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 수영 실력은 어느 정도니?”
“수영을 잘한다면서 왜 잠수하거나 수영을 해서 빠져나가지 않았니?”
“레일은 고정된 게 아닌데 매트로 민다고 매트와 레일 사이에 끼일 수 있니?”
“너는 왜 가만히 있었니?”
“너는 왜 빠져나오지 못했니?”
취조인지 피해 사실 확인인지 모를 질문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은호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테이블 위에 작은 두 손을 모으며 불안해했다.
아이를 몰아붙이는 질문들에 여러 번 손을 번쩍 들었지만 번번이 제지당했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두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당황스럽고 화가 치밀고 답답했다.
이 질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아이가 크게 다치거나 익사에 이를뻔했던 사건에서 심의위원들이 피해자 탓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너는 수영을 잘하잖아.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니? 너는 왜 빠져나오지 못했니?” 같은 질문은 피해자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비유하자면 성폭행 피해자가 육상선수인 걸 안 수사관이 “너는 달리기를 잘하는데 왜 빨리 도망가지 못했니?”라고 물은 것과 같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4월도 6월도 그랬다.
그런데 심의위원들은 사고를 겪은 아이에게 수영 실력을 묻고 수영을 잘한다고 하니 왜 빨리 도망치지 못했냐고 물었다.
4월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나도 머릿속이 멍해져 뭘 어찌 해야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사고가 이렇게 나는구나' 했다.
바로 내 눈 앞에서 순식간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머리도 몸도 작동을 멈춘 채 그대로 얼음이 됐다.
현장에 있던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잠수를 해서 빠져나오거나 뛰어난 수영 실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은호랑 내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할 일도 없었을 거다.
“레일은 고정된 게 아니고 밀면 움직이는데 매트로 민다고 사람이 매트와 레일 사이에 끼일 수 있니?”
4월 사건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이가 매트에 끼일 뻔한 장면이 담긴 영상은 없었지만 바로 직전, 강준이와 희준이가 은호를 매트에서 밀고 끌어내리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증거로 제출했다.
매트에서 떨어진 은호를 향해 매트에 올라간 두 아이들이 합심해 매트를 밀며 공격적으로 다가왔고
주춤주춤 뒷걸음치던 은호는 레일이 있는 곳까지 밀렸다.
은호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심의위원의 말은 가해자들이 매트를 밀었고 은호가 매트와 레일 사이에 끼었다 하더라도
레일은 고정된 게 아니라 밀리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큰 일날 일이 아니라는 해석이었다.
심의위원의 지적처럼 레일이 고정된 게 아니어서 대형 매트로 사람을 밀어 레일까지 밀릴 정도라면 그 사람은 괜찮을까?
레일이 움직이는 거라고 하지만 레일 자체는 굉장히 단단하고 두껍기 때문이다.
심의위원의 추측처럼 살짝 밀어서 밀릴 정도로 고정성도 약하지 않다.
대형 매트와 레일 사이에 있던 사람은 체중 25kg의 작은 아이였다.
더구나 은호가 끼었던 부위는 하필 목이었다.
이걸 이렇게 안일하게 해석하며 아이를 몰아붙이는 그 사람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위험하고 아찔한 장면이었다.
당시엔 안전요원의 빠른 제지로 상황이 종결됐다.
하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가해자들이 계속 대형매트를 밀어 앞에서 은호의 목을 치고 바로 뒤에 있던 레일에도 목이 치여 충격을 받았더라면...
그렇게 위험천만한 상황이 있었음을 아이는 아이의 언어로 미숙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는데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은호는 계속해서 취조에 가까운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날 강준이와 희준이가 매트에서 아이를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은호 가슴과 배에 매트에 쓸린 상처가 났는데 따로 병원 진료를 받지는 않았다.
집에서 연고를 발라줬지만 갈색으로 착색된 상처가 없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바로 병원 기록을 남겨두지 않은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 몰랐다.
내가 너무 안일하고 바보 같았다.
직접 증거도, 수영 강사들의 증언도 확보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수영강사 A가 "그때 은호가 매트와 레일 줄에 끼었다' 고 말한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했다.
A는 그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녹취록에는 이에 대해 분명히 말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도 심의위원은 은호에게 '말이 안된다'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우리 측이 제출한 녹취록은 증거로서의 효력은 커녕 참고사항도 되지 못했다.
'(3) 4월 사건 그리고 6월' 편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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