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6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 때

by 경미리

‘엄마가 밉다.’ 동희는 영미가 자신에게 덫을 씌웠다고 생각을 했다. '똘똘한 우리 딸', '의사 딸', '판사 딸', 초등학교까지는 영미와 주변 사람들이 동희에게 늘 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갇혀 동희는 요즘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과 하류인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으로 공부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독서실에 갈 시간이면 그냥 침대밖으로 나오고 싶지가 않았다. 영미는 왜 안 가느냐고 닦달을 하고 동희는 영미에게 좀 놔두라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일상화가 되었다. 동희는 영미가 만든 '똑똑한 아이'라는 환상에 갇힌 느낌을 종종 받았다. 영미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해 흘린 이야기들이 동희를 옥죄는 느낌이다.


“우리 손녀지만 정말 눈이 살아 있어. 너는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할머니 병도 고쳐줘. 알았지?” 어린 시절 동희가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에게 늘 듣는 말이었다. 어린 시절 동희는 누구도 의심하지 못하는 똘똘함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약간 ADHD가 있나 싶은 굼뜬 동민이와는 확연히 비교가 되었다. 영재가 범인이 되는 순간은 동희가 사춘기가 오면서였다.


동희는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다. 학교성적은 잘 안 나오기 시작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공유하면서 자신은 덜어내고 타인을 담기 시작했다. 또래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는 시간에 집중했다. 동희의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영미의 목소리는 점점 소프라노 가수처럼 톤이 높아갔다.


‘망했다.’ 동희는 가뭄이 심해지면서 물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자신의 일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단수가 생기고 급수가 되면서 동희의 외모 가꾸기도 끝이 났다. 동희는 영미의 ‘쌤통이다.’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매일 감던 동희의 머리가 찰랑거림을 잃어갔다.


“너네 집은 물이 나오나 봐?” 같은 반 예지의 머리를 보면서 여자애들이 감탄의 말을 한다. “물은 안 나오는데 급한 대로 생수로 감았지.” 예지는 곱게 화장을 한 얼굴과 찰랑거리는 머리로 동희 반에서 미모로는 서열 1위가 되었다. ‘이게 뭐야... 생수로 머리를 감고 나온다고? 도대체 얼마를 머리에 쓰고 나온 거야? 하기사 예지는 고급빌라에 사는 아이지.’ 동희는 부럽기도 헸지만 준호와 영미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부는 누구나 마음대로 갖고 싶다고 가져지는 것이 아님을 알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로를 받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동희와 비슷한 떡진 머리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집에 준호가 일찍 들어오면서 동희는 조금 긴장 상태가 되었다. 준호와 동희가 영미가 없는 공간에 있는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동희의 예상과 다르게 준호는 잔소리를 별로 하지를 않았다. 동희는 그나마 준호의 무관심이 집안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단지 동호가 지나치게 게임을 하면 어느 시점에 준호가 개입을 하였다.


그날 저녁은 동희가 기억하기로는 처음으로 준호가 김치찌개를 만들고 계란말이를 만든 날이었다. ‘아빠가 만든 음식이라니...’ 동희와 동민이는 준호가 만든 음식이 신기하였다. 영미가 만든 음식보다 투박한 느낌이었지만 집안 온기를 채워주는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동희는 그 자체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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