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Jan 15. 2023

왼발 세 번째 발가락

부러지고 나서야 알게 된 너의 의미

이번주 목요일, 오랜만에 새벽 수영을 갔다. 방학이니까 더 열심히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평소보다 쉽지 않았다(하긴 쉬운 날이 없긴 하다)전날 오리발 수업을 못 가서 아쉬운 마음에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했다.

평영 발차기 연습을 했는데 초급 수영반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서는 나는 이제 막 출발을 했지만 속도가 느려서 이미 돌아오고 있는 다른 분과 만나기 일쑤였다. 4가지 영법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평영이다. 앞으로 쑥 미끄러지게 발차기가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짧은 다리와 작은 발을 탓해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발차기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의욕만 앞선 발차기를 하다가 맞은편에서 돌아오는 분과 나의 왼발이 부딪쳤다. 물속에서 부딪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라서 그냥 넘길 법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너무 아파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부딪쳤을 때의 아픔보다 훨씬 더 찌릿했다.


수영을 하다 종종 다치곤 했다. 어린이 수영장에서 연습할 때는 타일에 종아리나 팔이 쓸려 상처가 나는 일이 자주 있었고 발차기를 하다 벽이나 타일을 걷어차서 멍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이번 통증은 꽤 오래갔다. 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직 아이들이 깨지 않아서 나도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잠을 잤는데 자고 일어나 발을 땅에 딛는 순간 잊었던 통증이 발가락을 타고 머리까지 전달되었다.


부위는 왼발 세 번째 발가락이다. 양옆의 발가락들 사이에 끼어 있어서 존재도 희미했던, 발톱 깎을 때나 좀 만지고 평소에서는 신경도 안 썼던 그 발가락이 다쳤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발을 디딜 때는 발꿈치 쪽으로 힘을 줄 땐 그나마 걸을만했다. 앉아있다가 아프다는 사실을 까먹고 갑자기 일어날 때 발가락 전체로 땅을 디딜 때 절로 비명이 나왔다.

"아!"


평소보다 길게 통증이 이어져서 의심스럽긴 했지만 맨눈으로 보았을 때 멍이 심하지 않았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오후엔 아버지가 오셔서 같이 식사를 하고 근처 정글돔에도 같이 갔다.

아버지 친구분이랑 같이 오셔서 우리는 정글돔엔 안 가고 옆에 있는 정글타워에서 미끄럼을 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조금 더 아팠기에 나는 타지 않고 아이들 노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따라다녔다. 한 시간 잘 놀고  집에 가려고 차에 탔다. 왼발로 자동차 사이드브레이크를 밟는데 아프다는 것을 까먹고 힘차게 밟아 버렸다.

"악!"

뭔가 잘 못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아픔이었고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었다.  

아팠다가 사라지는 통증이 아니라 계속, 내내 아팠다. 앉았다가 일어날 때, 걸어갈 때, 심지어 누워 있는데도 아팠다.

그제야 핸드폰으로 발가락 골절을 찾아보았다.

올라온 사진들이 내 발가락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발가락 뼈가 가늘어서 골절이 자주 되고 낫기 힘들다는 글들이 많았다.


골절이라고?

그러면 집안일은? 우리 애들은?

수영은? 겨울방학은? 여행은?

다 물음표였다.

제발 그냥 멍든 것이기를 바라면서 다음 날 병원에 갔다. 하필 비가 한여름처럼 쏟아졌다. 안전안내문자로 우리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앞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쏟아지는데 병원 주차장 자리도 없어서 몇 바퀴를 돌아 겨우 주차를 하고 절뚝거리며 병원에 들어갔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니 간호사 선생님이 사진을 찍고 오라고 했다.

요리조리 발을 돌리고 나머지 발가락을 잡고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왼발 세 번째 발가락.

여태껏 살면서 얘가 이렇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단독 사진을 찍었던 적도 없거니와 왼발 자체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보니 참 작고 짧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보더니 간단하게 말했다.

"세 번째 발가락 끝부분이 작게 떨어졌네요.  차라리 크게 부러지면 빨리 낫는데 이렇게 미세하게 부러진 것은 붙기 힘들어요. 되도록 움직이지 마세요"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골절이라니!

37년을 살면서 크게 아파본 적 없었고 그 흔한 깁스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허무하게 발차기 한 번으로 발가락이 부러졌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깁스는 간단했다. 냉장고에 있어 차가운 깁스를 발바닥과 종아리에 대고 붕대를 둘둘 감고서 발에 맞는 깁스 신발을 신었다. 깁스가 굳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해서 종아리를 들고 가만히 있었다.

머리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어제 상황을 계속 돌려보았다.

발차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쳤다.

그게 다였다.

이렇게 쉽게 부러진다고?

내 뼈가 이렇게 약하다고?

건들면 톡 하고 부러진다더니 진짜 그렇게 돼버렸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가는데 한 손에는 우산, 다른 손에는 처방전과 못 신게 된 운동화 한 짝. 어깨에 들쳐 멘 가방은 계속 흘러내렸다. 뻥 뚫린 깁스 신발 밑으로 비가 들어와서 붕대가 젖었다. 절뚝이며 약국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외출한지 한 시간 반 정도 흘러서 서둘러 집에 갔다. 아이들은 그동안 만화도 보고 잘 놀고 있었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강아지처럼 반기는 아이들은 깁스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첫째는 아빠한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하고 둘째는 졸졸 따라다니면서 온몸에 뽀뽀를 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어떻게 아픈지 정확하게 알려야 했다.

발가락이 부러졌고 걷을 때마다 많이 아프다.

너희들이 엄마를 도와줘야 한다.

움직이면서 하는 놀이는 할 수 없지만  앉아서 할 수 있는 놀이는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 알겠다는 표정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저희들끼리 숙덕숙덕거리더니 엄마를 돕겠다면서 이렇게 목록을 적어왔다.


과연 다 지킬 수 있을까?

의심은 밀어 두고 고운 마음이 고맙다.

새해 액땜치고 거한 것 같지만  이렇게 좀 쉬어가라는 거겠지. 크게 다친 것이 아니고, 손가락도 아니고, 아이들이 아니고 내가 다친 거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깁스 이틀째

약도 먹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니 통증은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다. 씻을 때 보니 멍이랑 붓기도 조금 덜 한 것 같기도 하다.

왼발 세 번째 발가락.

나 여기 있다고 손을 흔들었는데 내가 그동안 그 손짓을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된 너의 의미.

너무 늦었지만 그동안 걷고 뛰고 움직일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해줘서 고맙다.

다 나을 때까지 좀 쉬어.

수면 양말로 붕대 숨기기
작가의 이전글 아빠와 함께 겨울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