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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12. 2022

월드컵과 발야구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하여

4시 반부터 일어났다 깼다를 반복했다.

수영장에 가야 하는데 오늘은 영 마음이 가질 않았다. 어제 오후 늦게 다녀왔다는 적당한 핑계가 있어 건너뛰기로 했다. 대신 커피를 한잔 끓여 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주의 들쑥날쑥했던 기분이 왠지 글을 쓰지 않아 생긴 변덕인 것 같아 글을 쓰지 않은 시간 내내 불편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고요한 새벽에 나 혼자 있다는 행운을 오랜만에 온전히 누리려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 한다.


지난주 목요일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5학년 스포츠리그전을 마무리했다.

스포츠리그전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 같아도 그냥 5학년 5개반끼리 한 번씩 돌아가면서 발야구 경기를 하는 것이었다. 우연찮게 월드컵 시즌과 맞물리면서 한번 경기를 할 때마다 비장한 각오가 드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스포츠리그전에 앞서 준비를 꽤 열심히 했다.

공차기 연습을 할 수 있는 놀이를 준비해서 1-2시간 감각을 익혔고 수비에서 중요한 공 받기 연습을 할 수 있는 놀이도 1-2시간 했다.  일주일에 2번 있는 체육 시간은 1시간은 스포츠 강사님이 전담하여 수업하고 1시간은 내가 하는 수업이라 여유가 많지 않았지만 주어진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서도 발야구 기본기를 습득할 수 있는 놀이들로 수업을 했다.

더군다나 우리 반 아이들의 넘치는 자신감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실제로 상당수의 남학생들은 공을 매우 잘 찼고 잘 받았으며 상당한 기량을 보이고 있었다. 5학년을 오랜만에 했기에 날아다니는 공의 속도를 보면서 놀란 적도 많았다.

여학생들 역시 몸이 가볍고 날랜 아이들이 많았다.

높이뛰기, 멀리뛰기 등의 도전 영역이나 피구, 빅발리볼, 배드민턴 등의 경쟁 영역의 활동을 할 때 바람과 같이 날아서 착지하는 싱그러운 아이들을 볼 땐 나의 무거운 몸뚱이가 한없이 초라해지곤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만큼 열심히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담임으로서 나의 자신감도 팽팽하게 부풀었던 것 같다.

그 자신감은 딱 첫 번째 경기까지였다.


시합은 남학생끼리 1번, 여학생끼리 1번씩 학생들 모두 차는 전원타격제 방식이었다.

상대팀은 1반이었다. 우리 옆반 선생님께서는 경기에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다면서 자기반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의욕도 욕심도 없다며 하소연을 했기에 경기 전 방심을 했었나 보다.

그런데 운동장에 조금 늦게 들어섰을 때 눈을 의심했다. 1반 아이들은 페트병과 피켓을 준비하여 응원전을 미리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이럴 줄 몰랐다며 우리는 왜 준비를 하지 않았냐며 경기 전에 풀이 죽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나 역시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현란한 상대팀의 응원 사이에 우리 반 아이들은 다소 의기소침하게 경기를 시작했다. 심판은 교감선생님께서 봐주셨다.


먼저 여학생이 경기를 했다. 아쉬운 순간이 많았지만 일단 경기력은 비슷했다. 아직 룰을 모르거나 공을 찰 때 부담감이 느껴졌는지 파울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또 가까운 베이스에 공을 던져 줘서 주자를 아웃시키면 되는데 점수를 내주지 않으려고 홈으로 공을 보내니 홈에 있던 포수가 공을 놓치고, 아무래도 공보다 아이가 빨리 들어오게 되니 점수를 내주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여학생 경기는 5:7로 우리 반이 졌다.


이어지는 남학생 경기에선 일주일 동안 못 왔던 남학생 2명이 참가하여 그래도 기대를 했었나 보다. 점심때마다 나가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도 많았던 터라 아무래도 여학생들보다는 잘하겠지 싶었는데.

공을 찰 때 약하게 띄워 차는 아이들이 많아 플라이 아웃을 당하거나 3루에서 홈으로 들어올 때 1반 아이들이 수비를 상대적으로 잘해서 아웃을 당했다. 아무튼 경기력은 비슷해서 5:5 접전이었다. 주자 만루인 상황에서 마지막 타자가 공을 잘 차기만 하면 되는데 힘없이 날아간 공이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순간과 우리 반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간발의 차이였다. 옆에 서 있던 나는 세이프를 외쳤으나 주심을 보던 교감선생님께서 아웃을 외쳤다.


그 순간 우르르 스탠드에 앉아있던 우리 반 아이들이 달려와서 교감선생님 앞으로 가서 항의를 했다.

어!!! 이거 많이 보던 장면인데.

(28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가 끝난 손흥민, 벤투 감독, 이강인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대한민국 대 가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우리나라 팀의 마지막 공격 기회가 있었음에도 경기 종료를 알린 주심에게 항의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코너킥을 한 번 더 차면 마지막으로 공격하여 득점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대로 끝내 버렸을 때 그 황망함과 허탈함을 티브이로 보는 나도 그랬는데 선수들을 얼마나 억울했을까.


주심이었던 교감선생님은 1루에 계셨고 나는 홈에 있었기 때문에 누가 더 정확히 봤느냐 하면 그것은 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이 앉아있던 스탠드도 홈 바로 앞이어서 아이들 대부분이 먼저 들어왔다고 봤던 것이다.

또한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이는 발이 빠른 아이였고 승부욕도 컸던 터라 자신이 아웃당했다는 것이 억울했는지 교감선생님께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다.


아이들이 교감선생님을 둘러싸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단호한 교감선생님께서는 아웃을 정확히 외치셨고 결국 우리 반 남학생 경기는 5:5로 비기게 되었다.  한 점만 더 넣으면 되는 상황에 마지막 아웃이 석연치 않았기에 아이들을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 저런 말 구시렁대면서 경기 결과에 미련을 보였다.

교실에 돌아와서 6교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여전히 경기 결과로 설왕설래했고 급기야는 우리 반끼리 서로 잘했네 못했네로 발전해 비난하고 있길래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마지막 판정이 아쉬워. 하지만 경기 내내 너희들 최선을 다했어. 내가 봤어.  누구 한 명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 잘했든 못했든 너희는 그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가 이렇다면 받아들이는 것 역시 우리 몫인 것 같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이런 말이 있지. 우리 반 잘했어. 정말 멋졌다."


마지막으로 아웃당한 남학생 얼굴이 너무 안 좋았기에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저는 정말 먼저 들어왔어요. 진짜 아웃 아니에요."

"알아. 선생님도 그렇게 봤어.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해. 정말 빨리 잘 달리더라. 아쉽긴 해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한 네 모습이 정말 멋졌어!" 이렇게 말하는데 그 아이 눈에 눈물이 덩글 덩글 맺혔다.


월드컵 경기를 TV로 본 것이 대체 몇 년 만이었는지

2002년 이후로 축구 경기 전후반을 모두 본 것이 처음이었다.

처음엔 월드컵 하는 줄도 몰랐다. 언론에서 연일 떠들어대도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전, 가나 전 할 때 진심으로 응원했고 포르투갈과 경기에서 극적으로 16강에 들어갔을 때 20년 전 2002년 월드컵의 그 흥분을 느꼈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날이면 밤새 보고는 아침에 와서 축구 얘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선생님 축구 봤어요?"

어떤 선수가 잘했느니 상대 국가 선수가 어땠느니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해설위원의 생각, 그리고 부모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교실 안에서 자연스럽게 펼쳐놓았다.

월드컵과 발야구 스포츠리그전의 환상의 하모니로 2주 정도 우리 반 아이들은 참 뜨거웠다.

경기 결과는 여학생은 총 2번 이기고, 남학생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이기고 지는 결과보다 아이들이 그 과정에서 끝까지 포지 하지 않는 것!

못하는 친구에게 격려하고 잘하는 친구에게 칭찬하는 것!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것! 

이런 것들을 배웠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이기는 것이 훨씬 좋다. 마지막 경기에서 이겼을 때 아이들의 환희에 찬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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