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너가 먼저 때렸다며?”

by 목동의 밤

영상 증거를 안보는 심의위원도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변호사 조언을 받아 영상을 초 단위로 캡쳐해 정리한 텍스트 파일도 증거로 함께 제출했다.

증거를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봐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변호사들 표현을 빌리자면 피해 사실이 명확해 입증이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는 쉬운 사건이었다.

가해자들의 거짓 진술은 2분이 채 안되는 영상만 봐도 확인이 가능했다.


심의위원들이 함께 영상을 봤다는 사회자의 설명을 듣고 내심 안심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은 증거를 제대로 본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어째서 어린아이 한 명을 상대로 5명의 어른들이 이렇게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건지,

아님 유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접영과 관련된 질문이었다.


“보통 자유형이나 잠수를 해서 빠져나오지 않아? 왜 접영을 해서 빠져나오려 했다고 한거야?”

은호는 이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너무 긴장해서 설명을 못했지만 집에 돌아와 영상을 확인해보니 아이가 조사 때 왜 ‘접영’이란 표현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강준이에게 포박당한 은호가 빠져나오려고 두 팔을 뻗어 발버둥치는 장면이 있었다.

이걸 아이의 미숙한 언어로 접영이라고 표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미숙하게 표현한 ‘접영’이란 단어가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접영이란 표현이 문맥상 어울리지 않으니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인 건가?


이같은 질문이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데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접영이란 단어를 통해 아이는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데.. 왜 ‘접영’이란 단어에 집착하며 이 단어가 문맥상 맞지 않다며 아이를 압박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정작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건 이 질문을 한 심의위원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너가 먼저 때렸다며?”

“조사관 보고서에는 ‘강준이가 은호의 다리를 놓았으나 은호가 두 다리로 강준이 옆구리를 조였다.

그래서 강준이가 은호의 다리를 꼬집음’ 이라고 돼있는데 너가 강준이 옆구리를 다리로 조였어?”


이어지는 질문들 역시 가해자의 거짓말로 범벅된 보고서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이를 증명해야 할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이게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째서 심의위원들은 서로의 말이 다른 것을 피해자에게 ‘증명하라’고 하는 걸까?

대체 왜 피해자가 가해자의 거짓말을 일일이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걸까?


내가 증거로 제출한 영상에는 물싸움 시작부터 모든 장면이 담겨있다.

은호가 먼저 시비를 건 적도 없고 강준이를 때린 적도 없다.

2분이 채 안되는 영상만 보더라도 한눈에 가해자의 모든 주장이 거짓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명이나 되는 조사관이 작성한 엉터리 보고서도 어이없었지만 5명의 심의위원들까지 보고서 내용에만 집착해 아이를 몰아세울 줄 몰랐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