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이러니 ②

by 목동의 밤

“너 아까 우리 희준이한테 너무 심했던 거 아니야?

그렇게 심하게 물을 뿌리면 어떡해?

희준이가 얼마나 놀라고 무서워했는지 알아?

너가 형이잖아!

덩치도 희준이보다 크잖아.

너보다 작은 동생을 그렇게 괴롭히면 안되는 거야.

너 동생한테 왜 그랬어?”


희준엄마는 꽤 긴 시간 상대 아이를 붙잡고 혼냈다.

아무말 못하고 곧 울 것 같은 아이를 보는데 당장이라도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다.

데스크 앞쪽에서 일어난 일이니 수영장 직원이나 강사가 나와서 저 엄마 좀 말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수영장 관계자 누구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그때 희준엄마를 말리지 않은 게 그 아이에게 두고두고 미안했다.

희준엄마를 말리고 싶었지만 내가 나서기도 애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어른이 돼서,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보고도 비겁하게 방관하기만 한 게 부끄러웠다.

나중에야 든 생각은 내가 수영센터에 언지라도 줘서 그 엄마를 멈추게 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 방법도 있었는데…


참관실에서 봤을 때 상대 아이가 그렇게 혼날 정도로 잘못한 건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져주거나 피하지 않고 똑같이 대응한 게 잘못이었다면 잘못이었을까?


그날 알았다.

희준엄마는 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기 아이한테만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사람이란 사실도.


너무 황당해서 은호도 나도 말없이 집으로 오는데 은호가 침묵을 깨고 한마디 했다.

“자기 애가 잘못할 때는 야단 한 번을 안쳤으면서⋯”


다음날부터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은호에게 물어보니 “그 형, 그날 이후로 수영장 안나와” 했다.


12월 그날, 희준엄마가 은호에게 어떻게 했을지 훤히 보였다.


너무 비겁하고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그 아이에게도, 은호에게도…

모두 보호자가 없을 때 어른이 아이를 상대로 자기 아이 분풀이를 한 거다.


속상하고 억울했다.

딱 그날 하루였다.

늘 참관실에서 아이를 지켜보다 그날 한 번 자리를 비웠다.

내가 자리를 비운 그 틈에 희준엄마가 은호를 혼낸 거다.


희준이 관련해서 수영장에 주의를 달란 말을 여러 번 했으니 그 엄마 나름 맺힌 게 많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은호는 그날 이후 희준엄마를 보면 내 뒤로 숨거나 피했다.


다음날 희준엄마에게

“은호에게 할 말이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주세요.

어제 은호가 많이 놀랐어요” 했을 때도

희준엄마는 당황하거나 일말의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그날 은호엄마 없었잖아.
그래서 은호한테 직접 말한 거지”


그럼 다음날에라도 나한테 말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은호엄마가 언제 올지 알고?
내일 올지 모레 올지 내가 어떻게 알아?”

기가 막혔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 참았다. 대신

“계속 문제가 생기니 둘이 같이 안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은호에게 말할 테니 언니도 희준이에게 말해주세요”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조사관이 내게 그 사건을 물었을 때 사실 조금 놀랐다.

희준엄마에게 불리한 이야기인데 보호자 확인서에 그 내용을 썼다고 하니까.

나 역시 12월 사건을 말하고 싶었지만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 같고 내용만 장황해지는 것 같아

굳이 그 일을 적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그때 나는 엉뚱하게도 실낱같은 희망 같은 걸 걸었던 것 같다.

‘혹시 그 엄마가 이제라도 미안해서 그랬나?’


물론 내 순진한 바람은 완전히 틀렸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희준엄마는 은호가 문제 있는 아이라는 주장하고 싶어 그 일을 언급한 것 같다.

‘어른한테 혼나고 지적받을 정도로 장난이 심하고 문제가 있는 아이’

이런 프레임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피해자는 피해사실에 집중해 말하고, 가해자는 사건 언급 보다는 피해자에 대힌 흠집내기 발언을 남발하며 논점을 흐리려는 경우가 많다)

신고 후 한 달 보름쯤 지난 8월 중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날짜가 잡혔다.

그 사이 늦게라도 강준이나 희준엄마에게 미안하단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사과는 없었다.


그 아이들은 여전히 수영장을 잘 다니고 있었고 가해자 엄마들은 수영장 학부모와 강사들에게 내가 아이들을 신고했다며 탄원서와 진술서를 요청하고 다닌다고 들었다.

나는 수영장에서 사소한 아이들 ‘장난’을 갖고 신고한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강준이에게 한마디 주의를 준 것도 부풀려져 마치 아동학대를 한 사람인 양 소문이 났다.


사고 이후 은호는 수영을 더 할 수 없게 됐고 나 역시 그 엄마들을 마주칠까 무서웠다.

수영을 그만둬 우리 입장을 말할 기회도 없었는데 소문까지 이상하게 났다고 하니 말할 수 없이 억울했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해자는 우리였고 피해자는 강준이, 희준이었다.


목격자 진술서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조사가 왜곡돼 목격자 진술 확보가 중요했는데 강사들은 중립을 지켜야한다며 거절했다.

강준이, 희준이 엄마가 지키고 있는 학부모 참관실에 가서 부탁을 할 수도 없었다.



'(11) 자승자박' 편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629e9b5d75b242a/35


※ 다음 글은 'Ⅳ 학폭위 – 심의위원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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