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조언대로 서류상으로만 소통했더라면 이렇게 또 마음 다치는 일은 없었을텐데…
통화하는 동안 그 사람은 ‘메뉴얼 상에서 제가 잘못한 부분은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관련 서류를 원하면 써드릴 수는 있지만 제가 행정적으로 잘못했다고 쓸 수는 없어요”라고도 했다.
그는 많이 억울한 것 같았다.
흥분해서 계속해서 떠들던 그의 말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다른 학교 학생들끼리 학교폭력이 일어났을 때 사과문을 학교 간에 어떻게 전달해야 한다는 메뉴얼 자체가 없다. 법령에도 있지 않다.
조금씩 전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강준이 학교에서 등기로 보냈다고 나한테 연락 한 번만 줬으면 좋았을 거다.
우리 학교도 교무실에서 등기를 받아 내가 속한 학년부 우편함에 넣어놨는데 아무도 말을 안해줘서 몰랐다’
나는 터져나오는 울분을 억누르고 메뉴얼상, 행정상 잘못한 게 없다면 선생님은 어제 어떤 걸 사과하신 거냐고 물었다.
그는 ‘전달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고 답했다.
‘법령과 매뉴얼에 구체적인 지침이 없으니 잘못한 게 없다’는 황당한 개소리에 구구절절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절차를 밟아 관련 서류를 요청 드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장학사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민원, 담당 교사에게 법원 제출용 답변서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 민원을 넣고 다음 날 담당 교사에게 장문의 사과 문자가 왔지만 더 이상 그 사과가 진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학생생활부장으로 학교폭력 담당업무를 맡게된 선생님 개인의 고충은 전날 통화를 통해 충분히 들었다.
그는 아무도 안하려고 해 억지로 떠맡게 된 자리라는 말도 했었다.
그래도 교육자로서 최소한의 책임감과 사명감은 있을 거라 기대했다.
생각해보면 사과했던 한순간을 제외하고 그의 캐릭터는 변함없었다.
그래서 사과문 누락이 그 교사의 실수란 걸 알았을 때도 처음 든 생각은 ‘역시, 그 사람이 그럼 그렇지’ 였다.
‘어떻게 저렇게 불성실하지?
어떻게 저렇게 대놓고 귀찮다는 티를 내지?
어떻게 저렇게 무례하고 권위적이지?’
신고 초기부터 언짢은 대목이 많았지만 일일이 따지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언짢다고 모든 사람과 싸울 수는 없었다.
불쾌한 순간은 많았지만 참았다.
내가 약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쁜 티를 내면 은호한테 불이익이 갈 것 같았다.
당시 그는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고 이름을 물으니 지금처럼 교무실에 전화해 학교폭력 담당자를 찾거나 O학년 O반으로 전화하라고 했다.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폭력 사실을 신고하고 알려준 메일로 증거를 보내며 소통했다.
그 사람 이름을 알게된 건 가해자 사과문 누락 후 했던 통화에서였다.
담당자 이름을 알기까지 7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내가 물어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