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때
동희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다. “엄마는 나를 왜 태어나게 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그날은 영미가 출근길에 동희와 동민을 태우고 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영미는 순간 당황해서 백미러로 동희를 쳐다보았다. “엄마, 나 혼자 아침 일찍부터 챙기는 것도 힘든데 동민이까지 나보고 챙기라고 하면 어떡해.. 나도 엄마가 봐줘야 하는 어린이야.. 동민이 하는 짓이 너무 짜증 나” 영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동민이는 아직 어리고 엄마는 몸이 하나인데 빨리 아침에 챙기려면 우리 딸이 엄마를 도와줘야지,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 영미는 동희에게 타이르듯 얘기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동희는 그날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동안 영미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말이었다.
동희는 맹랑하다고 느낄 만큼 어른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말을 똑 부러지게 전했다. 동희에게 어린 시절은 평화로운 아침이 거의 없었다. 맞벌이 부모를 둔 탓에 아침에 기상을 하면 뭐든지 빨리 해치워야 할 일들만 남아 있었다. 게다가 남동생 동민이까지 일정 부분 챙겨야 하는 역할 분담이 있었다. 영미가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동희가 어린 동민을 잘 달래줄 거라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어린 시절 동희는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아이였다. 동희 눈에는 영미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생도 잘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영미는 내심 동희가 크면 의사나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미는 동희가 최고 수준의 교육을 다 마칠 정도의 돈은 벌어놔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뒷바라지를 못해 줬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동희도 자신에게 주목하는 눈을 느끼고 있었다. 만나는 어른들은 대부분 “너는 커서 나중에 뭐가 되어도 될 거야.”라며 동희를 추켜세웠다. 동희 스스로도 또래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똑똑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동희는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완벽하게 정리가 된 노트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중학교 저학년까지는 빛났던 동희의 재능이 중2와 중3을 거치면서 지고 있었다. 잘 정리된 노트, 깔끔하게 잘 만들어낸 파워포인트 등이 동희를 잘 빛나게 해주는 것이지만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서는 흥미가 나지를 않았다. 동희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과목에만 더 집중을 했다.
“이번 기말시험 수학은 세 개나 틀렸어.” 현서는 투덜거렸다. 동희는 할 말을 잃었다. 동희는 시쳇말로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이기 때문이다. 친구 현서는 중학교 때 동희보다 성적이 안 나온 아이였다. 동희는 다른 과목도 현서와 비슷하거나 한두 개 더 맞았을 뿐이다. 동희는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정말 누가 봐도 영재였던 똘똘한 자신이 평범한 서현이에게도 밀리다니....
“너는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잠을 잘 때야? 독서실에는 언제 가는 거야?” 주말이면 여지없이 영미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내버려 둬! 알아서 갈 거니까!” 동희는 영미의 말을 무시하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핸드폰의 무선이어폰의 볼름을 높이고 영미가 무슨 말을 하든 대꾸를 안 하고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동희는 이성적으로는 이불 밖을 나가서 독서실에 가야 하는 걸 알지만 몸을 끌어내려는 무언가에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