벽에 있는 먼지를 빗자루로 쓸고 계셨다.

나도 금요일에 급하게 나오느라 엉망인 교실을 쓸었다.


미지근한 바람이 훅 끼쳤다가 가버린다.

비는 올듯 말 듯.

모든 물기가 바닥에서 고인채로 발길을 잡아챈다.

구름이 산에서 하늘로 올라가 산머리를 가득 메운다.

이따금 떼로 움직이는 새들은 무엇을 피하는지 정신없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나의 교실은 형형하게 불빛을 밝힌다.

다 저문 저녁 같은 쓸쓸한 공기가 아침부터 가득하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텅 비어 고요하다.

책상 발치에서 떨어져 있는 종이 부스러기들만 제 자리 주인을 조용히 기다리는 듯하다.


대강 수업 준비를 마치고 물을 한 잔 마신다.

9시 시작종이 울린다.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원격 수업 공간으로 들어온다.

전화가 잇달아 울리고 문자가 끊임없이 날아온다.

마치 원격 수업의 베테랑인 듯 익숙한 매뉴얼을 읊지만 사실은 금요일에 몇 번 만지작한 것이 다였다.

코로나 이후 저학년만 맡았던터라 실시간 원격 수업은 처음이었다.

무사히 아이들 전원이 다 들어왔다.

아니다 한 명 아직 안 들어왔다.

아버님에게 먼저 전화를 하고 어머님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님은 서둘러 아이에게 전화를 넘기고 나는 차근차근 나도 익숙하지 않은 접속 매뉴얼을 말했다.

의외로 아이는 금방 원격 수업 방을 찾아왔고 마지막 탑승자인 아이는 다른 친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입장했다.

1교시는 이렇게  들어와서 무사한지 확인을 하는 것으로 만족이었다. 안전 교육까지 덧붙여하니 1교시가 대충 마무리되어 잠시 쉬었다.


2교시는 국어. 금요일에 결석을 하여 교과서를 가져가지 못했던 아이는 세명. 나머지는 교과서를 갖고 있어서 일단 교과서로 수업을 했다.

수업 내용은 공감하며 대화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미 공감하고 있지 않는 대화의 장이 펼쳐져있다.

아이들은 각자 마이크에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았고 조작이 서투른 나는 전원 음소거를 하지 않고 내내 떠들었다.

각자의 말을 하고 있으니 공감이 생겨나지 않는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상황만 우선해서 생각하니 서로 통하지 않고 멀어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한 일이다.

원격 수업에서 공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웃겼지만  와중에 손을 들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른 아이들의 소음을 참아내는 아이들이 있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3교시는 영어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수업을 해주셨다. 서둘러 짐을 싸서 4교시에  공책 정리를 미리  놓았다.


4교시는 수학.

1단원은 수의 범위와 어림하기이다.

이상, 이하, 초과, 미만, 반올림, 올림, 버림 등을 배우는 시간이다.

어렵지 않은 개념이지만 어렵지 않다고 그냥 물 마시듯 훌훌 넘기는 것은 안된다.

꼼꼼하게 교과서를 살피고 한 문제 한 문제 다 같이 읽었다.

이번엔 아이들 마이크를 꺼놓고 화면에 집중해서 열강을 하려고 했으나 나는 EBS 강사가 아니다.

아뿔싸.. 배가 고프다며 계속 중얼거리던 한 녀석은 라면을 먹고 있다.

너의 학습권보다 라면이 중요한 거니... 한마디 하려다가 웃으며 그만 두기를 요청하자 카메라를 꺼버린다.

선생님의 말을 그렇게 차단하는구나.

차가운 녀석. 라면은  먹었는지.

웬일로 40분 안에 한 차시 수업을 다 하고 배움 공책도 정리했다.


5학년은 6교시 수업이다. 이렇게 4시간을 하고 (물론  시간은 전담 선생님이 하셨지만)

나는 김밥 한 줄을 먹었다.

김밥은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줄만 주는 걸까? 없는 예산에서 김밥을 사려니  줄씩 겨우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평소에 김밥 정도는 3-4줄을 거뜬히 먹는 나로서는  먹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밖은 어둡다.

비가 내리는 기미도 없다. 바람은 이따금 불고 교실 안은 다시 텅 비어 간다.

5교시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수행평가 계획을 마무리해서 냈고 재택근무 신청을 하고 내일 복무를 상신했다.

5-6교시 수업 내용을 학급 방에 있는 학습방에 정리하여 올리고 영상 링크, 이미지 파일을 순서대로 올리니 5교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뿔싸.. 점심을 먹고 나서 거울을 보지 않았다.

마스크를 쓴 상태가 아니라 서둘러 입술에 뭐라도 찍어 발라야 했다.

립스틱을 급하게 바르고 카메라와 마이크를 켰다.

영상 속 내 입술이 너무 빨갛다.  

아이들은 조금 나른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앉아있었다.

5교시와 6교시엔 콘텐츠를 제시하고 영상을 본 후 과제를 해결하는 수업으로 했다.

잘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그리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싶었는데

그냥 수업을 하는 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설명을 두 번 세 번 네 번 하고도 이해를 못 한 아이들이 문자로, 전화로 묻는 통에 다시 5교시 수업 시간이 지나가고 마무리를 했다.

원격수업 학급 방에 들어가 과제를 한 아이들에게 댓글을 달아주고 내일 수업 준비를 했다.

내일 수업할 내용을 정리하면서 3분기 학습준비물을 검색해보았다.

평소 생각해둔 물품이 없어서 검색이 길어졌다.


네시. 바람이 불기 전에 서둘러 조퇴를  내고 가신 선생님들이 많은지 복도들이 어둑어둑하다.

나도 가방을 챙기고 창문을 꼭꼭 닫은 후 컴퓨터, 전등 모두 끄고 코드까지 잡아 뺀 다음 교실 밖으로 나왔다.

딸내미가 엄마 선물 있다고 문자를 보내왔었다.

태풍이 오던 말던 나는 나의 일을 했고 별일 없이 바쁜 학교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엄마로 살기 위해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 줄 사탕 하나 없이 집에 왔지만 엄마 왔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컴퓨터 화면을 향해 호들갑 떨었던 것이 미안했다.


태풍이 뭐라고 방송도, 학교도, 인터넷도 모두 모두 난리지만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지키는 것이 제일이다.

첫째가 뒤척인다.

꿈속에서 뭐가 그렇게 고단한지 끙끙거린다.

바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지금 태풍은 어디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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