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말라갈 때
몸이 말라간다. 마치 꽤 오랫동안 물맛을 못 본 화초처럼 영미의 몸은 수분기가 없이 말라비틀어지는 느낌이다. 아침에 깨서 하루의 루틴으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는데 포털사이트 상단에 '최장기간 가뭄'이라는 타이틀이 걸려있고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 재난 사태 선포가 선고될 거라고 한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영미가 사는 N시는 수도권치고는 아주 넓어서 도시와 농촌이 공존한다. 영미가 농사를 지었다면 훨씬 빨리 체감을 했을 것이다.
메마른 날씨처럼 나이 50줄에 접어들면서 갱년기라는 불청객을 맞이한 영미의 몸도 가뭄상태이다. 이제는 그 푸석함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영미는 자신의 몸과 나라가 한 몸이 되어 수분이 없어지는 이 상황에 비라도 흠뻑 와서 기분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으로 시작한 갱년기는 영미의 정신마저 점령을 해버렸다. 남편인 준호의 얼굴을 보아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아도 애틋한 감정보다 화가 돋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준호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하숙생이 되어 있고 딸 동희는 시험 기간이면 더 잠을 자서 영미의 애를 태우며 신경질을 수시로 부리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동민은 게임을 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모습으로 속을 썩이고 있다.
영미는 아침마다 새벽에 깨서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 밥을 하고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피곤이 풀리지 않은 몸으로 출근길 전철을 탔다. 출근 시간이면 서울로 출근하려는 사람들과 뒤엉켜 전철 안은 손잡이가 필요 없을 정도로 껴서 간다. 그날은 운이 좋아 서너 역을 지나 자리에 앉아서 갈 수가 있었다. 옆자리 남자는 ‘물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올 수 있나’라는 제목의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영미는 화면을 잠시 곁눈질로 보다 피곤함이 몰려와 금세 잠이 들었다.
첫 번째 직장을 자의 반 타의 반 명퇴하고 나서 40 중반의 나이에 어렵게 들어가 늦깎이 공무원이 된 영미는 5년이 넘어도 생경한 조직 생활에 부적응한 상태이다. 웬만하면 상사가 영미보다 나이가 어리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지적질의 화살이 날아왔다. “유영미주무관님, 어제 올린 기안에서 오타 있던데 잘 살펴서 올리세요.” 또 잔소리다. 차석인 허주무관은 나이 많은 늦깎이 공무원 후배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이 어린 직장 선배인 그에게서 ‘너는 무능력한 나이 많은 여자야’하는 눈빛을 영미는 항시 느낄 수가 있다. 영미가 작성한 문서는 꼭 살펴서 지적을 한다. ‘팀장이 결재해서 끝난 문서인데 어쩌란 거야?’ 영미는 허주무관이 일부러 자신의 실수를 기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허주무관은 영미와 비슷하게 들어온 젊은 여자애들에게는 항상 다정하고 친절했다. 영미는 그의 와이프에게 ‘당신 남편이 어린 여자애들한테 얼마나 수작을 부리는지 알아’하고 일러바치고 싶다. 와이프도 공무원이라는데 일면식이 있었다면 정말로 연락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차별을 당할 때마다 ‘그래 나라도 젊고 예쁜 애들이 좋지’하며 스스로를 달랜다. 하지만 이 빈정 상함이 언젠가는 터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영미에게는 갱년기라는 트리거가 있어서 언젠가 당겨져 총알이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늘 긴급회의가 있습니다." 간부회의에 갔던 팀장이 오자 허주무관이 팀원 모두를 가운데 회의 탁자로 소집했다. 허주무관은 팀장의 수족인 것처럼 정말 비위를 잘 맞췄다. 영미는 노트에 적을 준비를 하고 팀장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러분들도 뉴스로 봤을 테지만 올해 가뭄이 전국적으로 아주 최악인 상황입니다. 작년에는 영동지방에 비상급수체제로 운영이 되었는데 올해는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해서 국가 차원에서 비상급수체제를 조만간 운영할 계획입니다. " 아침 뉴스에 나온 대로 국가재난선포가 이제 턱밑까지 온 것이다.
공무원 생활이 짧은 영미지만 알 수 있는 사실은 민간인이 알기 전에 위기 상황에 대한 정보를 더 빨리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 이제 어딘가에 동원이 될 날도 멀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현장에는 공무원이 있어야 하므로... 영미는 지난 5년 동안 방역업무에 종종 나가곤 했다. 조류독감이 있을 때는 농가로 가서 닭을 폐사한 일도 있었다. 더운 여름날 방역복을 입고 닭을 잡아 마대자루에 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살려달라는 닭들의 비명으로 한동안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이제 물이 부족하다고 하니 어떤 임무로 현장에 나갈지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아침에 재난회의가 있었는데 한반도 대기층에 있는 비구름이 몇 달째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비상급수체제가 되면 물을 제한적으로 공급해야 하고 민원이 많이 발생을 할 겁니다. 여러분은 홍보를 잘하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 팀장의 긴장감 있는 회의 석상의 말은 앞으로의 비상근무를 알리는 말이어서 영미의 마음이 심란해졌다. 어떤 뉴스든지 가뭄에 대한 내용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라 이제 재난 선포의 날이 오늘 바로 발효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영미는 좀 엉뚱한 생각이 바로 들어서 실소를 했다. 영미의 딸 동희 때문이다. ‘욕실에 들어가면 기본 1시간은 물을 사정없이 써서 제치는 우리 딸은 어떻게 될까?’ 영미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하기사 단수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동희도 따라야 할 것이다. 욕실에 들어가서 자연 에코가 들어간 노래를 부르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져 지내는 동희가 그걸 강제로 못할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침마다 빨리 나오라고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된다. 매달 가스비와 수도세에 기겁을 하게 되는 동희의 욕실 사용이 제한되는 것은 유일하게 이번 사태가 영미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이다.
일주일이 더 지나면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내달았다. 한반도 상공에 비구름이 완전히 사라지다니... 어떤 유튜버는 주변국에서 비구름을 훔쳐갔다며 흥분해서 방송을 해댔다. 국가재난본부에서는 의료시설 등 필수 공공시설을 제외하고 시간제 단수를 하고 최악의 경우 급수체제로 시행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마트에서 생수 사재기가 발생한다는 뉴스가 도배를 했다. 마트마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생수를 사는 바람에 금방 동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영미는 입구에 놓인 생수 꾸러미를 볼 수 있었다. 준호도 생수 사재기에 동참을 한 것이다. ”당신 빨리 퇴근했네? 이 물은 당신이 산 거야? 그래도 집구석은 걱정이 됐나 봐? “ 영미가 생각해도 너무 재수 없는 말투였지만 무심코 툭 나왔다. ”내가 나를 믿지 너를 믿냐? 보나 마나 길 건너 불구경하듯이 있었겠지? 진즉 이런 것은 챙겨야 하는 거 아냐? “ 준호는 영미에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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