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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pr 02. 2023

슬기로운 취미 생활

악기 세 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의 취미는 악기 연주다. 엄청 우아해 보인다.  

집에 있는 악기를 말하자면

일단 산지 7년 된 야마하 전자 피아노 1대

10년 된 오만 원짜리 우쿨렐레 하나

남편이 청혼할 때 연주하겠다고 몰래 산 통기타 하나

딸이 목재 체험장에서 만든 칼림바 하나,

그전에 예뻐서 산 아크릴 칼림바 하나.

리코더 두 개.

그리고 오늘 내가 만든 칼림바 하나 더 추가했다.


요즘 연주하는 악기는 피아노, 우쿨렐레, 칼림바다.

초등학교 때 유일하게 받은 사교육이 피아노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데려갔던 엔젤피아노 학원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말 빼고 매일 갔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사촌 언니, 내 동생까지 같이 다녔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 방학에도 쉬지 않고 정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맨날 다녔다. 5년 가까이 배웠지만 재능도 없었고 더 배울 의지도 없었기에 학원을 관둔 이후 피아노는 우리 집에 있던 가구 중 제일 비싸고 제일 손이 안 가는 것이었다.


가끔 생각나면 딩동 거리다가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된 것은 교대에 들어간 이후였다.

초등 10개 교과(국어, 수학, 사회,  과학, 음악,  미술, 도덕, 체육, 실과, 컴퓨터)를 다 배워야 하는 교대 교육과정상 음악 교육은 꽤 중요한 과목이어서 음악관 옆에 있던 피아노실은 항상 시끄러웠다. 피아노를 안 배웠던 동기들은 피아노실에서 실기 시험을 위해 도레미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작별했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을 때는 당시 유행했던 이루마, 유키 구라모토 등의 뉴에이지 피아노곡을 연습했다. 쉬웠고 작은 내 손으로도 충분히 칠 수 있었다. 그렇게 간간이 치던 피아노는 교사가 된 후 음악 수업, 업무로 했던 합창 지도 등에 요긴하게 쓰였다.


내가 받은 유일한 사교육이 이토록 빛을 발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더 잘 배워둘걸 약간 후회하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5년은 거의 빠짐없이 다녔지만 가라고 해서 갔던 곳이었지 정말 배우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당시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경희대 음대를 나온 고향에서는 드문 피아노 인재셨는데 내가 알고 있는 음악적 지식은 모두 그분에게서 배웠다. 피아노를 칠 수 있으니 악보를 읽을 수 있었고 그것을 기본으로 리코더나 우쿨렐레, 칼림바까지 지금 내가 연주할 수 있는 것의 토대는 피아노다.

 

두 아이를 차례로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 집에 있을 때 참 많이 갑갑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산책도 하고 밤에 야식도 몰래 먹기도 하고 영화나 책을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그즈음 육아휴직 수당 조금 들어오는 것으로  한 달에 10만 원씩 1년을 모았는데 그 돈으로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샀다. 애들한테 동요 들려주려고 샀지만 동요보다는 그냥 피아노 치고 싶을 때 마음껏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가 되었다.

잘 치면 좋겠지만 한 옥타브를 겨우 누르는 작은 내 손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그냥 치기 쉽고 편한 곡  위주로 친다. 예전에 치던 뉴에이지, 마음만은 피아니스트, 지브리 OST 이 정도 악보에서 서너 개씩 치다 보면 꽤 기 분이 좋다.  얼마 전에 어린이 바이엘 한 권을 사서 딸에게 조금씩 피아노도 가르치고 있는데 아직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우쿨렐레는 좀 엉뚱하게 시작했다. 결혼 전에 저녁 시간이 남고 심심하기도 해서(그런 적이 있었다니...) 5만 원짜리 우쿨렐레를 사서 독학으로 연습했다. 요즘은 유튜브만 검색해도 기초부터 심화까지 잘 가르쳐주는 동영상이 천지지만 그때는  유튜브가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시골이라서 강습학원도 없었기에 책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었는데 책으로 배우기엔 한계가 있어 그냥 몇 번 하다 포기했다. 그 이후 우쿨렐레는 버리기 애매해서 방 한 구석에 방치해 두었다.  어느 날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간단하게 코드 집는 방법을 알려줘서 조금씩 연습하다가 지금은 어느 정도 코드 보고 연주할 정도이다. 피아노보다 우쿨렐레는 연주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이 쉬워서 정말 한두 곡 노래하면 속이 다 시원하다.

남들 앞에서 연주하기 민망한 실력이지만 그냥 나 혼자 연주하고 스스로 감탄하는 중이다.

(우쿨렐레 유튜버 추천 - 하루 한장 우쿨렐레, 우쿨렐레 유니)


마지막으로 배운 악기가 칼림바다. 칼림바는 작년 5학년 아이들과 음악 시간에 조금씩 연습했는데 나보다는 우리 딸이 더 좋아한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쳐주려고 집에서 연습할 때 딸이 관심을 보여서 하나 사줬더니 이제는 나보다 더 잘한다.

(칼림바 유튜버 추천  - 파쿠쌤)

목재 체험장에 놀러 갔는데 칼림바 만들기가 있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쁜 칼림바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딸이랑 애프터 라이크를 같이 연주하기도 하고 딸이 칼림바를 치면 나는 우쿨렐레를 치면서 같이 노래하면 좋다. 같은 취미를 갖는 것. 가족과 시간을 가장 잘 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딸이랑 내가 만든 칼림바 - 나무 냄새가 좋다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나 혼자 악기 연주하고 노래하고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취미가 있다는 것. 인생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는,

조그만한 빈틈을 만드는 방법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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