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2

모든 것이 말라갈 때

by 경미리

입사 동기로 만난 영미의 남편 구준호는 연애시절 동기들 사이에 소문난 사랑꾼이었다. 조용하지만 섬세하게 챙겨주는 그를 영미는 좋아했다. 지금도 그 시절 영미에게 보여준 마음을 떠올리면 지금의 냉랭한 준호의 모습이 상상이 안 갈 정도이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두고 각각 다른 지방에서 올라온 둘은 약간의 집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지를 하며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커플로 지냈다. 온 세상이 영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준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태양으로 여기며 지구가 되어 그 여자의 궤도에 맞춰 돌았다.


늦은 밤 택시 안에서 영미의 손을 자신의 무릎에 가져가 깍지를 끼고 지긋이 쳐다보는 모습에 “두 분이 보기가 좋아요. 어디 좋은 데 가세요?” 기사님이 말을 붙였을 정도였다. “와이프 친정집에 데려다주고 저는 다시 이 차로 돌아올 겁니다.” 순간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준호가 술김에 한 농담이지만 와이프라는 단어가 영미는 싫지 않았다. 영미는 지하철이 끊겨서 준호가 택시를 타고 바래다주고 돌아갈 때면 든든한 나무가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미와 준호의 사랑은 그의 따스한 보살핌으로 영원히 깨지지 않을 거라 영미는 믿었다. 영미는 그의 청혼을 항상 마음 깊숙이 원하고 있었다. 이런 남자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구준호는 맏아들이다. 연애 때는 몰랐던 마법의 단어 ‘맏아들’이 ‘맏며느리’라는 단어로 환원이 되어 돌아온 순간, 구준호와 영미 사이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미는 스스로 무난한 며느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호는 무난하다기보다 착한 아들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준호의 장점들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엄마에게 더 잘 작동된다고 영미는 생각했다.


“이번 추석에는 당신하고 동민이랑만 광주에 갔다 와.” 이미 작정한 말을 하고 나니 “너는 며느리가 되고선 어떻게 엄마한테 그렇게 무정하니? 그리고 엄마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해서 그렇게 싫은 티를 내는 거야?” 준호는 영미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당신 알아? 준수삼촌이 카드빚 못 막아서 우리가 다 갚아주고 있는 상황인데도 어머니는 때마다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 게다가 모임을 왜 그렇게 많이 하시는 거야? 그게 다 돈이야.!” 영미는 속물처럼 보이지만 너무 철없이 사는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으로 말을 마구 뱉어냈다. “그래 관두자. 너 정말 못됐어. 아버지 돌아가시고 적적한 엄마가 모임에 가서 돈 몇 푼 쓰는 게 그렇게 아까워?” 맞다. 아까웠다. 영미는 시어머니에게서 허세를 느끼고 자신의 엄마를 그냥 놔두는 준호가 이해가 안 되었다. 모임에 가기 위해서 백화점 옷을 입어야 하는 씀씀이조차도... 영미는 아웃렛에 가서 철 지난 바지라도 하나 사려면 몇 번을 고민하고 샀다. 모든 걸 다 들어주던 준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는 그 자리를 준호가 메우고 있다고 영미는 생각했다.


준호는 영미가 퇴사한 그 직장을 아직도 다니고 있다. 영미는 사내 커플이란 압박으로 명예퇴직을 당하고 늦깎이 공무원이 되어 매일매일 내키지 않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준호는 가족보다 더 친밀한 직장동료들과 퇴근 후에 이어지는 자발적인 회식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다. 준호를 자상한 오빠 같은, 형 같은 동료라며 좋아했다. 여기저기서 준호를 찾았다. 영미는 준호가 밖에서 그렇게 즐기다 빈 껍데기가 되어 집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준호가 사 온 생수를 바라보면서 잠깐이지만 예전의 자상함을 영미는 느꼈다. 하지만 밖으로 내뱉는 말은 관성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준호가 먼저 내지르고 영미 역시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단수는 오늘 밤 0시를 기점으로 시행된다는 안내 문자가 휴대폰에 떴다. 집 안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정수기 물을 큰 통에 또 받아 놓았다. 비구름이 언제 다시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 받을 수 있는 양동이나 그릇이 있으면 더 받으려 애를 썼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았는지 말없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동희는 말은 없지만 얼굴에서 불만이 폭발할 것 같았고 방안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찰랑거리는 동희의 긴 머리가 1주일이 지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영미와 준호는 고민 끝에 모두의 샤워와 머리감기를 주 1회로 제한하였다.


사람은 무섭도록 상황에 적응을 한다. 정부는 인공강우를 만들어서 가뭄을 이겨내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계속된 가뭄으로 한 달이 지나면서 급수량은 더 줄었지만 처음의 불편함보다는 덜한 느낌을 받았다. 영미와 준호 그리고 동민이는 덜 씻는 것마저 적응을 하였다. 동희만이 찰랑거리는 머리를 유지 못해서 신경질이 극대화된 것 말고는..


강제급수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지정된 장소로 몰려와 급수차를 기다렸다. 영미는 TV다큐에서 몽골 아이들이 플라스틱통을 가지고 물을 받아 오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끔 엄마가 영미에게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면서 집에 수도가 없어서 물을 길어 왔었다는 말을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몇십 년 전으로 모든 것이 퇴행한 느낌이 들었다.


강제급수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 물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났다. 생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부촌에 사는 사람들이 만원이 넘어가는 2 리티 생수를 사재기해서 물 쓰듯 쓴다는 말을 들었다. 일반 서민층이나 없는 사람들은 강제급수로 받은 물로 겨우 씻고 밥을 해 먹었다.


영미팀은 ‘물을 아껴야 합니다’라는 안내 전단지와 스티커를 들고 부촌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단순 홍보라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경비실에서 제재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아저씨 지금 저희는 N시청에서 온 사람들이에요. 잠시 안내문을 나눠 드리려고요.”“여기 분들은 외부인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냥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자기 돈을 가지고 물을 사서 먹는다는데 뭔 잔소리냐고 난리세요.” 지나가는 주민들도 냉소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돈이 있으면 다 되는 세상에 비싼 물이라도 사 먹겠다는 것을 강제로 못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1000원이면 사 먹던 생수를 만원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서 씻고 마신다는 사실에 부촌 사람들에 대한 적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감정이 쌓여 부촌 근처에서 생수를 먹던 사람이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생겼다.


물 부족으로 자연스레 식당과 술집이 개점휴업 상태로 가자 준호의 귀가가 빨라졌다. 처음에는 원치 않았던 빠른 귀가로 집안 분위기가 많이 어색했다. 동희와 동민이는 아빠의 이른 귀가를 썩 반기지 않았다. 잔소리가 두 배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영미의 귀가가 늦어져 오히려 예전보다 집안에 큰소리는 줄었다. 영미는 전단지 돌리는 동원으로 나갔다 사무실에 들어오면 쌓인 일이 많아 녹초가 되어서 집에 늦게 가는 일이 잦았다. 그즈음 일찍 귀가하는 준호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가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