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싶었다. 가해자들은 ‘아이들 장난으로 신고까지 했다’며 자신들이 피해자인양 굴었고 변호사들은 피해자의 분노와 가해자들의 불안을 부추기며 판돈을 키웠다.
학교에 신고를 하자 학교폭력 담당 교사는 귀찮은 일에 엮였다는 당황스러움과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신고 이후엔 조사관들이 등장해 보호자 동행도 없이 아이를 조사하고 어린아이를 상대로 유도 질문도 서슴치 않았다.
조사관의 의도와 편견으로 왜곡된 보고서는 학폭위 심의위원회로 올라가 학폭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료로 사용됐다.
신고-조사 과정을 거쳐 마침내 교육청 심의위원회라는 최종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하자는 순진한(?)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1시간이 넘게 진행된 심의위원회는 과정 자체가 2차 가해이자 행정폭력이었다.
조사관과 심의위원회 모두 어떻게든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가해자들 의도대로 ‘아이들 장난’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무능하기까지 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고 가해행위가 확실한 사건에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바보 같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거기서 그쳤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텐데 피해자를 탓하는 선 넘는 질문들까지 거침없이 나왔다.
처음 학폭 신고를 결심했을 때 풍문으로 들리는 소문은 이랬다.
‘여간해선 가해자들 처벌 안나온다’ ‘피해자는 이겨도 이긴게 아니다. 문제는 이기기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가해자들을 위해 돌아가는 판이란 의미였다.
그래도 우리는 다를 줄 알았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높아졌고 제도도 분위기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거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피해 사실을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후회한다.
‘사람들 말 들을 걸… 이런 더러운 판인 줄 알았으면 신고하지 말걸… 어쩌자고 이 어린 것에게 두 번 세 번 상처 입히는 선택을 했나?!’
부모로서 내가 입은 내상은 괜찮다.
나는 어른이니까.
하지만 아이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신고했는데 새로운 지옥이 펼쳐졌다.
살려달라며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잡은 건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또 다른 지옥문으로 안내하는 손이었다. 신고 후 내딛은 한걸음 한걸음이 분노를 증폭시키는 과정이었다.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조사관 조사를 받고 한 번, 교육청 심의위원회에 다녀오고 또 한 번.
죽고 싶었다.
지금껏 살면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자살 충동을 느껴본 적은 많지 않았다.
나는 꽤 긍정적이고 강인한 사람이라 자부했다.
그런데 아이의 학폭을, 정확히는 학폭 입증을 위한 행정 절차를 겪으며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무너졌다.
처음 아이의 피해 장면을 목격하고 가해자 부모들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을 때처럼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날까?
아이를 이 판에 밀어 넣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끔찍한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질까?
밤새 잠을 못자고 멍하니 있다 검색창에 ‘억울, 자살’이란 검색어를 입력했다.
놀랍게도 학폭 피해자 자살 기사와 학교폭력 관련 단체인 푸른나무재단 기사들이 검색됐다.
'억울, 자살=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지난 6개월은 피해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상을 등지게 됐는지 내가 당사자가 돼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한 시간이었다.
분노가 절망과 냉소로 다시 무력감으로 변하며 우리는 더 깊은 상처와 늪에 빠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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