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고마워’ ‘미안해’ 는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럴 때 피해를 입은 이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사과는 자기 행동에 대한 반성이자 재발 방지를 위한 약속이 된다.
나와 너가 다른 것처럼 ‘피해’와 ‘상처’의 경계도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나는 몰랐지만 누군가 내 말이나 행동으로 아팠다고 하면 주저 없이 사과했다.
당시의 내 행동을 돌아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사과하면서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로 인해 상대방이 겪었을 아픔에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 나와 아이는 갑자기 다른 세상에 뚝! 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 세계에서 ‘사과’는 싸움에 지는 거였고 손해보는 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사과는 자기 행동에 책임지겠다는 몹시 무거운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과는 바보들이나 하는 거였다.
그런 세상에서 8개월을 살았다.
처음에는 가해자 부모들과 나중에는 관료들과 싸우며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었다.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때,
상대가 진심으로 내게 미안함을 전해왔을 때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따뜻함을 느꼈다.
내가 살았던 따뜻하고 상식적인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평온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겪었던 아픔에 대해 폭력에 대해 말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 잔인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이러니했다.
싸움이 길어지고 오가는 말이 많아지면서 대체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학폭 신고 후 피해자인 우리에게 치유의 기회가 있었을까?
잔혹한 가해행위를 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가해자1과 혐의없음으로 빠져나간 가해자2.
허탈한 결과보다 참혹했던 건 학폭 진행 과정에서의 행정폭력과 2차 가해였다.
‘처음부터 가해자 처벌 따위는 없었나보다. 이 판이 원래 그런가보다’
분노와 냉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