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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ug 07. 2023

여행초보가족 멕시코여행기 5탄

5. 여행 속 여행 과나후아토

여기는 이국땅, 남의 땅에 와서 이렇게 여행이 쉬울 수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를 일부 인용했다.


여행이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하다못해 신혼여행 패키지여행을 갔을 때도 입맛에 안 맞는 여행지의 음식과 모르는 사람들과의 동행, 지불한 비용에 비해 쾌적하진 않았던 숙소까지. 모든 게 다 정해진 여행 일정에서도 불편했던 기억이 좋았던 기억보다 앞서는데 이번 여행은 너무나 편하다.


이동할 땐 동생과 올케가 운전을 전담하고

아침저녁 선선한 날씨 덕분에 쾌적하게 이동하고 빨래도 잘 마른다.

일정을 동생이 다 짜고 동선도 아이들과 아버지를 배려하여 걷고 쉬고를 반복하여 많이 힘들지도 않다.

현지 음식과 한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도록 해서 아침엔 꼭 밥, 국, 김치를 먹고 외식할 땐 멕시코 현지 식당 중에서도 우리 입맛에 맞는 곳으로만 데려다준다.

한국 식당에서 먹은 짜장면과 순두부백반

하지만 이렇게 신세 지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계속 놀고 자고 먹으니 염치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동생 집이라 그런 생각은 별로 안 들었는데 유독 남편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놀러 온 누나 가족이 절대 편할리는 없을 텐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여행 준비를 해주는 동생과 올케가 너무 고마웠다.

그러던 와중에 근처 도시에 일박 이일로 여행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과나후아토


처음에는 도시 이름이 낯설어서 과안후나토? 과후나후토? 입에 붙지 않았는데 그곳에 다녀오니 친숙해져 버렸다. 처음 들어본 도시 이름, 처음 가본 곳!

멕시코에 온 이후 모두가 처음이라 어떤 곳일지 호기심보단 너무 많은 새로운 정보들로 뇌에 부하가 걸리던 차에 또 다른 곳으로의 여행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설레기도 했다.


과달라하라에서 4시간 거리

15세기 이후 세계 최대의 은 생산도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멕시코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 된 곳!

이런 것들은 동생이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알려준 설명들이라 귀에 와닿지 않았는데 딱 한마디

영화 코코의 배경인 도시

이 문장은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이해했다.

파란 하늘, 흰 뭉게구름까진 다른 도시들과 뭐 다를 게 있을까 싶지만 누군가 네모로 가득한 도화지에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알록달록 크레파스로 어설프지만 정성스레 색칠한 것 같은 이 도시는 조각보 같기도 하고 퍼즐 같기도 하다. 한 편의 그림 같다는 말은 너무 흔해서 쓰고 싶지 않아도 딱 그렇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를 나왔는데 나온 지 오분만에 배고프다는 아들의 칭얼거림과 너무나 비좁은 거리에 사람들을 피하느라 금세 지쳐버렸다.

동생이 꽤 걸어야 한다는 말을 미리 하긴 했지만 이렇게 좁은 인도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옆에 즐비한 상인과 상점으로 들어가는 인파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아이 손을 부여잡고 너무 지척인 차도에는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차까진 예상하진 못했다.

인도와 차도가 너무 가까워서 정신 바짝 차리고 걸어야한다

길거리 전기구이통닭의 자태가 너무 고와서 홀리듯 들어간 치킨집에서 홀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먼저 나온 밥과 양배추 샐러드를 한입 먹는 순간 잘못된 선택임을 직감했다. 혹시 내 입맛이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가족 9명 모두 배고픈 상태였고 웬만한 은식도 감사히 끝까지 잘 먹는 우리 남편이 도중에 포기를 선언한 이 치킨집의 맛은 닭은 너무 퍽퍽하고 짰다.

양배추샐러드는 단맛은 하나 없는 드레싱이 과하게 시큼해서 케첩하고 마요네즈만 넣어도 맛있을 샐러드가 전혀 예상치 못한 입맛 버리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밥알은 흩어져 날리고 찰기가 전혀 없었다.

혹시 과나후아토 가시는 분은 이 식당은 절대 가지 마세요

점심을 어느 정도 먹은 후 계속 걸어서 우니온정원에 도착했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서 더운 공기를 더욱 달아오르게 했고 후아레즈 극장의 웅장함은 여기까지 걸어 올라온 노고를 충분히 보상할 만큼 앞으로의 여행의 기대감을 높여줬다.

후니쿨라 타러 가는 길

좀 쉬면서 정신을 차린 후 후니쿨라를 타러 갔다. 모노레일로 피필라전망대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고 시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크기도 적당해서 우리 9명 모두 태우니 딱 맞았다.


사람들의 열기, 지열로 덮여진 거리와 달리 전망대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동안의 땀방울을 식혀줬고 하늘과 맞닿을 듯 거대한 동상 앞에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존재의 겸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뒤돌면 바로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 있어 갑갑하던 마음이 단숨에 뻥 뚫렸다.

그 경치만 봐도 얼음물 한 컵을 쭉 들이켠 것 같은 청량함을 느꼈다. 더한 찬사는 생각이 안 나 생략한다. 전망대에서 먹은 두 개에 50페소짜리 추로스가 낮에 먹는

치킨보다 훨씬 달고 고소하고 쫀득해서 배가 불러도 금방 다 먹었다.

돈키호테 박물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과나후아토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돈키호테에 미친 사람이 그와 관련된 그림, 책, 조각들을 수집하여 이런 박물관을 만들었고 과나후아토에서는 이 열정을 본받아 세르반테스 연극 축제까지 열게 되었으며 그것이 오늘에 이르게 됐다.

부끄럽지만 돈키호테를 정식으로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나 우스꽝스러운 기사도와 충직한 산초에 대해 들어봤기에 너무나도 익숙해서 마치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잘은 몰라도 돈키호테가 가졌던 열정과 그를 흠모하여 그를 기리는 박물관을 만든 사람의 열정이 너무 닮아 아무런 관련도 없는 멕시코의 이 작은 도시를 사랑과 예술로 가득한 도시로 변모하게 한 것 아닐까 짐작케 한다. 아무튼 여행 후 돈키호테는 꼭 읽어야겠다.

여행은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다짐과 약속을 남발하는 객기를 부리게 한다.

너무 걸어서 기운이 없어 더 놀라고 환호할 힘도 없어 숙소로 돌아왔다. 겨우 몇 시간 걸었다고 지쳐버린

나와 달리 아이들은 숙소에서도 낮잠도 자지 않고 놀거니 어김없이 일곱 시에 배고프다고 난리였다.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식당에 들어서자 무섭게 쏟아졌다. 홍수가 많이 난다고 하더니 우리가 걸어온 오르막길이 금세 물길로 바뀌는 모습에 금방 그치길

바라면서도 식사하는 동안 빗소리가 배경음악이 되길 바랐다.

이날 저녁으로 먹었던 음식은 프랑스요리였는데 하나같이 깔끔하고 입맛에 맞았다. 와인 한잔으로 멕시코에서 프랑스로 바뀌는 매직은 역시나 과장이라고 생각되겠지만 빗소리와 함께 한 근사한 이국 요리가 어찌 특별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이런 디자인의 접시를 결국 못찾았다

과나후아토 첫날을 끄적이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그냥 지나가면 핸드폰 사진첩만 빼곡히 채우고 그날의 감정은 모두 날아가버릴까 겨우 짧은 글과 사진을 남긴다. 컴퓨터로 쓰면 금방인데 작은 핸드폰으로 하다 보니 더 시간이 걸린다. 이러고 보니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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