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공정은 했을 테지만 공평하지는 않은 세상
얼마 지나면 쉰이다.
매일 반복적인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직장일과 집안일로 하루살이가 빠듯하다.
뇌질환, 고혈압, 관절염, 척추질환 등 각종 질환으로 한주 두 번 이상은 병원을 다녀야 하는 팔순을 넘긴 부모님도 내 생활에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지 오래다.
미혼의 노처녀 꼬리표가 달린 자녀가 걱정거리일 부모님처럼
나 또한 내 미래에 대한 걱정 꼬리표로 매일을 보낸다.
누군가는 말했다.
'오늘이 당신에게 가장 젊은 날입니다.'
그럴지도... 와닿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직도 이직에 대한 고민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나이, 근무환경, 보수, 직책 등 수많은 고민을 하지만 현실은 눈높이를 더 이상 낮출 것도 없는 수준으로 내리고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지금의 직장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것에 감사한다.
쉰에 가까운 나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직에 대한 고민을 한다. 고민'만' 한다는 게 맞을 거 같다.
천리안, 나우누리, I love school, DOS 세대에서 ChatGPT, 뤼튼, Copilot 등 AI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세대로 언제인지 모르게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중간 세대인으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대단한 권력이나 성공을 이룰 확률이 떨어진다면 '가늘고 길게' 살아가기를 선택해 '월급루팡'인이 되던가.
과다한 경쟁 속, 주변의 지속적인 도전에 일일이 반응하며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이 걸리기 전에 모든 걸 내려놓고 될 데로 되라는 인지상태로 마비적인 행태를 보여주며 '조용한 퇴사'를 준비하던가.
외부 환경 변화에 자극받아 각성해 나를 위한 혁신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던가.
과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 자신의 불편함, 어색함 등 자신의 마음에 거슬리는 상황을 허락하지 않은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기본'이 '기본'이 아닌 환경(기본에 대한 정의 변화), 당연함이 당연함의 기준을 만드는 것에 대한 견해 차이.
이웃과 반찬을 나눠 먹는 시대는 끝났다. 개인의 울타리를 넘겨보는 것조차 피로한 시대이다.
7월이 되면 회사에 성과급이 지급된다.
나는 공평보다는 공정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말한다. 나름 공정했다고... 그 말의 뉘앙스를 듣고 나니 공정보다는 공평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공정은 했을 테지만 공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조용한 퇴사'를 준비하는 직장인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