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5개월이 넘어 도착한 사과문 ①

by 목동의 밤

학폭위와 관련해 이 이상 황당한 일이 있을까 했는데 그 이상이 있었다.

강준이가 1호 조치 이행을 안한 것이 아니라 학교 측의 행정 실수로 우리에게 사과문이 전달되지 않았던 거였다.


2월쯤 가해 아이들의 소년재판이 있을거라 예상했고 나는 이 일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교육청에 강준이의 조치 이행 여부와 조치 미이행에 따른 처벌에 대한 질문을 민원으로 넣었다.

담당 장학사와 직접 통화하면 간단했지만 앞서 민원을 넣고 통화하는 과정에서 심적으로 너무 지쳐버렸다. 그 사람과 직접 통화하는 게 두려울 정도로 대화는 끔찍했다.


친절한 말투에 담긴 메시지는 그와 반대로 냉정하고 사무적이었다.

그래서 더 분통이 터졌다.

웃으면서 약을 올리는 것 같았다.

자신들은 아무 잘못 없다는 식의 장황한 답변도 황당했지만 시종일관 책임을 회피하며 핑계만 대는 태도에 다시는 그 사람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서류로 문의했으니 서류로 답변이 올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장학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예의 장황하고 모호한 설명은 달라진 게 없었다.

빙빙 둘러 말하는 그의 긴 설명을 정리해보니 강준이는 모든 조치를 이행했지만 학교 측의 행정 실수로 전달이 안된 거였다.

왜 장학사가 직접 전화까지 했는지 짐작이 갔다.

장학사는 강준이 학교에서 등기로 사과문을 발송했지만 은호 학교에 제대로 전달이 안된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지금까지 사과문이 전달되지 않은 건지 재차 물었더니 “보통은 피해자 부모들이 먼저 연락을 주기에 이렇게 오랜 시일이 지나도록 못받는 경우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과의 의무는 가해자에게 있고 이를 피해자에게 전달해야 할 의무는 실행기관인 교육청과 학교에 있다.

어떻게 서류를 전달받지 못한 것이 피해자 부모가 챙기지 못해서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받아야 할 서류가 전달이 안됐다면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부터 하는게 도리 아닐까?


“강준이 학교에서 교육청에 이행 보고도 했고 등기로 발송했는데 우편으로 가다보니⋯”

우편상 실수라는 건지 은호 학교에서 서류를 받아놓고도 전달을 안했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묻자 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잘잘못을 따질 부분이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결국 은호 학교 담당자 실수라는 말인데 이게 이렇게 어렵게 설명할 일인가?

더구나 두루뭉술하게 책임을 회피하며 피해자 부모 탓을 하는 모습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학교 담당교사와 직접 통화하고 싶으니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그건 학교에 직접 문의하시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사건의 당사자로서 담당자 이름을 묻는 건 당연한 건데 왜 답해줄 수 없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받아야 할 중요한 사과문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장학사 설명대로라면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우편상 문제라는 두루뭉술한 말만 반복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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