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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an 09. 2023

아빠와 함께 겨울 여행

겨울방학을 맞아 친정에서 일주일을 보내기로 했다. 출발하기 전 아이들 옷가지며 책, 장난감, 칫솔, 로션 등을 잔뜩 챙겨 자동차에 싣고서 친정에 도착한 것은 벌써 저녁 6시였다. 마을에서 떨어져 산골 중턱에 있는 친정집은 해가 이미 진 뒤였지만 하얀 눈이 반짝였고 사륜 구동이 아닌 우리 차로는 녹았다가 얼기를 반복하여 반들반들한 마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결국 마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맞은편 눈밭에 주차했다.


그제야 아! 여기 장수지!

지금 살고 있는 거제는 눈이 정말 귀한 곳이지만 장수는 여름엔 비가, 겨울엔 눈이 많이 내리는 산골 중에 산골이다. 나는 거기서 29살이 되도록 살았어도 결혼해서 거제에 산 이후로는 눈을 보기가 어려워 눈을 잊었었나 보다. 내가 주차를 도통 못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나오셨고 짐 가방을 들고 먼저 들어가셨다. 아버지 혼자 살고 계신 친정집은 올 때마다 그대로다. 다만 아버지는 늙어가고 우리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있다는 것이 조금의 차이겠다.


친정에 오고 이틀은 너무 추워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깥 풍경은 한겨울 눈 세상이지만 한낮에는 햇빛도 비쳐서 마당까지는 나가서 눈도 만지고 놀았지만 아이들도 추운 날 바깥보단 따뜻한 방바닥에서 뒹굴면서 책을 보거나 만화를 보고 저희들끼리 놀았다.


셋째 날은 그냥 집에만 있을 수 없어 무주에 갈 작정이었다. 작년 설날 연휴 마지막날에 아이들과 처음으로 무주리조트 곤도라를 타고 덕유산 향적봉에 갔었는데 눈꽃과 상고대 풍경이 아른거려 이번에도 가고 싶었다.

전날 미리 탑승권을 예매했다. 묻지도 않고 아버지 몫까지 예매해 버렸다. 아침을 먹으면서 같이 무주에 가자니까 추운데 뭐 하러 가냐고 하셨다.


-아빠 덕유산 향적봉 간 적 있어?

-있긴 하지. 한 십 년 전쯤?

-작년에 가보니까 좋더라. 애들도 좋아하고. 같이 가요

-추워서 가기 싫어. 너희 차 사륜구동도 아닌데 어떻게 가려고?

-그냥 가면 돼! 어차피 큰길엔 눈 없으니까. 아빠 표도 예매했으니까 같이 가요.


아침 먹고 치울 때까지 달리 말씀이 없으시고 나도 막상 가려니까 귀찮아서 취소할까 싶었는데 설거지를 하고 나오니 두둥.

아버지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외출하실 때 항상 하시는 머리에 스프레이도 반듯하게 뿌리시고, 면도도 깔끔했다. 오히려 준비가 안 된 건 나와 아이들이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밖에 나가니 아빠 차 시동이 걸려 있었다.


-내 차 타고 가자!

-안돼! 우리 애들 카시트 해야 해서 우리 차 타야 하는데.

-카시트 옮기면 되지.


간신히 카시트 옮기고 읍내 마트에서 핫팩이랑 간식까지 사고 진짜로 출발했다. 아빠 차는 결혼 전에 내가 운전하던 SUV인데 오랜만에 조수석에 타려니 차체가 높아 어지러웠다. 천천히 운전하시는 아버지와 뒤쪽에서 신나서 떠드는 아이들. 이렇게 넷이서 여행은 작년 곡성 기차 여행 이후 두 번째다.  아이들이 커서 가능한 여행이었다. 아이들이 아기였을 때부터 여름, 겨울 방학이면 친정에 왔지만 그동안은 집에만 있었고 나가더라도 읍내 나들이 정도였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이제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특히 거제에서 가려면 너무 먼 곳이라 엄두가 안나는 곳들을 장수 친정집에서 출발하면 금방 가는 곳들이 많아 욕심이 나서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이번 여름방학부터였다. 장수에서 무주리조트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라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아빠 차를 타고 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눈이 내린지 꽤 되었지만 음달인 곳은 눈이 여전했고 리조트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에서 나 혼자 운전하기는 벅찼을 것 같았다.


리조트 주차장에 도착하고 보니 스키, 보드를 타러 온 젊은 사람들, 가족들도 많았지만 단연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곤도라 탑승장이었다. 다행히 줄이 금방 줄어들어서 많이 기다리지 않았다. 등산복, 스틱, 아이젠까지 모두 갖춘 등산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아빠는 집에 있는 스틱과 아이젠을 못 챙겨 온 것이 걸리셨는지 계속 말씀을 하셨다. 서서히 올라가는 곤도라는 우리가 방금까지 서있던 탑승장이 개미만큼 작아 보일 정도로 고도를 높이고 있었고 줄 하나에 의지해 올라가는 게 겁이 났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깥 풍경이 너무 좋았다.


이윽고 도착한 정상! 덕유산 설천봉 1520m라고 쓰인 그곳에 당도하자 그곳은 하얀 것은 눈이고 까만 것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곳이었다. 미끌거리는 길과 바람에 몸을 겨우 버티고 한걸음 한걸음 떼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눈 세상, 아버지는 어디론가 바쁘게 가셨다. 아이 두 명 손목을 잡고 아버지 뒤를 따라 올라가니 매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이젠과 스틱을 빌려줘서 아버지는 향적봉으로 향하셨다. 추워서 가기 싫다던 아버지였지만 향적봉만큼은 진심이셨다.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기 바라면서 매점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 시간이 지루하지도 않은지 조잘대며 떠들었다. 유자차를 마셨다가 과자를 집어 먹고 자기들이 찍은 사진을 보다가 또 웃는다. 나도 웃는다. 아버지가 오시고 같이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

소주에 맥주를 섞어 드셨기에 올 때 운전은 내가 했다. 운전 경력이 40년이 넘은 늙은 아버지는 딸의 운전 솜씨가 못 미더운지 졸음에 겨우면서도 눈을 흐리게 뜨고 계셨다. 장수 톨게이트를 지나서야 마음이 놓이셨는지 눈을 붙이셨다.


어린 시절, 여행을 자주 가지는 못했다.

봄과 여름, 가을. 여행하기 좋은 때 농촌에서는 가장 바쁠 일철이라 여행은 엄두도 못 냈을 터였다. 그래도 작은 농촌 마을을 벗어나 기름 냄새 가득한 파란 트럭을 타고 넷이서 갔던 여행지는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 남원 만인의 총과 광한루에 갔었다. 그때 머리가 단발이었는데 앞머리가 정리가 안되어서 엄마가 길에서 머리띠를 사줬었다.

6학년 겨울방학 때는 무주에서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했었는데 동생과 나는 눈썰매를 타고 아빠와 엄마는 스키장을 둘러보러 갔었다. 여성스러운 회색 털코트를 입고 머리는 숏커트를 했었는데 참 안 어울리는 조합으로 당당하게 썰매장을 누볐다.

중학교 1학년 가을쯤에는 원래 지리산에 가려고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 갔었다.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지금처럼 내비게이션도 없이 아빠 차 콘솔박스에 있던 지도책 하나만 보고 무려 소록도에 갔었던 것이다. 소록도 들어가기 전 시장에 들러 낙지를 몇 마리 샀었는데 집에서 싸간 삼겹살과 낙지를 소록도 해변이 보이는 곳에서 급하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노을이 지던 바다에 어떤 아주머니가 갯벌에서 조개를 캤던 것 같다. 나중에 좀 커서야 소록도가 한센인들 치료하던 병원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과속 카메라에 찍혀 아빠가 엄청 투덜댔던 기억도 난다.

중2때인가? 엄마 없이 동생, 아빠랑 같이 진안에 새로 생긴 용담댐에도 갔었고 임용이 된 이후 동생 군대 면회를 가기 위해 강원도 고성까지 작은 모닝을 타고 태백산맥을 넘기도 했었다. 엄마 암 수술 후엔 제주도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때도 참 눈이 많이 왔었는데 영실 고개를 타고 한라산 윗세오름을 올라갔었다.

엄마, 아빠, 동생, 나 우리 넷은 가끔이지만 그렇게 우리들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동생도, 엄마도 이제는 없지만(동생은 해외 파견) 대신 우리 아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이렇게 겨울 여행을 같이 하니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동생과 나는 결혼 후 각자 가정이 있는 곳에서 살고 아빠 혼자 큰 집에서 얼마나 쓸쓸하실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들 딸 다 키워봐야 다 헛수고라는 말이 남의 집 말이 아니다.  매일 얼굴 보는 것도 아니고 전화도 어쩌다 한 번.  가끔 들렀다 갈 때면 아빠는 표현은 많이 안 하셨어도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아이들 견학을 핑계로 아빠와 같이 여행을 하니까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해 불편하고 죄송했던 마음이 조금은 녹는 것 같았다.  


아빠는 향적봉에서 찍은 인증샷으로 카톡 프로필까지 바꿔 놓으셨다. 다음날엔 내친김에 미륵사지 석탑을 보러 익산 여행도 했는데 미륵사지 석탑뿐만 아니라 국립 익산 박물관(어린이 박물관), 보석박물관, 다이노 키즈 월드까지 다녀왔다. 주로 아이들 견학 코스라서 지루할 법도 했지만 아버지는 첫째 손을 잘 잡고 끝까지 같이 다니셨다.

앞으로 얼마나 아빠와 같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굳이 세보지 않아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와 함께 한 여행이 나의 기억처럼  마음 따뜻한 기억이 되길 바란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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