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는 한 시간 넘게 진행됐다.
운이 나빴던 건 학폭위는 피해자 가슴만 두 번 세 번 멍든다는 항간의 소문에 우리라고 예외는 없었다는 것. 운이 좋았던 건 형사고소로 경찰 조사를 먼저 받은 덕분에 심의위원들의 행정폭력을 ‘원래 그런 것’으로 체념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심의위원회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욕을 할 때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심의위원의 날 선 질문에 시작부터 당황스러웠다.
“넌 없어야 돼. 죽어야 하는 아이야.”
희준이가 은호에게 했던 말이다.
매달 다니던 수영을 쉬고 한 달만에 수영장에 다시 온 첫 날이었다.
치과 수술로 쉰 거라 친구들도 다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은호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은호를 싫어할 수 있고 실랑이를 벌이다 나쁜 말이 오갈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도를 넘었다.
오랜만에 본 은호에게 다른 친구들은 수술 잘 받았냐고, 이제 괜찮냐고, 다시 와서 반갑다는 말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부터 시비를 걸던 희준이는 샤워실에서 은호랑 툭탁거리다 저주에 가까운 말을 던져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탈의실을 나왔다.
희준엄마에게 희준이에게 사실 확인을 부탁한다고, 혹시 사실이 맞다면 주의를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이후로도 나와 희준엄마가 있는 자리에서도 희준이는 은호에게 선 넘는 말들을 했다.
대개는 못들은 척 참고 넘겼지만 너무 심한 표현을 할 때면 놀라서 희준이를 쳐다봤다.
그럴 때 희준엄마는 아이에게 주의는커녕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뭐 놀다보면 애가 그럴 수도 있지’ 식의 반응이었다.
나는 4월, 6월 사건과 함께 희준이의 언어폭력과 관련해서도 신고를 했다.
심의위원은 희준이가 은호에게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물었다.
어른이었다면 차분히 전후관계를 설명했겠지만 당황한 은호는 머뭇거리다 “잘 모르겠어요” 했다.
“전에도 희준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란 질문에는 엉뚱하게도 “아니오” 했다.
심의위원: 희준이는 은호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은호: 모르겠어요
심의위원: 누군가 욕을 할 때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은호: 모르겠어요
초반부터 은호는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여러 번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은호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쳐다봤다.
은호에게 앞의 일들을 말해주는데 서기 역할을 하던 심의위원이 매섭게 나를 보며 호통을 쳤다.
“어머니, 코치하지 마세요!”
진술이 오염될 것을 우려한 것일까?
아이 진술을 중심으로 판단하겠다는 의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진술만으로 피해 사실과 억울함을 모두 소명하기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이가 놀라고 당황해 대답을 못하거나 계속해서 “모르겠어요” 하는 상황에서도 보호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이에게 따로 말을 하는 건 ‘코치하는 게 돼서’ 초반부터 금지됐다.
내가 따로 발언하고 싶은 부분에서는 손을 들어 사회자의 허락을 구해야 했는데 ‘나중에 발언 기회를 주겠다’는 식으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아이 진술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어린아이가 5명의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채 계속해서 질문을 받는 상황은 피해자 진술이 아니라 ‘취조’로 여겨졌다.
극도로 긴장하고 당황해 제대로 답을 못하는 아이를, 도와달라며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를, 보호자인 내가 도와주면 안되는 걸까?
내가 대신 발언했더라도 보호자 발언임을 감안해 사실 여부를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코치하지 말라’는 프레임으로 보호자의 입을 막아버리면 아이는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