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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Aug 18. 2023

여행초보가족 멕시코여행기 7탄

7. 술익는 마을 데낄라

과나후아토에 다녀온 후 하루 이틀은 집에서 잠자코 있으려고 했다. 여행도 후반부가 지나가고 있었고 급격하게 체력이 고갈되어 갔다. 감기에 걸려 비실대면서도 동생은 계속 어딜 가자고 성화였고 그걸 맞추자면 몸에 알콜기가 있어야 했나보다.

좋아하는 주종은 맥주지만 혼자서 술 마시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해서 출산 전에는 꽤나 많은 술자리를 가졌었다. 두번의 임신과 수유 기간까지 합치니 거의 3년 가까이 알콜을 입에 대지 않은 이후 알콜에 호의적이었던 DNA가 신생아 단계로 순화되었고 코로나 이후 학교에서 회식도 거의 없다보니 술을 먹을 기회는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멕시코는 역시 알콜의 나라였다.

동생과 근처 마트에 갔을 때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트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달랐던 것을 굳이 꼽자면

하나.  맥주 전용칸이 매우 넓었고 냉장고가 아닌 맥주 전용 냉장방이 따로 있었다.

둘. 맥주가 물보다 싸다.

6개짜리 맥주 한박스가 보통 115페소인데 우리 돈으로 8600원쯤하고 나누기 6하면 한병에 1400원꼴이다. 우리나라에서 2리터짜리 생수가 브랜드 있는 것은 2000원꼴하는 것에 비했을 때 진짜 물보다 맥주가 싼 것이다.

멕시코 국민맥주

여름이면 맥주를 달고 사시는 아버지는 식당에서 맥주 2병은 기본으로 주문하셨고 집에서도 식사때마다 맥주를 곁들이셨다. 그건 나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멕시코 음식 맛은 이미 그곳을 떠나왔음을 감사할 정도였지만 (전통 음식에 한해서) 그 음식들은 콜라나 맥주와 같이 했을 때 더 풍미가 느껴졌다.


아무튼 멕시코에서 마지막으로 여행했던 곳은 데낄라였다.

데낄라는 술 이름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데낄라가 도시 이름이었다니!

과달라하라에서 데낄라는 차로 1시간 거리였다. 과달라하라를 벗어나는 순간 시원한 고속도로가 뻗어있는데 그 곁에 같이 있는 것이 블루 아가베였다.

도로와 하늘 바로 아래 맞닿아 있는 산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아가베!

성인 키만큼 자란 아가베부터 이제 막 모양을 갖춘 작은 아가베까지 크기는 달라도 분명한 것은 모두 아가베였다.

고속도로 주변의 밭에는 딱 두종류!

아가베와 옥수수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가베가 월등히 많았던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데낄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차창 너머로 보았을 땐 그냥 저 굵은 이파리를 어떻게 발효시켜서 술을 만드나 했는데 알고 보니 이파리 아래 굵은 밑동을 쪄서 발효시킨 후 증류된 것이 바로 데낄라라고 한다.

술에는 거의 문외한인 내가 데낄라의, 데낄라에 의한, 데낄라를 위한 데낄라에 가는데 굳이 의미 부여를 한다면 선물용 데낄라 구입을 위해서였다.


일요일이었다면 사람들로 치였을 거리가 한산했다.

길 너머로 보이는 대성당의 노란 지붕이 한개의 소실점이 되어 완벽하게 대칭인 거리가 완벽히 아름다웠다. 이 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데낄라를 만드는 회사 소유의 건물이거나 데낄라 주정 공장, 데낄라 전시관 아니면 관련 식당이라고 했다.

우리가 점심으로 갔던 까사 사우사도 전통 데낄라 제조업체였는데 식당을 겸하고 있었다. 식당 내부엔 각종 데낄라가 전시된 박물관도 있었고 데낄라 드럼통으로 가득하게 인테리어를 해두었으며 아주 오랜 세월이 묻어 있는 정원은 얼마나 오랜 시간 데낄라를 만들어왔는지 알수 있었던.. 시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음식 맛은... 나초가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간 곳은 호세 쿠엘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데낄라로 데낄라 만드는 공정을 한 시간정도 관람할 수 있는 투어도 있어서 가족 모두 참여했다. 쿠엘보가 까마귀라는 뜻이라는데 집을 들어서자마자 대형 까마귀 한마리가 있어 지나가는 관광객 모두 사진을 찍었다.

데낄라 홍보 동영상을 십분 정도 감상하면 미로처럼 된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데낄라 만드는 과정을 영어로 안내해줬다. (스페인어와 영어 둘 중 선택을 하면 된다)

클래식카 서너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술 익는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잘게 분쇄된 아가베를 커다란 트럭에 담는 모습과 아가베 열매가 푹푹 찌고 있는 열기에 가뜩이나 31도에 육박했던 공기가 더욱 달궈졌다.

오랜 건물과 달리 발효 공정실은 매우 현대적이고 위생적이었다.

아가베 열매는 매우 큰 솔방울처럼 생겼고 푹 찐 아가베 냄새는 고구마 찌는 냄새와 비슷하지만 더 진하고 달큰했다. 중간중간에 데낄라 음용 공간이 있었는데 안그래도 덥고 컨디션이 안좋았는데 술 한잔이면 쓰러질 것 같아서 자제했다.

그리고 데낄라 숙성 공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정교하게 쌓아올린 삼각 피라미드의 드럼통이 가득했다.


안내해주는 사람이 여러가지 데낄라의 종류에 대해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전혀 못 알아들었고 돌아다니는 내내 술 한잔 안했어도 이미 온 몸이 데낄라로 절여진 느낌이었다. 투어 끝에 나온 가게에서 데낄라 몇 병을 싸게 구매했고 바깥으로 나왔다.

3시에 시작한 투어가 4시에 끝나니 늦은 오후의 열기는 데낄라 중앙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그래도 사진 한장은 남기고 싶어서 십여분을 기다려서 가족 사진도 찍었다.

그때는 호객 행위라고 생각해서 사진 부탁을 안했는데 알고보니 이렇게 열정적으로 찍는 이 아이가 데낄라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아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그걸 알곤 찍어달라고 할 것을 후회하셨지만 이미 사진은 넘치게 찍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사진 찍는 중
우리 딸이 찍은 사진

술 익는 마을 데낄라

박목월의 나그네가 떠올라 옮겨 본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데낄라를 다녀오고 구름처럼 우리집에 가고 싶었나보다.  데낄라를 마지막으로 멕시코 여행기를 마치고 이젠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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