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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30. 2022

사춘기라서 그래요

드디어 방학이다.

방학이 되기까지 마음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교실에서는 독감에 걸려 일주일째 못 나오는 아이들이 연이어 있었고 코로나 환자도 우리 지역에 연일 300-400여 명을 웃돌았다. 작년에는 성탄절 전에 방학을 했었고 평균적으로도 이렇게 늦게 방학을 하진 않았는데 어째 갈수록 방학이 늦어지는 것 같다.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했다. 그래도 시간은 빨리 지나가서 드디어 방학이 되었다.

방학 첫날. 새벽 수영도 건너뛰고 아침잠을 열심히 자고 있는데 일찍 깬 딸이 학교 늦었다면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딸은 오늘 하루 더 가야 했다. 아침을 챙겨주고 있는데 아들이 깨우지도 않았는데도 꿈틀거리면서 엎드린 채 나온다.

딸이 등교하고 아들과 침대에 계속 누워있었다. 아들 냄새를 킁킁 맡으면서, 간지럼도 태우고 누워서 이불속에 한동안 웅크린 채 가만히 있자니 다시 졸렸다. 도서관에서 빌린 나무집 책을 천천히 읽었다. 재밌었다.

조그마한 아들을 꼭 안고 있으니 교실에서 어떤 남학생이 한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걔 사춘기라서 그래요."

6살 아들 한 명도 감당을 못해 매일 아침 애걸복걸, 협박에 사탕발림, 아부까지 모두 동원하고도 끝내는 울음으로 끝나는 판에 12살 남자아이들과의 신경전에서 내가 어떻게 이기려고 했는지. 생각해보면 그때 한 숨 돌리고 넘어간 것이 이렇게 속 편한 아침을 맞을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사건은 이랬다.

개학 후 2주의 시간이 남았지만 그때는 또 나름대로 마무리하느라 바쁠 테니 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으로 방학 전날이었지만 어제만 해도 수행평가를 두 개를 봤고 수학, 사회 진도를 서둘러 나갔다. 사회 공책 정리, 수학 익힘 과제도 빠짐없이 냈다. 그래도 마음까지는 어쩌지 못했는지 수업은 가볍고 재밌게 하고 싶었다.

수학 시간 마지막 단원은 평균과 가능성이다.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몬티홀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요트다이스라는 게임도 하면서 편하게 접근하면서 5학년 수학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또 체육 좋아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맞춤인 배구공 튕기기(언더토스)를 하고 평균을 구하는 놀이도 하면 좋을 것 같아 방법을 알려주고 바로 시작했다. 한 사람당 세 번의 기회를 주고 각자 튕긴 개수의 평균을 구하는 것이었다.

두 명씩 나와서 공 두 개를 주고 약간 연습을 한 후 세 번 시도하고 들어가면 되는데

사건의 주인공인 A는 처음이라 쑥스럽기도 하고 몸이 안 풀려서 잘 되지 않았다.


"이번은 연습이에요."

"아까 계속 연습했잖아. 다른 아이들 많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만하자."

"아, 연습이라고 했는데. 한 번 더 할게요."

"아니야. 너만 더 할 수는 없어."

"아.... 한 번 더 할게요."

"안돼."


그때 융통성을 발휘했어야 했는데 아직 하지 못한 나머지 아이들과 진도와 시간과 아무튼 여러 가지가 섞여서 그 아이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갔다. 처음 하는 것치고 잘하는 아이들도 많았고 아예 공을 띄우는 것조차 못하는 아이도 있을 만큼 편차가 컸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이쁘고 포즈와 표정들이 웃겨서 재밌게 하고 있는데 A는 계속 구시렁거렸다.

"아! 연습이라고 했는데."

"한 번 다시 하고 싶다."

그러다가 한 여학생의 공이 A에게 날아갔다. 동시에 날아온 말은 그대로 교실을 얼어붙게 했다.

"아씨~깝치네."


다들 웃고 떠들던 중, 분명하고도 짧은 그 한마디는 강력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지 그 여학생에게 하는 말인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분명하진 않았지만 말은 한순간에 분위기를 바꿨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그 말을 뱉은 아이는 종이를 찢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들키기 싫어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공을 튀긴 개수와 평균을 구하라고 준 학습지는 이미 잘게 찢어지고 있었고 슥슥 종이 찢는 소리만 교실에 가득했다.


"왜 너희들이 눈치를 봐. 하던 거 마저 하자."

다시 공 튀기기를 시작했고 마침 예상외로 어떤 남학생이 너무 공을 짧고 웃기게 잘 튀겨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행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A는 종이를 찢었고 종이 울리자 그 종이 조각들을 자기 자리에서 대충 쓸어 담더니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당연히 쓰레기통 주변은 종이조각으로 어지러웠다. 점심시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9월에 처음 만나 가르치는 것이 하루하루 재미있고 학교 오는 것도 설레게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정을 떼나 싶어 마음이 허하고 쓸쓸했다. 마음을 다해 가르쳤는데 그 한 마디에 예뻤던 아이들이 처음 보는 타인처럼 어색해졌다. 하교 시간에 자기 자리를 정리하는 A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왜 그렇게 말했어?"

"무슨 말이요?"

"아까 수학 시간에 말이야. 뭐라고 했던 것 같아서."

"선생님이 제가 연습이라고 했는데 그냥 무시했잖아요."

"그게 그렇게 섭섭했어?"

"네."


아이는 이야기를 더 잇기 싫은지 그대로 나갔고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의 말이 얼어있던 나를 흔들었다.

"선생님, 쟤 사춘기라서 그래요."

"어? 사춘기?"

"네. 저도 4학년 때 그랬어요."

"그럼 너도 사춘기야?"

"지금은 안 그래요. 지나갔어요. 걔도 지나갈 거예요."


맞다.  이 아이들은 사춘기다.

12살 몸과 마음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급하게 자라고 변하는 몸과 마음의 부조화가 대상이 누구든, 장소가 어디든 작은 불씨에도 활활 타버리는 마음으로 변하는 중이었다. 그때 내가 불구덩이로 짚불을 든 채 뛰어들지 않고 한 번 숙인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안도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겨울방학식이었다

1교시는 방송조회로 겨울방학식을 하고 2교시는 교실을 청소했다.

책상 서랍과 사물함에 그동안 공부했던 학습지가 많이 쌓여있길래 잘 정리해서 집에 가져가라고 했다. 원래 학습지는 매일 L자 파일에 넣어서 집에 가져가라고 했는데 역시나 군데군데 학습지 뭉치가 쌓여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A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랍에서 꺼낸 학습지를 모아서 쓰레기통에 그대로 집어넣었다.

다시 꺼내서 한 장 한 장 펴서 정리한 후 아이에게 돌려주고 다른 아이도 그렇게 하길래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던 참이었다. 정신없이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여학생 둘이 달려왔다.

"선생님! A가 소독약 뿌려서 눈에 들어갔어요."

"뭐? 괜찮아? 일단 화장실 가서 흐르는 물에 씻어."

화장실에서 씻고 돌아온 아이들은 아까보다는 괜찮다고 했다.

물어보니 교실 문을 청소하는데 A가 소독약을 뿌리다가 옆에 있던 아이들 얼굴에 맞았다는 것이다.


A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다시 물었다.

"친구들이 그러는데 네가 소독약 뿌렸다는데 맞아?"

"네. 청소하다가 그랬어요."

"친구들 눈에 들어갔대. 알고 있어?"

"네. 근데 직접 뿌린 것은 아니에요."

"그래? 근데 아직 따갑대. 괜찮은지 물어봐."


아이는 자기 자리로 가더니 책상 옆에 걸려있던 미술 작품을 거칠게 잡아 뜯고 발로 밟았다. 크리스마스 장식품이라 속에 있던 작고 동그란 스티로폼이 쏟아져 나왔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스티로폼을 옆에 있던 아이들이 다시 쓸어 담길래

"너희들이 하지 마.A가 할 거야."

A한테 빗자루 가져와서 쓸라고 했더니 청소함 문을 열어 빗자루 서너 개를 던졌다. 그러고는 다시 청소함 문을 쿵쾅 거리면서 닫았다.

왁자지껄하던 교실은 싸늘하게 얼었다.

그와 반대로 A와 나의 얼굴을 빨갛게 변하는 중이었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자리 정리하고 앉으라고 말한 뒤 복도로 나갔다.

A에게 빗자루를 정리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씩씩거리면서 여전히 청소함 문을 쾅 닫았다.


"왜 화가 났어?"

"........."

"선생님도 지금 화가 나네. 너도 화가 많이 나는 것 같아. 지금 이러는 것을 보면. 뭐 아까 선생님이 말한 것 중에서 화날 일이 있었어?"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청소하다가 그런 건데 애들이 저 이르잖아요."

"그게 화가 났어?"

"네. 사과도 다 했는데 걔들이 또 선생님한테 일러서요."

"그랬구나. 선생님이 니 이야기 들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사과하라고 했네. 선생님이 니 이야기도 들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은 나도 미안해. 그런데 그래서 지금 이렇게 청소함도 쾅 닫고, 장식품도 발로 밟은 거야?"

"네. 화가 너무 많이 나요."

"나도 그래. 화가 그렇게 막 날 때가 있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알겠어. 일단 니 자리부터 정리하자."


교실로 들어오니 조용했다. 나 먼저 아이 자리 주변에 흩어진 스티로폼 조각을 쓸어 담았다. 뒤이어 들어온 A도 조용히 빗자루질을 했다.  청소를 하니 나도 A도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다시 그 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사춘기라서 그렇다는 아이의 말. 다 지나갈 거라는 말.

화가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A의 말.

짚불을 들고 불구덩이로 들어가지 않은 두 번의 선택모두 옳았다. 모든 아이들이 자리에 앉고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제 누가 그러더라. 너희들이 지금 사춘기라고. 선생님이 그동안 1-2학년들만 봐서 그랬는지 아직 너희들도 그렇게 어리게만 느껴졌는데 그 말에 다시 생각하게 됐어. 지금 정말 생각도 많이 하고 기분도 들쑥날쑥하고 누구랑 싸우고 싶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갑자기 울고 싶기도 하지?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그걸 잊어버렸네. 선생님이 너희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아 미안해. 그런 변화가 너무 당황스러울 텐데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이제라도 알았으니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선생님이 도울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도와줄게. 힘겨운 지금 이 시간을 견디고 있을 너희들이 참 대견하고 멋지다."


그렇게 무사히? 청소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같이 놀면서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하면서 마무리했다.

집에 가기 전, 아이들과 둥그렇게 둘러앉아  2학기 동안 아쉽고 기억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돌아가는 토킹스틱 하나에도 깔깔 웃는 아이들을 보며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서 있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과연 좋은 안내자였는지 확신하기 힘들었다. 안일하게도 지금 이 아이들이 예뻐서 내년도 6학년을 선택하고자 했던 짧은 생각이 우습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제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벌써 보고 싶은 아이들이 생각나는 것은 주책인 듯싶지만

"선생님이랑 2학기에 만나서 아쉬워요."

"선생님이랑 했던 모든 공부가 다 기억나요."

 이렇게 말했던 어떤 아이도, A도, 사춘기라고 알려준 아이도, 다 보고 싶었던 방학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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