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Aug 10. 2023

완벽한 휴가가 될 수 없는 이유

여기는 먼 나라, 그 외침은 생생하다.

시원한 아파트 베란다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떠드는 아이들

아래로 쭉 뻗은 도로

네모난 색색의 지붕들

우뚝 솟은 나무들

멀리 보이는 도시를 둘러싼 산

산 가까이 모여있는 나무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까지

완벽한 휴가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다 여행 준비를 했고 7월 30일부터 시작된 여행이 이제 중반부를 지나고 후반부로 접어들고 있다. 멕시코에서 9일째인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옷가지며, 그동안 산 기념품 등을 가방에 정리하고 내일  미국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려고 한다. 아침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동생에게 노트북을 빌려 어제 못쓴 여행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데 그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곧 태풍이 북상할 거라고 하고 연일 계속되는 폭염과 잼버리 행사로 인한 잡음으로 시끄러운 모양이다. 거제 우리 집 문단속을 잘하고 왔는지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은 선생님들이다.

핸드폰을 들 때면 거의 매번 교사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그곳은 여름보다 더 뜨겁다.

슬프고 애처로운 교사들의 몸부림들이 태풍처럼 마음을 휩쓸고 지나간다.


수업 준비를 위해 거의 매일 들어가서 자료를 찾고 때로는 내가 만든 자료도 공유하던 곳

선생님들이 크고 작게 학교에서 느끼는 부당함이나 불편함들, 학생들과 즐겁고 애틋한 경험들에 공감하며 얼굴도 모르지만 연대감을 느낄 수 있던 곳

마음 터놓고 하소연마저 편하게 하기 힘든 학교에서 그나마 숨통 트이게 해주는 곳

하루 10-20분 힐링이 되던 커뮤니티가 분노와 고통으로 허덕이는 글로 넘쳐난다.


내가 서 있던 교실이

나를 지켜주고

내가 지켜가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던 교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모두 알면서도

그저 나 혼자 견뎌야 할 일이고 짐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하루하루 버티는 것으로

안도하는 인내와 고통의 장으로 변해

기어코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우리들을 위협하는 목줄이 되어 숨을 가쁘게

하는데도 그것도 모르고

좀 더 인내하지 않아서

좀 더 너그럽지 못해서

아이의 마음을 다 보듬지 못하고 받아주질 못해서

그저 다 내 잘못인 줄 알고

시간이 지나고 더 공부하며 참으면 언젠가는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고 믿었던 순진한 착각이었다.


지금의 나는 좋은 선생님도 아니고 분노하는 선생님도 아니고 같이 참여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또다시 방관하고 있다.


교권, 수업권을 넘어 생존권을 위해 뭉쳐 싸우는 선생님들의 움직임에 동참하지 못하고 가족여행이라는 시답지 않은 이유로 몰래 커뮤니티나 흘깃대는 이 시간들이 참 쉽지 않다. 완벽한 휴가가 될 수 없다.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여진 시를 옮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여기는 먼 나라지만 그 외침은 생생하다.

같이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어 죄송합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저버려 침묵했던 시간을 반성합니다.

곧 같이 소리치고 분노하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여행초보가족 멕시코여행기 5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