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증거가 있는 6월 사건에 대한 접근은 달랐을까? 그렇지 않았다.
“조사관 보고서에는 너가 접영을 해서 강준이에게서 빠져나오려 했다고 나오는데 접영은 가장 어려운 수영이잖아.
보통 자유형이나 잠수를 해서 빠져나오지 않아?
왜 접영을 해서 빠져나오려 했다고 한거야?”
조사관 보고서가 문제였다.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된 사실 확인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버무려진 한마디로 짜깁기 보고서였다.
예를 들어 ‘은호가 강준이의 배를 차서(가해자 주장) 강준이가 물속에서 은호의 두 다리를 잡고 흔듦(피해자 주장)’ 이런 식이었다.
은호가 먼저 강준, 희준이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심지어 4월 사건은 날짜도 틀리게 기재돼 심의회 전 이 부분도 수정 요청했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는 2024년 3월 새로 도입된 제도로 알고 있다.
기존에 교사가 하던 학교폭력 조사를 전직 경찰과 교사 출신으로 구성된 2인 1조 조사관들이 맡아 진행하게 된다.
교사의 업무 과중을 덜어주는 동시에 공정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들었다.
정말 좋은 취지의 제도인데, 더구나 조사관 중 한 명은 전직 경찰이라는데 어째서 이렇게 엉터리 보고서가 나온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 사건은 증거가 명확했고 특히 6월 일은 2분이 채 안되는 증거 영상만 확인해도 가해자의 주장이 모두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조사를 잘못 받았다고 느꼈고 사실 확인서를 받았을 때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고 느꼈지만 학폭위에서 소명하고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해 심의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조사관 보고서에만 집착하는 심의위원들의 질문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게 조사관과 심의위원의 역할 아니었던가?
접영이란 단어에 꽂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
가해자의 거짓말로 뒤섞인 보고서만 집착하며
너는 왜 가해자와 말이 다른지 설명하라며 취조하는 자리였던가?
“보고서에 이렇게 써있잖아”
“너가 조사 때 이렇게 진술한 거잖아. 너가 다 확인하고 사인한 거잖아”
“근데 왜 사인할 때는 아무 말도 안했어?”
보고서 내용과 심의회에서 은호의 진술이 다르니 이런 질문들도 받았다.
이게 고작 만 아홉살밖에 안된 어린 피해자를 탓할 일인가?
왜 이런 엉터리 보고서가 나왔는지 조사관에게 확인하고 질책하는 게 상식 아닐까?
어른인 나도 조사관의 질문에 기가 막혔다.
피해자 진술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거짓말을 재차 물으며 이러지 않았느냐 유도했고 거듭 아니라고 했음에도 그들은 내 의견을 보고서에 적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권력자인 2명의 어른은 가해자의 주장을 대변하며 정해진 대답을 종용했다.
심지어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보고서를 다 읽고 사인했으니 그 책임은 오로지 아이에게 있다는 말인가?
두 사람 중 그나마 열린 자세로 내 말을 경청했던 김현진 조사관이 내게 농담처럼 건넸던 말이 생각난다.
“어머니, 은호 아주 똘똘하고 예뻐요.
조사 마치고 내용 확인하고 사인하라니까 ‘선생님, 여기 글자 틀렸어요’ 하면서 맞춤법을 교정해주네요. 허허”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내용이 잘못됐는데도 그 자리에서 그걸 지적하지 못하고 오탈자를 찾아 알려주며 뿌듯해하는 어린아이다.
계속되는 유도 질문에 저항 과정에서 형을 친 걸 “제가 그런 것 같아요”라고 대답할 만큼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아이다.
조사관과 심의위원들,
어른들은 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