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관료집단 ③

by 목동의 밤

우리 사건 담당 장학사로부터 답변이 도착했다.

장학사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사과는 끝내 없었다.

‘사과문 전달 과정의 미흡한 점에 대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대답이 전부였다.

담당자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부분도 개인정보보호법을 근거로 양해 바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법원 제출용 답변서와 관련한 답도 받았다.

장학사는 우리가 2월 중에 해당 사과문을 수령했음을 긴 문장으로 강조했다.

이 문장을 줄이면 이렇다.

‘가해자가 24년 O월 O일 조치 이행 완료했고 이를 가해자 학교 행정실에서 등기 발송했음을 확인했다.
피해자 학교 우편물 전달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25년 2월 중에 등기 우편물을 찾아 민원인께 전달했음을 확인했다’


그는 이어 법원 추가 제출 서류는 법원에서 교육지원청으로 ‘조치 이행 확인 요청’ 시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거절이었다.

서류는 기관 대 기관끼리 공식적인 요청이 있을 때 작성해주겠다는 말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우리가 요청한 것은 ‘조치 이행 확인 요청’이 아니라 학교 측 행정 실수를 증명하는 서류였다.

조치 이행 확인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가해자 쪽 아닌가?

엉뚱한 답변에 실소가 나왔다.


그동안 교육청을 상대로 민원을 넣었던 모든 과정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었다.

당신들의 행정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
담당자의 무신경한 발언으로 어린아이가 예기치 못한 상처를 받았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


그들은 어느 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만 메아리가 돼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거대한 벽에 대고 혼자서 계속 떠드는 기분이었다.

이 사람들은 민원인을 바보로 아는 걸까?

길고 장황한 말로 실수를 가리려 하고 민원인을 탓하는 회피성 발언들로 화를 돋우었다.

가뜩이나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절할 수는 없었을까?

책임감을 갖고 조금 더 세심하고 꼼꼼하게 업무 처리를 해줄 수는 없었던 걸까?

어떻게 마지막까지 이렇게 냉정하고 잔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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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과정에서 단 한 명이라도 진심어린 태도로 우리의 말을 경청해주고 공감해줬더라면...

처음 학교에 신고했을 때

조사관 조사를 받을 때

심의위원회에서.


신고 후 조사를 거쳐 최종 결과를 받는 모든 과정에 사명감과 선의를 갖고 진심을 다해 우리를 대해준 담당자 한 명만 있었더라면,

우리의 상처와 아픔은 상당 부분 치유됐을 거다.


처음 상담을 받았던 117 상담직원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건을 조사했던 경찰이 그랬던 것처럼


학폭위에 여러 단계가 있는 것은 피해자에게는 치유의 과정이 되고 가해자에게는 반성과 화해의 기회를 만들고자 함인데(제도를 만든 이의 의도는 그랬다고 믿는다)


처벌이 아니라 가해자의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 제발 방지

그리고 피해자 치유에 초점을 맞춰 제도가 운영됐다면 좋았을 것 같다.

피해자가 과정 과정에서 공감받고 위로받으며 마침내 가해자의 사과까지 받을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었더라면

피해자, 가해자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였을 것 같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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