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어른들의 구슬치기

파트너 다이어리 4일차

by 이너픠스

아침 4시에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가족들이 깰까봐 소리를 켜두지도 못한 알람.

혹시나 비가 오고 있지는 않을까 헛된 기대를 하면서 날씨부터 확인한다.

어김없이 날씨는 맑고 차다.

오늘은 골프를 쳐야하는 날이다.


로펌에 입사하고 가장 많이 들은 얘기 중 하나가 골프 배우라는 소리다. "머리 올려 준다"는 다소 섹슈얼한 일을 선배들은 후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로 여긴다. 하지만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공이 잘 맞을까 하는 불안감. 티박스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정적과 시선. 누군가 "쪼루"라도 내면 그제서야 안도감이 든다. 신참 때는 "잔디밥"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첫 티샷의 불안감은 파트너가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젯밤에 먹은 술로 숙취 가득한 머리를 이고 어르신을 픽업하러 가는 길이면 비싼 돈 주고 이렇게까지 골프를 쳐야하나 하는 생각에 차를 돌리고 싶다.


아마도 골프는 공놀이 중 가장 비싼 운동 아닐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해서 한 번씩 찾는 골프연습장에 가보면 가끔씩 우습다. 다 큰 어른들이 저 작은 공 하나 잘 보내기 위해 이렇게 진지하게 연습하는 모습이.


세간에선 변호사들이 골프를 잘 칠거리 생각하는 듯하지만 내로라 할 실력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바쁜 와중에 짬내어 나가는 주말골퍼가 대부분인 탓이다. 게다가 대부분 책상물림이어서 운동엔 원래부터 별로 소질이 없던 사람들이다.


사법연수원에서는 매년 체육대회를 여는데 행사를 마치면 휴학하는 연수생이 한반에 한둘은 꼭 나온다. 승부욕은 넘치는데 공부하느라 굳은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탓이다. 그 업보가 변호사가 되어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골프 약속이 몇개인지 세어본다. 맑은 날씨에 푸르른 잔디밭에서 만날 약속이라면 기뻐야 할텐데 차라리 비가 와서 밀린 일들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픽업하기로 한 선배가 늦잠을 잤다. 마음이 졸이는 한편 그 선배가 죽 푹 잤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혹시 골프 약속이 취소될 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때문에.


나의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선배는 화장도 못한 채 골프백을 들썩이며 뛰어왔고 나는 또 모좽의 불안감을 안고 클럽하우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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