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엄마들은 나의 '엄마다움'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내가 사고 당일 자기 아이는 안챙기고 엄마들이랑 싸우고 강준이한테 따진 것부터 이상하다고 했단다.
‘애가 그렇게 놀랐다면서 화내고 따질 경황이 있나? 참 희한한 엄마다, 일반적인 엄마 같지 않다’는 말까지 하고 다녔다고 들었다.
학폭위에서 심의위원이 희준이한테 훈계한 게 기분 나빴다며 신고하겠다는 말도 들려왔다.
“너희가 장난이라고 주장하는 그 행동으로 친구는 죽을 수도 있었어”
희준엄마는 자기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심의위원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강준엄마는 한 술 더 떠, 맞은 건 은호가 아니라 강준이인데 진단서를 끊어놓지 않은 게 너무 후회된다는 소리까지 하고 다녔다.
이런 말들을 계속해서 듣고 있자니 현실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기가 막혀 화도 나지 않았다.
어쩌다 나랑 은호가 이 말도 안되는 막장 드라마 속에 엮여 들어간 걸까?
은호와 나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부모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기색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들 머릿속에서 피해자는 자신들이었고 가해자는 우리였다.
“참관실에서 애를 안보고 왜 공부를 해? 왜 책을 봐? 보통은 자기 아이를 보지 않나? 그 엄마, 원래부터 좀 이상했어” (강준엄마)
참관실에서 책을 보는 걸로도 비난받게 될 줄은 몰랐다.
말 같지 않은 말에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머리로는 그렇게 넘겼지만 마음에서는 소화가 안됐다.
그게 어떻게 엄마다움, 부모 자격으로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그 엄마들 말을 정리하면 '평소 자기 아이도 제대로 안보던 사람이 갑자기 우리 아이들을 신고했다. 이상하지 않나?'며 신고 의도를 왜곡한 게 된다.
그 빈약한 논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워킹맘이지만 아이 수영만큼은 없는 시간을 쪼개 데리고 다녔다.
2학년 말 은호가 수영을 시작했을 땐 아이가 너무 어렸고 수영장 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난다는 말들을 들어서 4학년이 돼서도 안심할 수 없었다.
은호를 기다리는 50분 동안 참관실에서 책이나 업무 관련 자료를 보며 바쁜 시간을 활용했다.
수영장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었지만 은호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가끔씩 은호가 참관실의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줬는데 그 또한 아이와 함께 수영장에 오는 기쁨이었다.
아는 엄마들도 많지 않았고 가끔씩 마주치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 짧게 안부를 나눈 후 다시 수영하는 은호를 보거나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엄마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그렇게 엄마다운 엄마들이어서 자기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데도 못본 척한 거냐고.
만약 그 상황을 못봐서 소란이 있고 뒤늦게 알았다면 당신들 말마따나 엄마인 당신들은 참관실에 왜 있었던 거냐고.
자기 아이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수다만 떨고 있던 모습이 당신들이 말하는 ‘엄마다움’이냐고?
못본 척했다면 인간으로서 부모로서 자격 상실이고 못봤다면 '엄마답지 않다'는 말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들어야 한다.
더구나 강준엄마는 그날 처음 본 사람이었다.
적어도 강준이가 수영장을 다니던 3~4개월 동안 존재감도 없던 사람이 매일 아이를 데리고 수영장에 오던 내게 ‘엄마 자격’ 따위를 운운해선 안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