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 숲의 빨간 여름, 까마귀밥나무
겨울 숲의 빨간 여름, 까마귀밥나무
앙상한 나뭇가지들만 즐비한 겨울 숲의 단조로움 속에서 나의 눈을 번뜩이게 하며 반갑게 손짓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뭇가지들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빨간 열매들이다.
숲에서 이 빨간 열매들을 달고 있는 까마귀밥나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처음에 이 나무를 알게 되었을 땐 까마귀밥여름나무라고 불렸다. 여름은 열매를 뜻하는 옛날 말인데 까마귀가 먹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계절을 부르는 말인 여름도 봄에 꽃이 핀 나무들의 열매가 그때쯤 열린다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여기서 여름이란 말을 빼고 까마귀밥나무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 개인적으론 까마귀밥여름나무가 훨씬 정겹지만 유식한 학자들이 그렇게 한다고 정했으니 하는 수 없이 그렇게 부를 수 밖에.
까마귀밥나무의 여름(열매)은 겨울에 진가를 발휘한다. 빨간 열매가 제법 먹음직스럽게 여러 개가 모여 달리는데 크기는 새끼손톱 만하다. 그러나 정작 맛을 보면 좀 쓰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했지만 이건 예외다. 맛과 크기를 볼라치면 사람이 먹기엔 헛웃음만 나오는데 이 빨간 열매의 손님은 따로 있다. 바로 새들이다. 이름도 까마귀밥 아닌가. 겨울철 높은 가지에 남겨두는 감을 까치밥이라 하고 숲에 조롱조롱 달려있는 빨간 열매를 까마귀밥이라 하니 우리 조상님들이 새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자연의 순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야생에서 먹고 사는 게 힘든 시기인 겨울철에 아직도 남아있는 빨간 열매들은 새들에게 아주 반가운 식량이다. 멀리서도 알아보고 날아온다. 거기엔 눈의 비밀이 있다. 색을 구분하는 동물들은 생각보다 적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일부 물고기들과 새, 그리고 일부 원숭이들과 사람만이 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물고기들은 짝짓기 철이 되면 일부 수컷들의 색이 화려해진다. 암컷들은 그 색을 알아봐줘야만 한다. 그래야 맘에 드는 짝을 만나 종족번식의 사명을 이어나갈 수 있다.
새와 원숭이, 사람에게 있어 색의 구분은 먹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중에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색이 초록색과 빨강색이다. 많은 열매가 초록색에서 빨강색으로 변한다. 나무 입장에서 보면 아직 씨가 제대로 영글지 않은 상태의 열매는 누군가에게 먹히면 안 된다. 비록 나중엔 열매가 먹혀 소화기관을 통과하여 씨만 남게 되는 일이 될지라도 그땐 잘 여문 씨앗이 충분히 소화액을 견디어 낼 수 있기에 아직 기다리라고 한다. 맛도 너무 시거나 떫거나 쓴맛을 보여주며 기다리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게 바로 초록색인 것이다. 그러다가 잘 익은 열매가 되면 적극적으로 유혹을 한다. 얼른 먹어달라고, ‘어서 와서 날 먹고 씨앗을 멀리 보내줘’하며 먹음직스러운 색을 띠고 유혹을 한다. 그럴 때 사용하는 색이 빨간색이다. 이 신호를 잘 알아채야만 맛있는 열매를 얻어먹을 수 있다. 열매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덜 익은 초록색 열매는 맛도 좋지 않을뿐더러 때론 독이 있어 배앓이를 일으킬 수 있고 치명적인 생명의 위협을 가할 수도 있기에 식물에게 허가받은 빨강 열매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중요한 생존 능력이 되었다.
까마귀밥나무는 전국에서 흔하게 자생하는 나무로 산지 계곡 근처에서 주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습한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 자라도 키가 1∼1.5m로 높이 자라기보다는 옆으로 넓게 퍼지는 관목이다. 겨울에도 짙은 초록의 잎을 몇 몇 달고 있다. 잎의 모양이 동글동글 아기손바닥 같기도 하고 몽글몽글 동화속 구름같기도 하다. 사오월 봄이 한창일 때 피는 꽃은 크기도 작지만 색도 잎의 색과 비슷한 연두색 가까운 노란색이서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니 까마귀밥나무가 가장 눈에 띌 때는 빨간 열매가 달려있는 가을 겨울이다. ‘무엇이 중헌지’ 확실히 아는 나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