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균열이 생길 때
‘어디서부터 나의 인생이 이렇게 꼬인 것일까?’ 요즘 준호의 머릿속에서 가장 많이 맴도는 질문이다.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아니 사귀면서?’ 결국 아내를 만나서 빈 강정 같은 자신만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준호는 ‘유영미’라는 여자를 만난 전과 후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기회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준호는 취업에 성공하고 신입교육을 받으면서 영미를 만났다. 여린 모습과 목소리를 가진 눈이 예쁜 그녀가 준호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한 달 정도를 합숙하는 교육과정 속에서 준호는 영미에게 호감을 계속 내비쳤고 교육이 끝날 즈음에는 자연스레 커플이 되어 있었다. 뜨거운 연애는 아니지만 서울이라는 삭막한 도시에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연애를 하면서 준호는 점점 더 영미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영미의 집에서는 그의 존재를 애써 모르는 척하는 분위기였다. 영미는 집에서 동향이면서 서울에 사는 남자가 있어 한번 만나보라고 한다며 물색없이 말해 준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곤 했다. 준호가 맏아들이라 영미 집에서는 결혼을 하게 되면 불 보듯 고생할 거라는 생각에 둘이 헤어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영미도 준호 말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수 없었다. 영미는 준호의 다정함이 너무 좋았다.
준호에게 처갓집은 생채기를 내는 곳이다. 특히 영미의 엄마 ‘장모님’이 준호를 마뜩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은 준호가 넘을 수 없는 허들과 같은 것이다. 장모는 준호의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영미에게 “그래 내가 뭐랬냐. 엄마 말 듣고 시집갔으면 이런 꼴 안 보지.” 그렇다고 준호에게 막 대하는 장모도 아니었다. “이번 김치 엄마가 자기 먹으라고 보낸 거야. 이따가 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화 좀 넣어.” 준호는 매철마다 장모가 올려 보내는 음식을 마주한다. “어머니, 김치 잘 받았습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그럼 끊겠습니다. 몸 건강하게 지내세요.” “그래” 주고받는 대화는 이걸로 충분했다. 준호는 장모가 마음은 절대로 안 주면서 ‘내가 너를 홀대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듯 보내는 음식들에 거부감이 들었다. 매일 장모와 통화하며 자신의 불행을 입에 올리는 영미를 보며 어느 때부터인가 영미를 보고 있으면 장모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준호와 영미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멀어지게 된 것은 준호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준호 아버지는 애처가였다. 준호와 영미가 결혼한 후 몇 년 후 암선고를 받고 2년 정도 치료를 받으시다 돌아가셨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준호 아버지는 마련했던 재산이 많이 축이 났고 고비용의 항암 치료에도 결국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영면에 든 아버지를 보며 준호는 아버지가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안도가 되었다.
하지만 홀로 되신 어머니를 외면하기 싫었던 준호는 함께 살기를 원했다. 영미도 아이 둘이 아직 어려서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조금 돌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합가를 승낙했다. 영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영미가 원하던 시어머니와의 동거가 아니었다. 영미가 퇴근하고 오면 시어머니는 거실 TV를 끄고 바로 침실로 들어갔다. 개수대에는 설거지가 쌓여있고 영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밥을 준비했다.
준호는 엄마에게 아이들을 잠시 맡기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컸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니깐 애들도 같이 TV에만 빠져있고 저녁밥을 차려도 안 드셔. 떡 같은 주전부리로만 식사를 때우시니 당뇨가 오지” 준호는 영미가 아이들처럼 고자질하는 것 같아 듣기가 싫었다. “엄마 하시고 싶은 대로 놔둬. 여기에 와서 고향 친구분들도 못 만나고 애들한테 시달리는데 자기 하시고픈 대로 해야지.” 준호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엄마를 타박하는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미는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 수업을 마쳐도 학원을 보내서 손이 미치는 것을 최소한으로 했는데 아이들을 보는 것이 정말 말 그대로 보기만 한다고 느껴졌다. 영미는 시어머니의 입맛에 맞게 저녁을 준비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편식하는 아이처럼 쓱 식탁을 보고 맘에 드는 음식이 없으면 입맛이 없다며 방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준호의 어머니는 허기진 배로 잠이 안 들면 냉동실에 스스로 비축해 둔 떡을 전자레인지에 해동해서 먹었다.
그렇게 아슬하게 이어진 준호 어머니와의 동거는 영미가 회사를 관두면서 결국 끝이 났다. 준호 어머니는 광주로 갔고 굳이 영미는 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혼자 산다고 해도 사교모임이 많았던지라 영미의 퇴사 소식을 듣자마자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다. 영미는 생활비가 더 나가더라도 아이들의 버릇이 더 나빠지기 전에 시어머니가 귀향을 결심한 것이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향으로 내려간 준호 어머니의 생활비는 준호가 알아서 챙긴다지만 영미는 빨리 직장을 잡아야 했다. 그러던 중에 경기도 N시의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고 2년여 만에 합격이 되었다.
영미와 준호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지만 집마련을 위해 경기도 N시에 터를 잡았다. 준호가 점점 가정에 소홀해진 요소 중에 하나가 장거리 출퇴근 영향도 있었다. 거기다가 준호는 직장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귀가는 점점 더 늦어졌다. 준호는 자신의 말에 호응해 주는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불통의 집안 식구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