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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19. 2022

남편이 있는데 남편이 없다.

일시적 3인 가족 체제

월요일에 시운전을 갔던 남편이 금요일에 돌아왔다. 남편이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이 몇 주 만인지 모르겠다.

주말에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과 놀면 나는 미뤄왔던 생기부도 작성하고 오랜만에 머리도 하러 갈 예정이었다.

금요일 오후에 남편이 도착해서 둘째 하원도 하고 집에서 셋이 잘 놀고 있다고 해서 나는 늦게 퇴근을 했다.

학교 근처 찻집에서 책도 보면서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낸 후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집에 오니 남편이 수상했다. 주말에 하면 되는 화장실 청소, 쓰레기 버리기, 빨래까지 완벽하게 해 놓았다.

이런 것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너무 무리한다 싶어 그만하라고 말하니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뭔데?

-나 내일 또 시운전가.

-헐!

나의 황금 주말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결혼 8년 차, 8살 6살 어린이 두 명과 성인 두 명, 4인 가족이 분명한데 계속 3명만 집에 있다.

지난주엔 혼자 김장을 하러 가는 바람에 아이들과 주말 내내 집에 있었고(이건 고마웠다) 그 지난주엔 토요일 근무를 했었고, 더 지난주엔 뭐했더라.

아무튼 최근 몇 주간 남편은 주중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남편이 어딜 그렇게 밖으로 도나 싶지만 애먼 의심도 못하게 배 타고 바다에 나갔다.

가끔 놀러 갈 때 타는 유람선도 어지러워서 못 타는 나는 어떻게 하루 종일 배 위에서 일하고 먹고 자는지 남편의 생체 리듬이 의아할 때가 많다. 하지만 올 1년 동안 남편은 4박 5일 시운전을 나가고 있다.

보통 4박 5일, 월요일 아침에 가서 금요일 오후에 온다. 검사가 늦어지면 토요일에 오기도 하고 어떤 주에는 토요일부터 그다음 주 금요일까지 일정이 잡힐 때도 있었다. 남편이 가는 곳은 주로 남해나 동해 먼바다로 인터넷 및 전화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곳이라서 애써 페이스타임을 해도 화면이 끊기거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제 전화가 잘 안 된다 싶으면 될때까지 기다리지않고 서둘러 전화를 끊은 후 만화를 보러 간다.


시운전에서 남편이 하는 일은 주로 장비 검사를 하는 일이다. 장비를 돌리고 성능을 검사하고 고쳐야 하는 장비는 관련 부서와 회의를 해서 처리하고 야간 당직을  서는 일을 한다는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라 흔들리는 배 안에서 그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한겨울에, 그것도 바다 위에서 일하는 남편이 애처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속 안에서 불기둥이 순간적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가라. 우리는 이제 삼인 가족이다.

화가 나면서 미안하면 어쩌란 건지.


애들은 아빠가 끓여주는 만둣국이 제일 맛있었다고 하면서 아빠가 설거지 끝내고 같이 놀기만을 기다렸다.

그동안 창고에 처박혀 있던 트리를 못 꺼냈었는데 어찌 알고 꺼내놓았길래 아이들과 트리도 펴고 장식도 걸었다. 작년까지는 남편과 둘이서 만들었는데 올해는 아이들이 가지도 벌릴 줄 알고 장식도 잘 펴서 걸 수 있다. 복잡했던 거실을 좀 치우고 트리 놓을 자리를 마련한 후 점등했다.

화사하고 은은한 불빛으로 거실이 점점 따뜻해졌다.

밝아졌다 사그라드는 전구. 따스함을 건너 건너 전해주면서 쉴 새 없이 빛나는 전구.

그리고 그 곁에서 같이 웃고 떠드는 어린것들을 같이 보고 싶은 마음뿐인데.


남들은 시운전을 가면 수당도 더 나오고 오히려 좋지 않냐고 말하는데 월급이 조금 더 나오는 것보다는 아침저녁 같이 밥 먹고 주말에 같이 뒹굴 거리면서 부대끼는 것이 아직은 더 좋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남편이 있는 평상시 아침, 아이들 물통을 챙겨주고, 간단하게 과일을 깎아주고, 저녁 먹기 전에 아이들과 놀고, 빨래 쌓여 있으면 개 놓고, 저녁 먹을 때 와글와글 같이 밥 먹고, 먹은 후에 설거지하고, 쓰레기까지 버리고 오는 남편이 필요하다.


나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지금은 너무 버겁다.

아이들이 아플까 봐 이번 주말은 집안에서만 놀았다.

그래도 주말인데 심심할까 봐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보고, 공놀이도 하고, 요리도 같이 했다.

아빠 보고 싶은 마음이야 저 아이들도 같을 텐데 말하지 않는다.

남편이 있는데 남편이 없는 요즘.

연말이라 들뜬 사람들과 달리 여느 때보다도 차분하게두 사람의 몫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나 남편이다.

전화할 때마다 언제 오냐고 묻는다.

알면서 묻는 이 질문은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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