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강준이, 희준이의 법원 송치 결정에 이어 10월에는 강준엄마의 아동학대 결과도 나왔다.
결과는 혐의없음으로 불송치 결정이었다.
등기로 받은 통지서에는 피의자의 정서적 학대 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워 불송치했다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아동학대법도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말들을 들어 확률은 반반이라 예상했다.
그럼에도 절망감은 컸다.
상처를 받고 피해를 받은 건 우린데 학폭위도 형사고소도 아동학대도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어렵게 처벌이 나온다 해도 하나같이 가해자들에게 별다른 타격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쳐서 아픈 건 우린데 소송 과정 하나하나가 피를 말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강준엄마가 이번 일로 경찰서에 불려 다니며 깨닫는 바가 있기를 기대했다.
구청 아동학대 담당자한테 “그분도 많이 후회하고 계세요. 자기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 말이 작은 위로가 됐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그 엄마는 여전히 많이 억울한 것 같았다.
건너건너 들은 그 엄마의 언행은 아동학대 담당자의 말과 달랐다.
그 엄마는 내가 강준이를 위협했다며 초지일관 피해자 행세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약강강약’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
황당한 일은 또 있었다.
희준이와 희준 엄마도 우리에 대해 떠들고 다녔다.
그들은 우리가 잘못도 없는 희준이를 신고해 학폭위까지 갔고 혐의없음이 나와 억울함을 풀었다고 떠들고 다녔다.
정작 피해자인 은호는 폭력 사건의 피해자라는 수치심에 친한 친구들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니 이 일에 대한 언급 자체를 거부하며 이상 증세까지 보여 수영도 할 수 없게 돼 심리 치료까지 받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피해자인 양 행세하며 사실과 다른 소문까지 내고 다니는 상황이 기가 막혔다.
이 동네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쭉 이곳에 살았다.
강준이, 희준이 모두 은호와 다른 학교였지만 한 다리만 건너도 알 수 있는 작은 동네였다.
어릴 때부터 은호 또래 아이 엄마들과 육아 모임을 해왔고 같이 울고 웃고 복닥거리며 엄마들도 아이들도 함께 자랐다.
내 아이에겐 엄격하게 상대 아이에겐 관대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서로 조심하며 존중하려 노력했기에 친구로 이웃으로 그들과 오랜 시간 함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신고를 결심하고 혹시 나와 은호가 예민한 건지 수십, 수백번 되돌아봤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지만 가까운 친구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럴 경황도 없었고 아이가 피해자로 낙인찍혀 동정 어린 시선을 받는 것도 싫었다.
우리 가족 모두 밖에선 이 일에 대해 함구했지만 작은 동네는 우리 일로 말들이 무성했다.
가해자들이 억울하다며 확성기를 켠 덕분(?)이었다.
문득 강준엄마의 당당했던 외침이 떠올랐다.
“이 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했다구요!”
아마도 그 사람은 같은 이야기를 수십 차례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해 떠들고 다녔으리라.
강준엄마는 ‘피해자다움’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고 당시 은호가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말로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은호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하며 아이는 깊은 수치심과 무력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 특히 중급반의 자기 친구들이 봤을까봐 은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했다.
사람들 앞에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자기 나름 죽을 힘을 다했던 건데…
수영장을 나온 은호는 나를 보자마자 왜 그 애들 안혼나냐고, 나 오늘 절대 여기서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두서없이 말했다.
나중에는 환청을 들었고 환청을 들은 다음 날부터 몸이 아파 3일간 학교도 나갈 수 없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데, 괜찮은 척한다고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닌데.
은호 앞에서 ‘피해자다움’을 운운하며 은호 흉내를 내고 조롱했던 강준엄마의 행동이 새삼 상기돼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반추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동은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