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Aug 18. 2023

여행초보가족 멕시코여행기 6탄

6. 걷고 또 걷고 과나후아토 2

집에 돌아온 지 3일째다.

짐 정리하고 그 이후엔 계속 잠을 잤다.

잠에서 깬 이후엔 18일가량 비어있던 집에 우리 대신 살고 있던 곰팡이를 처단했다.

문이란 문은 모조리 닫아 두었는데 그동안 덥고 습한 날씨에 태풍까지 지나가서 그런지 군데군데 있는 얼룩을 가까이서 보면 어김없이 곰팡이었다.

화장실 천장 및 문, 냉장고 손잡이 부분, 식탁 모서리, 원목 화장대 및 침대(베란다 가까운 곳) 등 습한 곳 가까이에 있던 곳에 곰팡이가 슨 것을 보면 이 집이 정남향 집이 아니라 곰팡이가 생기는 건지, 환기를 못해서 그러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청소를 다 하고 보니 여행 중 부러웠던 동생의 너른 집도, 깨끗한 호텔 침실도 다 필요 없고 깨끗한 우리 집이 최고다.


청소도 다했고 이젠 여행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여행기를 핸드폰으로 쓰는 것이 눈도 아프고 오타가 계속 나서 쓰기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글자로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참 어렵다.

피곤하다는 핑계, 힘들다는 핑계, 청소한다는 핑계로

이유는 끝없이 샘솟아도 결국 그때의 내 생각과 시간을 글로 제대로 옮기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한 편의 글은 두려움과의 투쟁인가 싶다.


멕시코에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을 때, 기념품을 사러 갈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갈 때, 좁은 길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아이 손을 잡을 때.

내딛는 걸음마다 여행이 이어졌다.

과나후아토에서 이틀째엔 지역 민속 박물관에 먼저 들렀다. 그전날 밤 비가 쏟아지더니 아침에 먹구름이 개인 하늘은 회색과 하늘빛이 어우러져 뜨거운 햇빛을 가렸다. 너른 광장은 비교적 이른 시각이라 관광객들도 별로 없었지만 쥐방울만 한 우리 아들이 달리는 소리로 이미 가득 찼다.


과나후아토 민속 박물관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여러 문화권에서 남겨진 유물로 가득했다. 박물관 입구와 천장은 오로즈코의 벽화로 채워져 있었으며 멕시코 독립의 주역들의 동상과 그들의 투쟁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곳이었다. 멕시코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하늘과 가까운 이 높은 곳에 그들의 뜻을 남기려고 하는 의미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

박물관에 남겨진 유물들이 승리의 기록이라 보기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조금이라도 내밀하게  알기 위해 맞춤인 곳은 박물관일 수밖에 없다.


오르막 최정점에 있던 박물관을 기점으로 내려오면 수많은 길이 이어진다. 산 꼭대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저마다 다른 골짜기를 만드는 것처럼 박물관 아래 좁다란 길들이 수없이 이어져서 동생이 가는 대로, 가리키는 대로 옳게 갔다가 다시 되돌아가며 길을 서서히 알아갔다. 크고 작은 기념품 가게, 식당, 어제 갔던 우니온 정원, 후아레스 극장도 모두 돌아보며 어제 갔던 길을 다시 익혔다.


그다음 행선지는 프리다칼로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화가 디에고 리베라 미술관이었다.

정작 자신도 화가이면서 유명한 화가의 남편이라는 수식어로 더 유명한 사람이라고 동생이 소개해줘서야 알게 된 사람이었다. 1층에는 어린이 전용 공간이 있어서 아이들끼리 스스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었고 어른들은 계단을 올라가며 그림과 집을 구경했다. 생전에 살았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어서 미술관이라기보다 꽤 부유한 집을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침실, 거실, 서재 등의 공간이 층계를 올라가면서 이어져 있고  디에고가 실제로 사용했다는 여러 가구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 남의 가정집을 몰래 훔쳐보는 조마조마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뻥 뚫린 가운데 통로에 길게 늘어뜨린 날개 같은 조형물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잡고 올라가란 뜻인가


어디로 나가나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걷고 또 걷다가 내려간 길에는 또다시 올라가는 계단이 이어졌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겨우 올라가서야 알았다.  이곳이 과나후아토 대학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저너머 보이는 성당과 피필라 전망대까지 볼 수 있는 명당이 바로 여기구나.

우리 가족 9명 중에서 거기 맨 처음 올라간 사람은 우리 아들. 그리고 올케와 나만 밝은 대리석에 반사된 뜨거운 태양광에 그대로 노출되었지만 한눈에 하늘과 전망대와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어 잠시동안 감탄했다.

서둘러 내려와서 바로 아래 있는 대학 찻집에서 오래오래 앉아서 열기를 식혀야 했지만.

이틀 동안 있었던 과나후아토는 큰 도시는 아니라서 걷기에 적당한 여행지였다.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면서 오랜 시간을 버텨온 건축물을 감상하며 화려했던 한 시절이 지나간 후 고즈넉한 풍경을 간직한 도시 곳곳을 누비는 것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흥겨움과 거리 곳곳에 있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오래된 옛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다 빠르게 변하지는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차를 타고 이곳, 저곳 빠르게 다니는 것도 좋지만

차 없이 한 걸음마다 나의 여행을 만들어가는 여행도 좋다.



.





작가의 이전글 완벽한 휴가가 될 수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