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화는 안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다음날 담당교사에게 학교 측 행정 실수를 입증할 서류 요청차, 전화를 걸었다.
앞서 법원에 제출한 엄벌 탄원서의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보충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할 계획이었고 이와 함께 관련 서류도 첨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민원으로 서류 요청을 할까하다 전날 진심으로 사과하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졌다.
어쩌면 내가 오해한 걸지도 모른니 직접 통화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어머니, 안그래도 학폭위법 다 찾아봤는대요.
법적으로 제가 잘못한 건 없어요.
메뉴얼상 제가 잘못한 건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그 사람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에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누르듯 가르치는 듯한 말투로 당당하게.
당장 소리를 지르며 쌍욕을 날리고 싶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람은 참... 변하기 힘든 존재인가보다.
여기까지 이토록 많은 일을 겪어오는 동안 큰소리 한 번을, 나는 누구에게든 제대로 화 한 번을 내질 못했다.
나중에 글을 통해 차분히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 신고를 하거나 민원을 넣고 서류로 조목조목 따지는 게 내가 화를 내는 방법이었다.
어떤 이는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사람보다 나같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들 한다.
그런데 아무 동요도 없는 관료 집단을 보고 있자니, 적절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화낼 줄 모르는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앞뒤 생각 없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터뜨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 사람들은 두고두고 지난 일을 곱씹으며 자신을 미워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해자 엄마들처럼 괴물이 되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나보다 세상을 더 잘 알고 영리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다.
p.s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은 그 교사 역시 똑같았다.
학폭 접수를 할 때부터 그는 한결같았다.
성의 없고 귀찮아하는 태도.
학교 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학교 밖에서, 더구나 각각 다른 학교의 아이들과 엮여있으니 그는 접수를 받으면서도, 이후의 통화에서도 한숨 섞인 어조로 ‘이런 일은 처음이다’는 말을 수시로 내뱉었다.
한번은 내게 전화해 앞서 길게 설명한 사건 개요를 처음 듣는 사람처럼 되물었다.
접수 당시에도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던지라 한숨부터 나왔다.
“지난번에 여러 차례 말씀 드렸는데요”라고 하자 “아니오. 어머니, 이 부분 말씀하신 적 없으세요” 라고 했다.
그러다 자신이 메모한 내용을 확인하고는 “아! 말씀하셨네요” 하며 멋쩍어한 적도 있었다.
그에게는 이 일이 그저 '일'일 뿐이구나.
그저 일일 뿐이라면 제대로라도 처리해 줬더라면 좋았을 걸.
말버릇처럼 “학교가 다른데 신고한 건 처음봐서” 하던 그는 결국 실수를 했다.
나중에 늘어놓은 변명도 ‘이렇게 애들 학교가 다른 경우는 처음 봐서’ 였다.
못미더운 순간도 많았고 불쾌한 경험도 있었다.
증거 제출 후 연락을 해도 답이 없다거나 처음 듣는 양 엉뚱한 얘기를 한다거나...
참다참다 이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말했는데 그는 갑자기
“어머니, 제가 이 일을 성의 없게 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혹시 제가 성의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라면 절대 그런 적 없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라고 정색하며 짜증스럽게 말해 황당했던 적도 있었다.
성의 없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아마도 도둑이 제 발 저린 거였겠지.
그를 직접 본 건 조사관 조사 때였다.
조사를 마치고 지나가는 말로 “저 조사관님 왜 저러시냐”며 하소연했을 때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그랬다.
“조사관님 그런 적 없으세요.
은호 조사 받을 때 제가 옆에 있었는데 절대 그런 적 없어요”
이 사람은 성의도 없지만 교육자로서, 학교폭력 담당자로서 피해자인 어린 은호에게는 손톱 만큼의 관심도 없구나..
그때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
아이 말만 듣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학부모인 나 역시 황당할 정도로 안선화 조사관은 편파적이었는데...
그때의 말도 안되는 조사는 말도 안되는 보고서로 이어졌고, 결국 심의위원회에서 이 엉터리 보고서는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바로잡았는데...
조사관도 학폭 담당 교사도 어쩜 저렇게 다들 한통속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